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MZ세대를 위한 ESG 지침서

MZ세대에게 ESG는 생존의 문제다. MZ세대가 부양해야 할 노인 세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정작 본인들을 부양해야 할 다음 세대는 턱없이 줄어들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모두 65세 이상으로 진입하는 2028년이면 국내 노인 인구가 1400만명을 넘을 예정이다. 2061년 노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44%에 이를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에 달한다. OECD 최상위권이다. 반면 올해 22세인 2000년생은 64만명이다. 안타깝게도 MZ세대를 백업해야 할 2021년생은 약 20만명에 불과하다. 출산율은 증가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MZ세대들이 국민연금을 받을 시기인 2055년이 되면 국민연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MZ세대의 노후에 매우 중요하다. 국민연금의 운용규모는 지난해 1000조원에서 꾸준히 증가해 2040년에는 2494조원에 이를 예정이다. 이 자산은 국내외 주식에 40%, 채권에 42%를 투자하고 있다. 약 6000조원을 운용하는 미국의 퇴직연금 401K를 통해 이른바 ‘연금 백만장자’가 나오는 것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좋은 기업에 현명한 투자는 필수다. 지속가능한 좋은 기업에 장기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MZ세대에게 돌아갈 연금을 지킬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이다. 국민연금 또한 2022년부터 ESG 투자 비중을 50%로 확대하고 자체 ESG 평가 기준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에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도 ESG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요소다. 발전소, 자동차와 비행기, 건물 냉난방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농업 폐기물과 축산 분뇨에서 배출되는 메탄 등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로 전 지구적으로 기록적 고온과 유례없는 가뭄이 속출하고

이종현 AVPN한국대표부 총괄대표
[사회혁신발언대] 100세 인생, 새로운 길을 여는 ‘제론테크놀로지’

21세기 디지털 기술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가상현실 ·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역사, 미술 등을 배울 수 있고, 기업들은 기존 경영 방식을 바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지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노년층은 때때로 불편함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심각성을 감안해 UN은 2021년 10월 세계 노인의 날 주제로 ‘모두를 위한 디지털 형평성(Digital Equity for All Ages)’을 선정하기도 했다.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는 노년층의 디지털 형평성 증진을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제론테크놀로지는 ‘노인학(Gerontology)’과 ‘기술(Technology)’ 두 단어의 복합어로, 노년층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그들에게 최적화시킨 기술을 의미한다. 고령화가 심화하는 범지구적 현상을 과학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고자 하는 게 목표다.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인공지능 돌봄, 원격진료, 위급상황 시 도움 요청 연계 등 스마트 리빙 서비스를 통해서 노년층의 고립을 예방하고 일상생활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론테크놀로지는 단일 분야의 연구에서 여러 과학 분야와 융합하여 하나의 기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이는 1989년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ISG)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ISG는 30여 년간 노년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면서, 노년층이 육체적 ·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넘어서 소비와 여가생활까지 자유롭게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를 추진 중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노력이 올 10월, 대구에서 제론테크놀로지 세계대회로 다시 한번 꽃피울 예정이다. ‘2022년 제론테크놀로지 세계대회’는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가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ISG 2022)와 실버산업전문가포럼이 주최하는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식량위기로 다시 본 농업의 미래

“농업은 선진국형 산업이다.” 이미 농장주의 평균연령이 67세인 늙어가는 농업을 보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업을 산업이라기보다 지켜야 할 유산이라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국토의 대부분은 농촌이고, 국민 대부분은 농민의 후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온 분들에게서 농촌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도 엿봅니다. 1950년대 2000만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현재 5100만명으로 정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경지는 한때 240만 헥타르까지 늘어났지만 지금은 156만 헥타르로 줄었습니다. 국민들이 토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넘쳐나는 데 농경지는 줄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 2000kcal를 겨우 먹었지만 요즘은 3000kcal 이상을 먹습니다. 잔칫날이나 구경했던 고기도 요즘은 1인당 연간 54kg을 먹습니다. 수산물 소비량 70kg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맛있는 과일을 사시사철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 부가가치생산액의 1.8%만 차지하고 있는 농업이 만들어 온 성과입니다. 그런데 우리 농업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농업 인구 중 40세 이하 청년의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농촌에는 청년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급격하게 줄고 있습니다. 개도국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는 이미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주요 곡물자급률은 2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정부에서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고자 많은 예산을 쓰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높아지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는 갑자기 식량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유럽의 빵 공장이라 불리는 식량 수출 대국 사이의 전쟁은 전 세계에 물가 불안을 촉발했습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밀 가격은 전년 대비 50% 이상 올랐습니다.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내가 왜 옷에 맞춰야 해?

‘여자에게 다이어트란 평생 과제’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현 사회의 많은 여성이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한다. 나 또한 여러 번의 다이어트를 시도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다. 적절한 체중 관리는 건강에 도움 되지만,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그렇지 않다. 거식증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프로아나(pro-anorexia)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다. 여성이 저체중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이어트를 하는 까닭에는 많은 외부적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그중 내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건 나날이 작아지는 여성복과 ‘프리사이즈’의 함정이다. 시중의 의류 브랜드에서는 흔히 ‘프리사이즈’라는 명칭으로 상의, 하의, 원피스 등을 단일 사이즈로 판매한다. 이름 그대로 모두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홍보하지만, 대다수는 44~55사이즈에 맞춰져 있다. 또한 프리사이즈를 포함한 여성복 라인은 나날이 짧아지고 작아지는 추세다.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작아지는 옷에 체형을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가끔 옷 쇼핑을 하다 보면 지금 성인 여자의 옷을 보고 있는 건지, 아동 코너의 옷을 보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도 아동복과 여성복을 나란히 두고 사이즈를 비교하는 사진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5~6세 여아의 옷과 10~20대 여성 옷의 크기가 같은 것은 분명 문제다. 여성복의 사이즈 축소 현상은 여성들의 의류 선택권을 박탈한다. 특히 작은 옷을 입은 여자 연예인들을 미디어에 일상적으로 노출하는 현 사회는 여성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체형을 검열하게 만든다. 해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나의 몸을 사랑한다’라는 신조(信條)의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애프터 코로나, 남은 숙제는 ‘아이의 마음’

지난 2년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만든 지난한 세월이 지나고, 우리 사회는 비로소 ‘일상’이었던 것들을 회복하고 있다. 그토록 기다린 일상회복이지만 코로나19는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바꿔놨다. 이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는 많은 숙제가 남았다. 특히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들의 고민은 한가득이다. 코로나 기간 학령기 아이들은 인생 중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시기에 귀중한 경험의 대부분을 놓쳐야 했다. 이 기간 가장 절제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은 사실 아이들이었고, 코로나19가 아이들에게 남긴 영향 역시 뚜렷하다. 최근 교육부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27%는 코로나19 이전보다 우울해졌다고 답했고 불안해졌다는 응답 비율은 26%로 나타났다. 조사한 학생 가운데 43%는 코로나19 이후 학업 스트레스가 늘어났다고 답했고, 교우관계가 나빠졌다는 학생도 31.5%, 선생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학생도 20%나 됐다. 코로나 기간 아이들의 ‘마음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였다.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한 대안은 학원, 과외, 학습지, 온라인 강의 등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듣고 보살펴줄 수 있는 솔루션은 우리 사회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간 아이들의 마음 관리는 학교와 친구들에게 상당 부분 의지해왔는데, 코로나19가 등교를 가로막자 가정에서도 뾰족한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6개월간 부모님들이 아이의 교육·돌봄을 ‘자란다’에 신청하며 보내온 요청사항을 보면, 부모들의 걱정이 짙게 나타난다. 먼저 부족해진 아이들의 상호작용을 채워주길 바라는 수요가 55% 증가했다. 특히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눠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아이의 이야기를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경영, 잘 모르지만 잘하고는 있어요

프랑스 정부는 이달 초 ‘탄소 관련 홍보 기준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다. 기업의 환경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그린워싱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이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주요 내용에는 인터넷, 텔레비전 및 포스터 등 광고에서 ‘탄소중립’을 증명할 수 없는 제품은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포함됐다. 따라서 기업은 초기 제조부터 제품 수거 또는 재활용을 통한 최종 변형에 이르기까지 탄소배출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 홈페이지나 서비스 사이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성과와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탄소저감 방안과 보상을 위한 명확한 전략도 기재하도록 했다. 글로벌 자연보호 비정부기구인 세계자연기금(WWF)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광고 중 멋진 자연을 질주하는 SUV 광고가 너무 많다며 이를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고 속의 SUV는 아름답고 거친 풍경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SUV 차량은 타 승용차에 비해 많은 연료를 소비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자연을 위해서는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며, 항공부문에 이어 탄소발생의 주범이라고 경고했다. 그린피스, 지구의벗 등 환경분야 NPO들은 글로벌 정유회사인 토탈에너지(TotalEnergies)가 벌인 환경캠페인이 그린워싱이라며 지난달 법원에 제소했다. 토탈에너지는 풍력 발전, 태양전지 패널 및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배경으로 ‘탄소중립 추구’ ‘넷제로 사회 달성’ 등의 메시지를 광고에 담았는데, 이러한 주장에 근거가 없고 회사가 제시한 전략이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넷제로’ 또는 ‘탄소중립’ 목표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2021년 3월부터 최근까지 16개의 광고가 그린워싱에 해당하여 광고금지 명령을 받았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14 센트면 충분한가요?

지난해 말 글로벌 벤처 투자업계에 대한 통계 자료를 살펴보던 중 수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달러가 투자될 때마다 14센트가 기후테크 영역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투자금의 14%가 기후 부문에 투입된다는 의미는 뭘까?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 해소에 충분한 비율일까? 아니, 더 나아가 정말로 자본이 기후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까? 질문이 머리속에서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친환경 테마를 중심으로 한 ESG·그린뉴딜 펀드, ETF는 이제 벤처 영역뿐만 아니라 전체 자산 시장 내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에서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하고, 녹색채권의 기준뿐만 아니라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환경 기준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소풍벤처스 역시 100여 개의 투자 포트폴리오 중 20% 이상을 폐기물 수거, 재생에너지, 대체 단백질, 미생물, 수목 관리 등 기후 영역에 투자해왔다. 최근에는 농식품, 재생에너지, 그리고 순환경제 영역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대량 소비 사회에서 폐기물 이슈는 생산과 재순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라스틱의 역습은 인류의 건강 문제를 위협하고 있다. 탄소가 가장 많이 절감될 영역으로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인류·산업의 근간이 에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식탁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또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장소다. 조금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기후위기의 해결이 우리 식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먹거리의 생산과 운송, 보관, 가공, 폐기에 이르는 농식품 밸류체인의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친절의 별점

대학 시절 1년간 갭이어(Gap-Year)를 가진 적이 있다. 3학년을 마친 직후였다. 30kg짜리 배낭을 둘러메고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거쳐 서유럽과 중남미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생도 했지만 값진 경험들도 많이 얻었었다. 애초 계획은 영국 어학연수였지만, 오랜 벗이자 선배인 영곤 형이 줬던 책 한 권이 방향을 틀게 했다. 2007년 출간된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라는 책이다. 저자의 파란만장한 여행기에 큰 자극을 받은 나는, 또 다른 오랜 벗 월호 형과 함께 긴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중에 얻은 대부분은 거저 주어진 것들이었다. 굶주린 여행객을 위해 기꺼이 먹을 것을 내어주는 분들도 있었고, 하룻밤 묵을 자리를 제공한 분들도 있었다. 매번 값을 치르고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여행 시장’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의와 친절, 환대의 영역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짜 값진 경험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의 진짜 소중한 것들은 비용을 내고 구입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관심,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놀이와 간식의 추억, 첫사랑과 함께 주고받았던 배려와 희생 그리고 다툼의 기억들. 모든 것이 불현듯 찾아왔다. 인류와 커뮤니티를 지탱해온 실체는 거래가 아닌 공유는 아닐까. 유럽에는 전통적인 환대의 문화가 있다. 집마다 방 한 칸은 꼭 손님방(Guest Room)으로 꾸며 놓고는 하는데, 손님이 찾아오면 방과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쉬어가도록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집에 손님으로 방문하면 그런 환대를 받게 된다. 손님방 문화를 여행 상품화한 것이 바로 ‘에어비엔비(Airbnb)’다. 재독(在獨)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선자에게도 커피가 필요하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가 화제다. 일제강점기 영민함과 자존심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던 젊은 여인 선자는 갑작스런 임신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다. 무력으로 조국을 지배하는 제국의 심장에 던져지는 것도 어려운데, 남편은 병약하고 일자리 없는 가족은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 그러나 선자는 온갖 역경을 이겨, 가정을 일으키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갑자기 고향을 떠나거나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업루티드 피플(Uprooted people)’이라고 한다. 뿌리가 뽑혀나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뿌리를 잘 내려도 흔들리며 갈등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데, 예상치 않았던 사건은 우리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곤 한다. 사람만을 다른 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따라 삶의 총체를 구성한 생활양식과 지식과 기술 등도 함께 이동한다. 업루티드 피플을 따라, 세계 각지를 이동하며 그들의 삶을 달래준 대표적인 상품이 커피다. 별빛을 따라 육로의 무역 길에 나선 아라비아 상인들과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목숨을 건 대항해의 끝에서 아프리카 노예의 손을 빌려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끼니가 되어 주고, 프랑스 혁명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전쟁만큼 커피의 확산을 촉진한 단일 사건은 없다. 커피는 미국 남북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할 정도로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필수적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 봉쇄령을 내려 남군의 커피 보급을 끊어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했다. 남북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과 함께 커피의 아메리카 대륙 여행은 시작됐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원두 대신 인스턴트 커피가 병영에 투입되며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봄 여행은 농촌으로

봄이 왔습니다. 코로나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전염병에 시달려 왔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왔듯이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 또 어떤 바이러스가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잘 이겨낼 것입니다. 이번에는 RNA 백신이라는 걸출한 과학기술 덕분에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도 전파력은 커지고 치명률은 떨어지는 경로에 접어들면서 그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지난 두 해는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이웃들은 알록달록하던 색을 잃고 점점 더 무채색으로 바뀌어 갔고, 이웃 간 거리만큼 사회는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이제 봄과 함께 다시 우리가 잃어버린 색을 찾아갈 때입니다. 남도로부터 시작된 꽃 소식은 이제 수도권에 다다라 절정을 치닫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수많은 사람이 산과 들을 찾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은 해외로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합니다. 사회학자들은 보복 소비가 일어나면서 거리로 관광지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럴 때 농촌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흰 매화가 지고 벚꽃이 만개하는 시절이 지나면 붉은 복숭아 꽃이 온 산을 물들이는 때가 옵니다. 지천으로 깔린 노란 민들레는 은빛 씨앗을 하늘로 흩뿌리고 영산홍이 길거리를 수놓을 때면 사과꽃이 수줍게 피기 시작합니다. 마늘과 양파밭에 녹음이 짙어지면 감나무에서는 연노란 잎이 녹색을 더해가면서 때늦은 감꽃이 있는 듯 없는 듯 잎사귀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가끔 마을 입구나 산 어귀에서 마주치는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을 볼 때면 그

[진실의 방] 어떻게 감히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공식 석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 반응은 냉랭했다. 교육 당국은 ‘폭력’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어떻게 감히’ 학교라는 숭고한 단어와 조합할 수 있느냐며 극렬하게 반발했다. 지금은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그때는 그렇게 저항을 받았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을 세상에 끄집어낸 사람은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 김종기씨다. 1995년 회사 업무차 떠난 중국 출장길에서 그는 열여섯 살 외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던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죽음으로 그는 죄책감과 절망감 속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가해 학생들이 여전히 학교에 남아서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제 아이들의 진학과 앞날을 걱정하며 연락을 피했고, 학교는 폭력을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흔한 문제로 치부하며 덮으려 했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학교 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게 됐다.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는 아버지가 두 번 다시 없기를 바라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지금의 푸른나무재단)이라는 시민 단체를 설립했다. 정부는 그가 벌이는 일을 몹시 불편해했다. 단체 이름에도 ‘학교 폭력’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막았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라는 게 이유였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지만, 인내심과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그 숙제를 해내는 사람은 대부분 당사자다. 당사자들의 분노와 절박함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 어떻게 감히 흑인이 백인과

정일선 굿네이버스 탄자니아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우리의 지구, 우리의 건강’은 지켜질 수 있을까

아프리카 최대의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는 ‘신이 내린 선물’로 불렸다.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꼽힐 정도로 생물 다양성을 자랑했고, 지역 주민에게는 생계를 유지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호수는 재앙으로 변해갔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주요 원인이었다. 최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조사 결과, 고유종의 76%가 멸종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획량이 많이 감소하면서 호수에 의존해 생활하던 주민들의 삶도 더욱 고단해졌다. 기후변화로 빅토리아 호수는 기생충 번식에 좋은 환경이 됐다. 오염된 식수는 설사, 구토 등의 수인성 질병을 유발했다. 보건의료, 식수위생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특히 토양매개성 기생충, 주혈흡충, 사상충증 등의 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 NTDs) 감염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장애나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탄자니아에 속한 빅토리아호수 남부의 코메(Kome) 섬도 소외열대질환으로 고통받는 곳 중 하나다. 굿네이버스는 2009년부터 코메 섬의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의 의료 지원을 위한 소외열대질환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보다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위해 소외열대질환 클리닉을 개소했다. 지난 2020년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민관협력사업의 하나로, 한국건강관리협회와 3년간 20억원 규모의 ‘탄자니아 코메 섬 보건환경 개선을 통한 초등학생 건강증진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코메 섬 내 초등학교 12곳의 아동을 대상으로 영양실조와 빈혈 유병률을 낮추기 위한 급식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구충약, 복합 미량 영양소를 지원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생충 감염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건인식개선 교육도 병행했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우물과 화장실을 신축 또는 개보수해 안전한 식수위생시설 인프라 구축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