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조금씩 싹트고 있는 공동체 의식 모여 ‘청소년 행복지수 1위’ 국가 될 수 있기를…

지난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에서 한 여중생이 몸을 던졌습니다. 집단따돌림 때문이었습니다. 핏자국을 보았다는 이웃도 있고, 옥상 밑 계단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던 여중생을 보았다는 이웃도 있었습니다. 무수한 소문만이 휩쓸고 난 후, 사건은 점점 사람들 기억에서 잊혔습니다. 그리고 12월 대구의 한 남중생이 학교폭력으로 또다시 목숨을 던졌습니다. 출근길,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저는 가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를 생각합니다. ‘왜 그랬니, 왜 그랬어’ 하고요. 미국 시애틀에서 2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10년 여름, 일곱살짜리 큰딸을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얼굴색은 똑같은데, 말이 어눌하고 영어를 섞어 쓰는 큰딸은 금방 또래 여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유치원에 간 지 일주일이 되던 무렵, 아이는 잠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가 ‘쟤는 이상하니까 놀지 마’라며 왕 노릇을 하자, 몇몇 친절하던 여학생들도 모두 자기와 친구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나아졌지만, 놀이터에서 놀 때면 큰딸은 늘 애들이 맡기를 꺼리는 술래역할만 맡았습니다. “나대지 마라!”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왕따나 학교폭력 등의 사건이 반복되어도, 많은 사람은 “왕따 당할 만하니까 당했다” 혹은 “문제아들은 전학이나 퇴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는 그러지 않을 거야’라고 위안을 삼기도 하지요. 공동체가 아닌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 이것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어렵게 합니다. 청소년 문제 취재를 하면서 참 고약했던 건, “어쩔 수 없다. 해결책이 없다”는 패배감이 사회 전체에 가득했다는 점입니다. ‘다름’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욕심을 덜어내고 ‘행복한 기자’가 되어보렵니다

목욕탕 때밀이, 이혼전문 변호사, 성인전화방 상담원, 병원영안실 장례지도사(염습사).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씩 제가 직접 체험해본 후 르포 기사를 썼던 직업입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기업 CEO, 시민단체 대표, 교수, 연예인, 큐레이터, 경찰, 노숙자, 마약중독자…. 기자로 일하며 만나본 직업군입니다. 한국에는 1206개의 직업이 있다고 하는데, 10년가량 기자로 일하며 아마 수백 가지의 직업군을 만나보았을 겁니다. 겉으로 봤을 땐 별볼일 없지만 의외로 보람있고 수입도 좋은 직업도 있었고,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일 자체는 너무 지루하고 성취감이 없는 직업도 있었습니다. 직업마다 나름의 고충과 애환이 있다는 것만이 공통점이겠지요. 일간지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큰 고충은 ‘시간’입니다. 매일 아침 독자의 문 앞에 신문을 갖다놓기 위해, 기자들은 전날 밤을 전쟁 치르듯 보냅니다. 개인적인 약속을 자주 펑크 내고, 가족과의 저녁 한 끼를 하기 힘들지요. 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 기자라는 멋진 직업 뒤에 감춰진 그늘입니다. 지난 3년 반 동안 자의 반, 타의 반 ‘탈(脫)기자’로 살았습니다. 하루종일 전화 한 통 없네(상실감)→ 그래 잘 그만뒀어. 이제 편하게 살자(자기 위안)→ 음~ 이건 기사로 써도 좋겠네. 지금 기자 했더라면 잘할 텐데(긍정도 부정도 아닌 객관화). 딱 이 시점에 자의 반, 타의 반 기자로 돌아왔습니다. ‘넘치는 게 정보요, 발에 걸리는 게 기자인 이 정보과잉 시대에 나는 왜 숟가락을 하나 더 얹으려는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신문사 밖 세상을 구경하고 나니, 기자의 정체성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기사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초년기자 시절

[기고] 좋은 부모 되려면?

부모, 자녀 연령에 맞춰 변신 또 변신해야 우리는 흔히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의 행복은 부모에게 달려 있다”, “문제 아동은 없다, 문제 부모만이 있을 뿐이다” 등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곤 한다. 이런 얘기를 듣는 부모들은 좋은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과 더불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부모가 돼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자녀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의 이상이 ‘삶의 질 향상’이라고 한다면 좋은 부모란 자녀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삶의 질은 생의 단계마다 다른 측면이 있으며, 자녀들은 성장하고 발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기마다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영아기에는 기초부터 튼튼하게 잡아주는 역할, 유아기에는 보호자·교육자로서의 역할, 아동기에는 격려자로서의 역할, 청소년기에는 상담자·지지자로서의 역할 등이 부모에게 요구된다. 첫 번째로 영아기에는 의미 있는 상호작용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 이때 부모는 개인차를 이해하고 타고난 기질에 적합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자녀와 함께 놀이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사소하게 보이는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호기심이 많은 영아기 자녀가 주위 환경에 흥미를 느끼고 열중할 때 안전하게 주변을 탐색하도록 만들어 줌으로써 지적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면 향후 인생의 기초를 튼튼하게 잡아주게 될 것이다. 유아기에는 부모는 단지 사랑과 애정을 가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정서적이고 지지적인 가족 분위기를

[기고] “마음 움직이고 사회 변화시키는 문화예술교육은 미래 비전이다”

방선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 지난 8월,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수전 시먼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엘 시스테마로 일생을 보낸 그녀에게 가장 기억나는 제자는 ‘거리의 아이’였다. 열 살 남짓한 소년은 이미 폭력 집단과 관련되어 있었다. 악기를 주며 오케스트라 활동을 권하는 그녀에게 “열다섯 살이 되면 나는 총에 맞아 죽어 있을 텐데 이런 게 무슨 필요 있느냐?”고 반문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케스트라 활동에 재미를 붙인 그 아이는 지금은 악기관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어엿한 사회인이자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의 어린이로 시작한 ‘오케스트라의 꿈’은 오늘날 전국 35만 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꿈의 오케스트라’로 실현되었다. 예술은 삶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를 단순한 수사가 아닌, 30여년의 역사로 증명해낸 것이 바로 엘 시스테마이다. 오케스트라 속에서 청소년은 소속감과 책임감을 익혔고, 연주를 완성하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갔다. 서로 다른 악기로 화음을 연습하고, 다른 이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오케스트라는 그래서 곧 ‘작은 사회’다. 2006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후원해온 하트하트재단의 신인숙 이사장이 회상하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아들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장애아의 부모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된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경험으로 사회성과 자신감을 회복한 장애아가 우체국에 취직하기도 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공연을 가며 효도를 하기도 했다. 엘 시스테마는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비전과 창의적인

기고_ 중앙보호전문기관 장화정 관장

“아동학대 예방, 주변 관심이 필요해” 얼마 전 세살배기 자녀가 자신의 핏줄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폭행과 학대를 일삼은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고통 속에서 비명과 울음으로 호소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밤새 지속되는 아동의 울음소리를 회자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신고의무자인 어린이집 교사도 아동의 멍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아동학대로 의심하여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비참히 삶을 마감해야 했다. 비정한 아버지는 사망한 아동을 쓰레기더미에 유기하였고 한달 가량이 지나서야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법원의 판결은 비정한 친부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아동학대 실태와 사회적인 인식수준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국 사회가 놀랍게 성장했다지만 아동학대는 10년 전과 비교해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우리의 의식이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아동학대를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아동학대에 대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조차 아동학대가 단지 비정상적인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예외적인 사건이며 남의 가정사라고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서 발생되기에 결코 비정상적인 부모에 의한 사건으로 국한시킬 수 없으며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또한 가정 내 아동학대는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표현하거나 저항할 수도 없는 아동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범죄이다. 학대받은 아동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도움을 청할 주체가 부재하기 때문에 늘 아동학대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아이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기고] “국제 장애인 권리 협약에 일조 한국 ‘장애인 권리’ 위상 높아져 이젠 빈곤국의 본보기 될 때”

지난 2008년 5월 3일 유엔은 ‘국제 장애인 권리 협약’을 비준했으며, 한국에서도 2009년 1월 10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했다. 장애인의 복지라는 말은 아주 친숙하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생소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장애인’하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세계의 다른 한편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복지’보다는 ‘권리’의 관점에서 장애와 관련된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즉, 장애의 문제를 장애인 개인이나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치부하지 말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국제 장애인 권리 협약’은 지난 20여 년 동안의 이러한 생각이 얻어낸 결과이다. 우리는 장애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지체장애·소아마비·뇌성마비처럼 사고와 가난에 의해 발생하는 장애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요즘은 현대적 삶의 결과인 정신장애·뇌병변·암·당뇨·자폐증·척수장애·신장장애와 고령화에 따른 장애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노화 과정에서 80%가 장애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 국제 협약은 장애의 종류와 정도,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국적상 지위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장애인에게 차별금지와 기회균등의 원리를 적용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즉 ‘장애인의 권리’가 장애인들끼리만 노력하고 투쟁해서 얻어내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생활 속에 깊게 뿌리 내려야 한다. 한국은 이 협약의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성장애인(제6조), 독립생활(제9조) 및 접근성(제9조)을 협약에 포함시키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의 위상은 국제사회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기고] 의심들면 곧바로 ‘신고’ 예방·치료사업에 ‘후원’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간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가까운 사람들에 의한 학대로 고통받고 있다. 이에 대한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신고다. 2009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학대의 87.2%가 가정 내에서, 83.3%가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이는 이웃이나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만이 아동 학대를 발견하고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거나 몸에서 악취가 난다거나 신체 특정 부위에 멍 또는 타박상이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등 아동 학대가 의심되면 곧바로 보건복지가족부 콜센터(129)나 상담 전용 전화(1577-1391)로 신고해야 한다. 상황이 ‘학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의심’이 들면 곧바로 신고해야 한다. 실제 학대 여부 확인과 이후의 개입 과정은 훈련된 전문 상담원들에게 맡기면 된다. 신고가 늦어지는 동안 학대 피해 아동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거나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참여 방법은 후원이다. 아동 학대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 아동 및 가정에 대한 치료사업이 매우 중요하다. 학대를 경험한 아동은 신체적·정서적·정신적 손상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탈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더 큰 아픔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연쇄 살인 등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사건 중 몇몇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기고] “해외 이웃과 상생하는 우리나라 NGO 기대해”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사무총장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줄었지만해외 아동 후원 늘어나… 동정심 유발보단 최빈국 이해 돕고국제사회 목표에 맞춰 움직여야” 지난번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불과 10여년 전 IMF에 놀란 우리 국민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무섭게 오르던 환율, 싸늘하게 식어가던 경기, 그리고 구조조정과 청년실업이라는 단어. 국제사회에서는 큰 나라의 똑똑한 사람들이 일으킨 금융위기가 최빈국 국민을 더욱 파리 목숨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정설로 돼 있다. 선진국의 경제위기는 환율과 곡물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가난한 나라를 돕는 손길도 오그라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모금이 훨씬 더 잘됐다. 학교나 병원을 척 하니 지을 수 있었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줄었는지 몰라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액 기부는 늘었다. 또 월 3만원씩 지속적으로 해외 아동을 후원하겠다는 회원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 바람에 우리 NGO들이 이제는 다른 나라를 본격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돈을 받아왔던 국제본부로부터 새로운 기부자로 주목을 받는가 하면 큰 목소리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 나라도 빼앗겨봤고, 내전도 겪었으며, 지독한 가난도 겪었다. 지금 지구상에서 최고로 어려운 나라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난을 다 겪어봤으며 또 벗어나기까지 했다.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우리 국민은, 아마 국제사회가 합의한 MDGs를 안다면 더욱 마음을 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1인이 당장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와 산모의 목숨을 구하는데 내는 돈은 약 2500원 정도다. 이 액수는 국제 사회가 권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