시각장애인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희망을 그리다

뇌병변·시각장애 딛고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로 걸림돌을 디딤돌로···‘미긍주혜’의 희망 메시지   “뺨을 스치던 바람까지 생생해요. 그날 만난 친구는 제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고 했어요. 집을 바로 앞에 두고 큰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그 이후 기억이 사라졌어요.”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던 여대생이 25살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음주차량에 치여 8미터를 날았다. 의사는 살아날 확률이 5%라고 했다. 뇌사상태였다.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수명을 연장한 지 26일째 되던 날, 그녀는 깨어났다. 그리곤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엎친데 덮친격 뇌 손상으로 인한 시각장애도 나타났다. 모든 사물이 5도 기울어진 상태로 겹쳐보였다. “처음엔 입술만 꼬물꼬물 거렸대요. 엄마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3살’이라고 답했대요. 목소리도, 지능도 전부 아기에 머물렀어요. 사람들이 절 보면서 울던 게 기억나요. 하루에 약을 한 주먹씩 다섯 번 먹었는데, 싫어도 열심히 삼켰어요. 아기는 세상을 ‘긍정’하잖아요. 약을 잘 먹으면 주변에서 박수치며 칭찬해주니 마냥 좋아서 웃었다네요. 여기저기 인공뼈와 철심을 박았어요. 수차례 수술을 받고 1년 반 후 퇴원했어요. 서서히 본래 나이의 지능으로 회복되고 나니, 현실이 참 끔찍했습니다.”     강주혜(37) 작가는 검은색 백팩에 가득 담은 작품들을 하나 둘 꺼내들었다. 볼펜으로 그린 일러스트 속엔 14년 전 사고 당일부터, 병원을 퇴원하던 날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라며 꺼내든 작품 속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모든 상이 2개로 맺히는 그녀가 달을 보고 직접 그린 일러스트였다. 그림 옆엔 짧은 시가 적혀있었다.  강씨는 ‘미긍(美肯·아름다운 긍정)’이란 필명으로

[기부 그 후] 부족하고 서툴지만 발달장애인 스스로 가꾼 텃밭

-꿈더하기지원센터의 텃밭 가꾸기 프로젝트   “우리가 키운 배추로 김치를 담궜어요!”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 꿈더하기지원센터(이하 꿈더하기) 프로그램실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발달장애 친구들이 직접 기른 무와 배추, 고추 등을 수확해 김장을 한 것이지요. 30여 명의 발달장애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지역 주민이 함께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가을엔 영등포구청 앞마당에서 열리는 장터에 나가 수확한 농산물들을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그날 일일 장사꾼으로 변신한 김가희(19∙가명) 양은 어깨가 으쓱합니다. “우리가 키운 상추와 고추를 사 가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신기했어요. 앞으로도 직접 기른 채소를 시장에서 팔고 싶어요.”     ◇ 텃밭 가꾸기로 흥미 더하고 꿈은 쑥쑥   꿈더하기지원센터는 2013년 설립됐습니다. 이곳에는 발달장애, 지적장애, 경계성장애 등이 있는 친구들이 와서 사회화 교육, 심리 치유, 직업 훈련 등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합니다. 바리스타 및 제빵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만든 빵과 커피는 꿈더하기 베이커리와 카페에서 팔리지요. 지역민들 사이에선 맛이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났답니다. 지난해 여름, 봄에 심었던 씨앗이 싹을 틔었다. 새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 ⓒ꿈더하기지원센터 그러던 어느 날, 채민정(46) 꿈더하기지원센터 센터장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관리하면 친구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15년 채 센터장은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텃밭을 가꿔봅시다!” 2015년 텃밭 가꾸기 시행 첫 해에는 서울고용노동청 지원으로 농작물을 무사히 길러냈습니다. 친구들은 씨앗, 묘목 등을

[여문환의 비영리 현장 이야기-②] 장애인에게 경제교육을 한다고요?

우리 기관☞JA코리아 은 그동안 저소득 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경제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농산어촌 마을 소재 학교, 분교, 보육원, 청소년 교도소, 북한 이탈 청소년, 베트남과 필리핀과 같은 다문화 가족의 어린이들 그리고 작년부터는 미혼모들에게도 실시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소외 계층의 청소년들을 접할 때마다 색다른 어려움을 접한다. 미혼모들은 사회적 편견을 제외하고라도,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예컨대 교육을 받을 동안 그들의 아이를 돌보아 줄 도우미가 절실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하나둘씩 우리 프로그램을 마치고 사회 혹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그들을 볼 때 정말 가슴 벅차다. 2016년부터 장애인을 위한 경제교육을 시작했다. 그것도 지체장애인보다도 오히려 발달장애인 쪽이 훨씬 많았다. 어렵게 평가지표도 만들고 나도 직접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었다. “일상생활도 어려운데 경제교육이 잘 될까?” 시작이 반이라 벌써 한 학기가 지나고 평가회도 가졌다. 전국에서 20명 가까운 장애인 시설 및 기관에서 직접 교재를 가지고 8시간 이상을 직접 가르친 결과를 서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잘 진행되었던 점, 문제점들 그리고 개선점들을 논의하는 가운데 한 담당 선생님께서 그동안 어려운 점을 말씀하시면서 울음을 터뜨리셨다. 출발부터 어려우셨다고 하신다. 기관으로부터, 학부모로부터 매우 부정적 시선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으신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주위 집중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했으며 돈, 상품, 은행, 마트 등 기초적 경제생활에 최소한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어떤 친구들은 직접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파아란 하늘을 돌려줘-②] 미세먼지, 국내 원인도 50%…캠페인으로 정부를 움직이는 NGO ‘그린피스’

[파아란 하늘을 돌려줘-②]    미세먼지, 국내 원인도 50%  중국 공장, 동쪽 연안으로 이동했다는 건 ‘루머’  시민의 목소리가 정부를 움직인다    2013년, 중국 정부는 대기오염 전쟁을 선포했다. 석탄 사용량을 줄이고 석탄 발전소의 문을 닫겠다는 것. 2년 뒤, 중국의 석탄 수입량은 30% 줄었고, 초미세먼지는 6% 개선됐다. 지난해엔 향후 3년간 신규 석탄 광산을 허가하지 않겠다고도 발표했다. 중국의 대대적인 변화 뒤엔 한 국제환경단체가 있었다. 2008년 중국 내 대기오염 문제를 처음으로 지적하고, 중국 내 단체들이 대기오염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만든 NGO, ‘그린피스(Greenpeace)다. 그린피스 베이징 사무소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및 경제적 피해를 추산하는 보고서를 내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기질 개선 대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지난해 10월엔, 강력한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만리장성에 레이저를 투사한 것.  중국 정부를 향해 석탄 사용을 줄여 대기질 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이었다. 중국 현지 NGO들도 대기오염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후 중국은 베이징 일대 석탄발전소 4곳 가동을 전면 중단했고, 중국 전역에 103개 석탄화력발전소를 신규 건설한다는 계획도 전면 철회했다.  그린피스의 미세먼지와의 전쟁은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초미세먼지는 중국발이라 할 수 있는게 없다’는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3년째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세먼지, 중국과 ‘담판 짓기’ 외에 우리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은 없을까.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기후에너지 캠페인 및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손민우(30) 캠페이너와 김혜린(31)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단호하게 “아니”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 중으로 초미세먼지를 팡팡 뿜어내고 있을 석탄 발전소, 그것부터 줄이지 않고서는 깨끗한 공기는

청년, 이주여성을 어엿한 ‘선생님’으로 변신시키다

이주여성, 다문화 요리강사가 되다   #1. 중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던 주채홍(38세)씨는 지난 2008년 국제결혼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적응은 쉽지 않았다. 경력을 살릴만한 직장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중국에서 알아주는 전문직 종사자였지만 본국에서의 경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2. 몽골인 서드 초롱(38세)씨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국에 왔지만, 한국어가 미숙한 그녀가 일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서드씨는 식당 일을 하다가 근처 미싱 공장에 취직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일해도 한 달에 버는 돈은 100만원 남짓. 그녀는 결국 육아를 위해 공장 일도 그만둬야했다.  그런데 최근 두 사람에게 어엿한 직장이 생겼다. ‘다문화 아동 요리 강사’라는 직함도 달았다. 고려대 인액터스(Enactus) 팀에서 시작한 ‘다울림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다울림 프로젝트란, 기회가 없어서 또는 사회의 편견때문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을 어린이집 출강 강사로 양성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2013년 첫 유료 출강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총 8명의 다문화 강사를 배출하고 서울시내 4000명 이상의 아이들에게 수업을 제공했다.   ◇ 이주여성을 위한 ‘좋은’ 직업 만들기   “처음에는 선생님들 모두 ‘한국 사람이 무섭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안하다’고 하셨어요. 한국인과의 소통에 두려움이 컸죠. 해결 방안을 찾다가, 선생님도 누군가의 어머니시니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에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강사를 양성하기로 했습니다.” (문다은(22) 다울림 프로젝트 매니저·고려대 경제학과 3년) 2011년, 다울림은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한 복지관에 강사 모집 공고를

[파아란 하늘을 돌려줘-①] 엄마가 떴다! 5개월만에 수천명 동참 이끈 김민수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대표

최근 대선 주자들도 미세먼지 관련 공약을 앞다투어 내놓는 가운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꾸준히 미세먼지 해결에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이 있다. 활동가도, 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중학교 3학년 딸 아이의 엄마’라는 김민수(49·사진)씨.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라는 커뮤니티를 대표해 김씨가 지난 4개월간 지역구 국회의원 간담회, 토론회, 기자회견 등 미세먼지 관련 공식·비공식 일정에 나선 것만 약 30회에 이른다. 무엇이 엄마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지난 7일, 세종대에서 한국대기환경학회 주최로 열린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씨를 만났다. – 환경단체 열혈 활동가 같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게 된 계기가 있나.  “아토피가 심한 딸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눈 주위가 빨갛게 팬더가 되더라. 눈 다래끼도 수시로 난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마음에 아팠다. 하루는 시야도 안 좋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다. 아이 학교 행사로 등산이 예정돼있어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미세먼지가 아이들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취소하면 안되느냐’고 했는데, 등산을 강행하고 왔더라. 선생님이 ‘오늘은 미세먼지 수치가 80㎍으로 ‘보통’이라서 등산다녀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준은 81㎍부터 ‘나쁨’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기준으로 하자면 50㎍ 이상이 ‘나쁨’이다. 엄마로서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아이는 내가 지키자’는 생각에서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미세먼지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약 5개월.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인터넷 카페 회원수는 약 3300여명에 달한다. 김씨와 함께 활동하는 운영진은 총 11명으로, 대부분 ‘엄마’들이다. 후원금도 받지 않고, 운영진들이 사비를 털어 충당하고 있다. 카페에는 회원들이 매일 지역별 미세먼지 수치를 모니터링하고, 마스크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국가가 ‘안전한 놀이터’ 돼 줘야”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양극화, 금수저론, 인구 절벽…. ‘헬조선’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에도 봄이 올 수 있을까.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의 이원재 기획이사(45)가 복잡한 정국 속, 시대를 읽는 두 권의 책을 연달아 펴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이원재·황세원, 서해문집)’와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이헌재·이원재·황세원, 메디치).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는 작년 희망제작소 소장 재임 당시 ‘시대정신을 묻는다’는 주제로 사회 양극화, 임금 격차, 사회 안전망 등 분야별 전문가 11인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겼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책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의 대담을 엮어 국가의 원칙, 주거, 교육, 소득 정책 등에 대한 국가의 역할, 이 원칙이 실제 사회에 적용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과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지난 20일, 재단법인 여시재에서 1년간 오피니언 리더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했던 이 이사와 마주앉았다.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근본 문제는 ‘개인’이 취약해졌다는 것 ―이 이사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과 동일하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개인이 너무 취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갈 힘이 부족하다. 이런 상태가 오래돼서 의존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적이다. 둘 다 취약해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60~70년대에는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 정책 때문에, 개인이 국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IMF 금융

[Cover story] 헐크 이만수가 요즘 행복한 이유①

2014년 10월 SK와이번스 감독직 은퇴 후 라오스 ‘아짱’으로 변신 ‘밥’ 대신 ‘꿈’…야구 하나가 만든 변화     “10회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만수(60) 전 SK와이번스 감독은 자신의 현재를 이렇게 설명했다. 본게임은 끝났는데, ‘나눔’이라는 연장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롭고, 완벽하게 감사한 삶이란다.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다. 47년 야구 인생을 끝낸 2014년 10월, 그는 아내 깜짝 선물로 동유럽 여행권을 준비했다. 그런데 라오스의 교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좀 와주세요.” 간곡한 부탁이었다. 감독 시절,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이 교민에게 “바쁘니 나중에 가보겠다”고 약속한 후 야구용품을 보내주긴 했지만, 진짜 요청이 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망설이는 그에게 아내가 따끔하게 한마디했다. “동유럽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다음 달, 그는 동유럽 대신 라오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소년 야구단 ‘라오 J브러더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4년 후, 이만수는 더 이상 ‘헐크’가 아닌, 라오스 ‘아짱(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불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 15일, 서울 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야구로 최정상에 섰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꾼 한 통의 전화   -라오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원래 ‘라오 J 브러더스’ 야구단은 2014년에 현지 교민인 제인내 씨가 만든 거예요.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회사 주차장에서 야구를 했는데,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더래요. 몇명을 모아 캐치볼을 하다, 규모가 커져 야구단까지 만든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전문 야구 지식이 없어 가르치기가

[Cover story] 헐크 이만수가 요즘 행복한 이유②

왕년의 야구 스타, 거절 당하며 첫 사회 경험  “야구로 정상에 있을 때보다 나누며 사는 지금이 더 행복해”   지난해 7월, 이만수는 야구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라오스 총리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다. 그는 이제 라오스에 야구장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엔 라오스 올림픽조직위원장과 교육체육부 장관을 만났다. 그 결과, 와따이 국제공항 남쪽에서 20㎞ 떨어진 부지 2만평을 50년 동안 빌리는 것을 승낙 받았다. 그는 한국의 ODA(국제개발협력) 자금을 통해 라오스 야구장 건립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부처도 쫓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결실을 맺기까지 그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좋은 일을 ‘잘’하는 것 또한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했기 때문. 사회공헌과 나눔에 있어서 ‘뉴 페이스’인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 스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신입사원의 자세로 직접 뛰어다녔다”고 했다.    ◇거절당하고 도전하며 깨닫게 된 것들   -한국에 돌아와서 후원자를 만나러 다녔다고 하던데. “네. 과거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때 친절했던 사람들이 싸늘하게 돌아서더군요. 50명을 만나면, 50명 모두가 제 부탁을 거절했어요. 대놓고 사기꾼 취급을 하더군요. 세상이 냉정한 곳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아요. ‘왕년의 야구 스타’ 이만수도 별 수 없나보다 싶었죠 (웃음). 후원받아오겠다고 큰소리쳤던 라오스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발로 뛰었죠. 5개월이 지나자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제가 아이들 돕는 일을 일회성으로 할 줄 알았거나 언론 플레이하는 정도로 생각했던

유엔(UN)기구 취업 전망은? 올리비아 아담 UNV(유엔자원봉사단) 사무국장 인터뷰

대학생, 청년, 시니어 등  UN자원봉사단 통해 국제기구 취업문 활짝 UN경력 30년 베테랑, UN자원봉사단 사무국장 국제기구 취업 전망을 말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UN 경력 30년의 베테랑, 올리비아 아담 ‘UN자원봉사단(UNV·이하 UN 봉사단)’ 사무국장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력”을 꼽았다. 그는 1987년 국제연합자본개발기금(UNCDF·빈곤 국가를 원조하기 위해 세워진 UN 산하 기관)으로 입사, UNDP(유엔개발계획) 유럽·뉴욕·우크라이나 사무소 대표를 거쳐 지난 2월 UNV 사무국장으로 임명됐다.   UN봉사단은 UN개발계획(이하 UNDP)의 산하기구로, 전세계 지속가능한 개발과 평화 유지를 위해 봉사자들을 다양한 국제기구 현장으로 파견하는 국제기구다. 현재 총 153개 국적을 가진 6796명의 봉사자가 126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UN봉사단은 국제기구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필수 코스로 불린다. 글로벌 현장에서 국제기구 업무를 익히면서도, 개발 지원 및 인도적 구호 사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 우리 정부는 2013년부터 전문봉사단, 청년 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대학(원)생만 선발하는 대학생 봉사단 파견도 시작했다. 25세 이상이면(청년 봉사단은 만 23세 이상 만 29세 이하) 지원할 수 있고, 올해 선발 인원이 두 배로 껑충 뛰었다. UN봉사단을 마치고 국제기구에 입사하는 비율도 늘고 있다. 올해 선발된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PO) 최종합격자 10명 중 2명이 UN봉사단 출신이었다. 이번달 14일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아 아담 사무국장에게 국제기구 취업과 UN봉사단의 전망을 물었다. -UN 산하 기구에서만 30년을 일했다. 아이티,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어떤 변화를 체감했는지 궁금하다. “지난 30년간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빈곤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식수 및 위생 환경도 개선됐다.

2300명 취약 계층 마음의 병 고치는 여인…늘품상담사회적협동조합 최옥순 이사장

최옥순 늘품상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희수야, 잠깐만!” 2006년 경기도 수원시의 가출 청소년 쉼터. 상담을 받던 아이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옷깃 사이로 보이는 아이의 손목은 성한 곳이 없었다. 여러차례 그어진 자해 흉터로 가득했다. 어제는 죽을 각오로 락스물을 마셨다고도 했다. 다섯 살 때 서울역 화장실에 버려진 이후 거리를 떠돌던 중학교 2학년생 희수(가명)였다. 상담가 최옥순(49)은 그런 희수를 붙들었다. 도움을 청하러 제 발로 쉼터를 찾아온 아이였다. 초등학생때 찾아온 엄마는 세 달만에 다시 떠났고, 아빠와 여관방을 전전하다 결국 가출을 택한 아이. 최씨는 아이가 미술치료를 통해 건강하게 분노를 표출하도록 하고, 개인상담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며 희수를 돌봤다. 4개월에 걸친 상담 마지막 날, 희수는 이렇게 말했다. 10년간 한결같이 희수와 같은 가출청소년을 품어온 한 여인이 있다. 수원시 늘품상담사회적협동조합을 이끄는 최옥순 이사장의 이야기다. 최 이사장은 청소년뿐 아니라 아동,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등 수원 지역 취약 계층의 심리 상담을 도맡아왔다. 지난 2014년 조합을 설립하고 만 3년 만에 그녀의 품을 거쳐 간 이들만 2300명에 달한다. 지역 사회 가장 외진 곳에서 이웃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상담은 나의 운명…오히려 내가 행복하더라    “어르신들이 제가 나타나면 손뼉치며 너무 좋아하시는거에요.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다음에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셨대요. 그때부터였죠. 저의 상담 인생은(웃음).”  최 이사장이 처음부터 상담가의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수원여성회에서 상근활동가로 활동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치매노인

[주목! 임팩트 비즈니스] 전국 수유실 위치를 한 곳에서 확인하세요, 위드마이베이비

“사촌 언니와 공원에 놀러갔는데, 조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려서 당황했어요. 언니가 젖이라도 물리면 좀 나을까 싶어 인근 수유실을 찾았는데 정보가 없더라고요.” 대학생이었던 안주형(28)씨. 사촌 언니 덕분에, 엄마들이 수유실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아기 엄마들이 백화점을 약속 장소로 선호하는 이유도 수유실 영향이 컸다. “엄마가 되고나면, 활동 공간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공원에 가도 제대로 갖춰진 수유실이 없어서 산책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백화점 산책’을 택하는 거죠.”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엄마가 됐을 땐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2014 삼성투모로우솔루션’ 공모전 문을 두드렸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선배였던 함종우(31)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어플을 만들어보겠다고 의기투합했다.  먼저, 약 6개월간의 시간을 걸쳐 전국의 수유실 정보를 통합했다. 지하철, 백화점, 호텔, 음식점 등 곳곳에 산발적으로 수유실이 설치돼있었으나, 위치 기반으로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었던 것. 전자레인지, 정수기, 아기 침대 등 수유실 안에 구비된 물품, 정확한 위치, 운영 시간 등 진짜 살아있는 정보를 찾았다. 그렇게 전국 1200개 수유실 정보를 한 곳에 모았다. 과정도 쉽진 않았다.  “엄마인 척 전화를 돌렸어요. 대학생이라고 말하면 제대로 응대도 안해줘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까칠하게 대답하기 일쑤죠. 카페에 앉아서 친구와 둘이서 돌아가면서 전화를 했는데, 콜센터 직원인 줄 알았어요. 정확하게 어느 관에 있냐, 수유실 안에 무엇이 있냐 등 꼬치꼬치 물었어요. 여자분들이 받으면 괜찮은데, 남자분들이 응대하면 ‘한 번도 안 들어가봐서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수유실 빅데이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