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비뚤 쓴 아이들 손 편지에 뿌듯한 미소 번지죠”

플랜코리아 홍보대사 김성령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에서 비운의 악역(서지수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성령씨. 그녀의 또 다른 수식어는 국제아동후원단체 ‘플랜코리아 홍보대사’다. 2003년,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한 국제아동구호단체였던 플랜코리아의 홍보대사를 맡아 10년째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차인표 한국컴패션 후원자,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 안성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과 마찬가지로 김씨도 주변 인사에게 “아동을 후원하라”고 소개하는 플랜코리아의 열렬한 팬이다. “2006년에 제가 후원하는 베트남 여자아이 ‘띠똔’을 만나러 갔어요. 처음에는 마음을 잘 열지 않고 저를 어색하게 대했지만, 관심을 갖고 사랑을 표현하자 달라졌어요.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어리광도 부리는데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는지 몰라요. 나눔이 주는 큰 선물을 받게 되었어요.” 띠똔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78㎞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하지방에서 두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할머니와 사는 소녀다. 부모님은 멀리 떨어진 사이공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한다. 엄마랑 늘 떨어져 사는 띠똔에게 잠시라도 엄마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 김씨는 직접 장을 보아 음식을 만들었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띠똔 가족과 둘러앉아 먹으면서 ‘진짜 가족이 된 것같이’ 따뜻하고 행복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모두 똑같이 소중한 존재잖아요. 사랑을 나눠줘야죠. 그런 마음이 오랫동안 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남편도, 동생도 저의 권유로 아동후원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손현주씨와는 ‘추적자’에서 함께 만나 플랜코리아의 후원자임을 알고 무척 기뻤습니다.”(그녀는 현재 8명의 해외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그녀는 플랜인터내셔널이 펼치는 개발도상국

아이를 안은 13살 엄마는 학교 가는 게 소원입니다

‘세계 여자아이의 날’특집 (10월 11일) 사회·경제적 위치 낮은 10~18세의 소녀들 학교 그만두고 조혼해 14시간 일해 4달러 벌어 플랜코리아, 경제 교육과 국공립학교 편입도 지원 “이웃에 사는 친구한테 문제집을 빌리러 갔어요. 돌아오는 길에 몇몇 친구들이 우리 집에 낯선 사람들이 온 것을 봤다고 하더군요. 결혼 승낙을 받으러 온 것이었대요.” 니제르에 사는 마리아마(13)양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학교를 좋아하고, 가장 싫어하는 과목인 수학을 제외하면 반에서 4등을 차지하는 똑똑한 마리아마양. “삼촌에게 이 결혼을 그만둬 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아직 남자와 잠자리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작년에 결혼한 니제르의 하오우(가명·15)양은 심각한 출산 질병을 앓고 있다. 성생활과 출산을 하기에 육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신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다. 그녀의 아기는 출산 도중 숨졌다. “정말 겁이 났어요. 산고(産苦)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다시는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아요.” 니제르에 사는 소녀 중 75%는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한다. 36%는 15세 이전에 결혼한다. 결혼할 때까지 남편이 누구인지 모른다. 신랑은 대개 신부보다 열 살이 많다. 특히 농촌지역에선 양측 가족의 합의에 따라, 10~12세의 어린 소녀들이 조혼을 한다. 니제르는 세계에서 조혼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결혼 법적 연령이 여자는 15세, 남자는 18세이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 니제르에서 이런 얘기는 금기시된다. 국제아동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은 이 지역의 156개 학교를 대상으로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가도록 지원하고 조혼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는 ‘이매진(IMAGINE)’ 프로젝트를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⑨ 사진작가 조세현

12년간 이어온 사진 봉사…비영리단체 설립해 나눔 올인 입양아 안은 스타들의 사진전 10년째 열어 소년원생·노숙자 대상 사진 강의하기도 사진으로 자아 찾아 자폐아 치료에 활용 시대 맞춘 교육 필요 다양한 환경서 꿈 키워야 스타 연예인 화보 사진과 신제품 마케팅을 위한 잡지 광고 촬영까지…. 12년 전까지만 해도 조세현(54) 사진작가의 일정은 이렇게 채워졌다. 하지만 요즘 그의 일정표엔 노숙인 사진 교육, 소외 계층 아동 사진 치유 프로그램, 다문화 가족, 입양아를 위한 사진 촬영이 가득 추가됐다. 그는 최근 오랜 꿈을 이뤘다. 2000년부터 시작된 ‘사진을 통한 나눔’을 확산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든 것이다. 이름은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할 일만 100가지가 넘는다”며 의욕이 넘치는 조세현 사진작가, 아니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이사장을 만났다. ―몇년 전 함께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케냐 기아 현장을 취재·촬영할 때 동행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시만 해도 재능 나눔으로 ‘참 좋은 일 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아예 비영리 단체까지 설립하면서 제2의 인생을 ‘나눔’에 올인할 줄 몰랐습니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사진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시작한 게 2000년부터였어요. 대한사회복지회와 함께 입양아를 안은 스타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아 사진전(‘천사들의 편지’)을 연 게 올해로 10년째예요. 한 사회복지사의 부탁으로 입양아 백일사진 찍어주던 것이 인연이 돼 시작한 일이죠. 재작년에는 경기도 의왕의 소년원생들을 대상으로 쇠창살 안에서 사진을 강의했어요. 숙제를 내니까 기가 막혀요. ‘나가고 싶다’ ‘반성’ 등의 제목으로 구석에 웅크린 자신의 모습을 찍어와요. 이주 노동자나 서울시의 노숙자

아동 폭력 예방 지침만 알려주는 건 도움 안돼

박은숙 초록우산 서울아카데미 원장 인터뷰 초록우산 서울아카데미는 ‘캡(CAP·아동 폭력 예방)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다. 박은숙(43) 원장은 아동 실종 분야 전문가로, 지난 2009년 국내에 캡 프로그램을 도입한 주역이다. 잇따른 아동 폭력 문제에 대한 해법을 듣기 위해 박 원장을 찾았다. ―캡 프로그램의 특징은 뭔가. “우리는 지금까지 아동 폭력 예방 지침만 알려줘왔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하는데, 이런 지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침에 나오지 않는 사례가 너무 많아, 아이들이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유괴나 성폭행 위협이 되는 낯선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미국 아이들은 평범한 사람을 그린다. 반면, 우리 아이들은 마스크 쓰고 지저분하고 무섭게 생긴 남성의 모습을 그린다.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위험한 상황을 분별하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캡 교육의 목적이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어떤 효과가 있는가. “우리나라는 성폭력 관련해 신고율이 10%밖에 안 된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캡 교육이 끝난 후 한 아이의 소감문에 ‘저는 성폭력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마음이 불편해서 포커페이스를 했다. 역할극을 보고 내 잘못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고 썼더라. 역할극을 통해 또 강조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반드시 얘기하라’고 한다. 학교와 집에 신뢰할 만한 어른이 누가 있는지 교육 시간에 질문한다. 우리가 아동 교육뿐 아니라 부모 교육, 교사 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하는 이유다. 30분 동안 리뷰 타임을 통해 나온 상담

[Cover Story] ‘세계 여자아이의 날’ 인도 현지 르포

소녀들의 미소… “가난한 우리에게도 꿈은 있어요” 타라 쿠마리(16)양을 만난 것은 지난 14일 오전이었다. 곱고 수줍은 표정의 얼굴이 꺼칠꺼칠한 맨발과 대조적이었다. 5남매와 부모를 포함한 일곱 식구가 사는 곳은 어두컴컴한 단칸방 하나. 이곳 차가운 돌바닥에 때묻은 이불을 덮은 채,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염소똥을 치우고, 물을 긷고, 아침을 준비한 후 동생들 등교를 돕는다. 일곱 살 때부터 하던 일이라 익숙하다. 3개월 전부터 쿠마리양은 아침마다 30㎞ 떨어진 시내 공사현장으로 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멘트나 모래, 벽돌 등을 짊어지고 나른다. 하루 8시간 꼬박 일해서 번 돈은 130루피(1루피=약 20원). 이 중 교통비 명목으로 30루피를 떼고 나면 100루피가 남는다. 너무 힘들어 이틀 걸러 하루꼴로 쉬어야 한다. 이렇게 번 돈은 한 달에 1500~2000루피로, 우리 돈 4만원쯤 된다. 이 돈이 일곱 식구의 생활비 전부다. 쿠마리양은 초등학교 1학년을 채 끝내지 못했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했고, 염소 10마리를 돌봐야 해서”라고 답했다. “왜 공사장에서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는 “아빠가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3개월 동안 일을 못해서”라고 답했다. 그녀에겐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오빠가 있다. “오빠가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오빠가 어떻게 공부를 그만두느냐”고 반문했다. ◇엄마 병간호 때문에, 집안일 돕느라 학교를 그만두는 여자아이들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거리의 라자흐스탄주 한 도시인 우다이푸르. 기자는 지난 13일과 14일, 이 지역 일대의 여자아이들을 잇따라 만났다. 국제아동후원단체

친생부모 동의후 가정법원 허가 받아야 입양 가능

허남순 교수 인터뷰 미혼모 출생신고해도 아이를 입양 보내면 아예 흔적 남지않아 양쪽부모 알고 지내는 개방입양이 세계추세 입양, 특히 해외 입양은 우리나라에서 늘 동전의 양면 같았다. 해외 입양인의 눈물겨운 성공스토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도, 연간 1000여명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된다는 부끄러운 이면은 애써 외면했다. 지난 8월 5일부터 시행된 개정 입양 특례법으로 우리나라는 입양 문화 ‘후진국’을 벗어날 수 있을까. 허남순(64)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통해 달라진 입양 특례법의 취지와 의미, 방향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번에 개정된 입양 특례법의 취지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비밀 입양이 대부분이었다. 또 입양 부모를 중심으로 입양이 이뤄지다 보니, 입양 아동의 권리나 복지가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있었다. 입양 부모에 대한 범죄 조회도 부족했고, 입양 부모가 이혼하거나 입양 아동과 갈등을 빚으면 쉽게 관계를 끊어 졸지에 고아가 돼버리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서 가정법원의 허가를 통해 입양이 이뤄진다. 친생부모와 아이의 법적 관계는 완전히 종료된다. 입양 아동과 입양 부모 모두 법적인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미혼모에게 아이를 출생한 후 일주일 동안 숙려기간을 두고 입양 동의서를 쓰도록 했다.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키우면 어떤 경제적 지원제도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고민할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비밀 입양을 선호하는 반면 선진국은 입양에 대해 훨씬 관대한 문화다. 현실을 앞서가는 법 아니냐는 지적이

“선진국형 입양 제도로 뿌리찾기 쉬워져요”

입양특례법이 바뀌었다, 비밀입양은 이제 없다 친부모는 반드시 출생신고 일주일 숙려기간 거쳐야 국내입양 우선 추진하고 양부모 자격심사도 강화 입양 정책 정착 위해선 사회 인식 변화 중요해 “나에 관한 정보인데, 당사자인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어요.” 지난 6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인카스(InkAS) 사무실에서 만난 그레이스(가명·28)씨는 3년 전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스씨는 2009년 처음 한국에 왔다. 해외입양인들의 한국 방문과 정착을 지원하는 (사)해외입양인연대의 가족 찾기 여행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한국의 입양기관에서 넘어온 자료에 친생모의 이름이 남아있다”는 소식에,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왔다. “저는 생후 4개월 만에 미국 켄터키주로 입양됐어요. 백인 중산층 부모님에다, 백인들만 다니는 사립학교를 나왔죠. 나만 유일한 동양인이고,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내가 태어나던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궁금했어요. 열아홉 살 때 양부모님이 한국 여행을 보내주려고 했는데, 그때는 제가 ‘한국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어요.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스물여섯 살이 되자 스스로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무너져내렸다. 자신이 태어났던 경기도 구리의 병원은 이미 사라져버려 출생기록을 볼 수 없었다.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는 “기록에 엄마 이름은 없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망과 분노 때문에 그녀는 나머지 여행 일정을 포기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레이스씨는 “나중에 입양기관에서 받아본 원본서류의 복사본에는 가족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씨는 이후 한국을

[100만개 꿈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①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 돕고파”… 초록우산 안에서 꿈 키우는 아이들

특정분야에 재능있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돈 때문에 꿈 포기 않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서 재능계발비 지원해 꿈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에게 꿈은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꿈이 사라진 삶이란,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가난해도 꿈을 품고 산다면, 이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다.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로 가난과 소외, 절망을 넘어선다. ‘더나은미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이 경제 사정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100만개의 꿈’ 캠페인을 전개한다. ◇”금메달 따면 아주 좋은 집을 짓고 싶어요. 우리 가족을 위한.” 경북 울진에 사는 사격유망주 전정원(17·죽변고)군의 롤모델은 런던올림픽 사격금메달 2관왕 진종오 선수다. 전군의 가족은 정신지체장애인인 엄마, 연로한 80대 할머니 이렇게 셋뿐이다. 전군은 그 꿈에 바짝 다가와 있다. 그가 속한 단체팀은 출전하는 대회마다 1~3위를 휩쓴다. 한회회장배 전국사격대회, 제20회 경찰청장기 전국사격대회, 제33회 충무기 전국 중고등학생 사격대회, 제41회 봉황기 전국사격대회 등 지난해에만 5차례 단체전 1위를 기록했다. 전군이 사격을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도 안 가고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코치님한테 잡혀서 사격부에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노정만(32) 코치는 “정원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 해 안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집까지 찾아갔는데,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하는 걸 ‘사격부 들어오면 먹고 자는 걸 해결해주겠다’고 말하고 억지로 시켰다”며 “여긴 에어컨도 있고 먹을 것도 많아서인지 이젠 집에 보내줘도 안 간다”고 웃었다. 사격은 사춘기 반항아 전군에겐 희망이자 전부가 됐다. “학년이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⑦ 김성수 강화군 우리마을 촌장

장애인 대우하는 나라가 진짜 민주주의, 복 받은 나라 서울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렸을 뿐인데, 시야가 탁 트였다. 고층빌딩이 없고, 자동차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도심에선 짜증을 불러오던 뜨거운 여름 볕이 이상하리만치 싫지 않은 곳,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우리마을’이다. 이곳은 지적장애인 50여명의 직업재활시설이다. 김성수(82)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는 성공회대 총장을 그만두고 2009년부터 부인 후리다(80) 여사와 함께 여기서 산다. 직함은 ‘우리마을 촌장’.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모두 기증해 ‘우리마을’을 지은 김 주교는, 말 그대로 ‘버리고 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려받은 땅 2000여평을 기증해, 2000년 ‘우리마을’을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적장애인 학교인 ‘성베드로학교’ 졸업식에 갔는데, 졸업생을 불러도 애들이 안 나와요. 졸업을 해도 막상 일할 곳이 없어서 그렇다는 걸 알게 됐죠. 건립자금을 마련하려고 처음에는 성공회 성당 마당에서 커피 장사를 했는데 주변 상인들이 반대가 너무 심했어요. 아버지가 준 땅을 내놓기로 했어요. 당시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근로시설을 지어서 얘들 먹고살게 만들어줍시다’ 했는데, 배포 크게 도움을 줬어요. 처음에는 3년만 가르치면 자립해서 이곳을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나가는 거예요.”(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적장애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도, 이들을 받아줄 기업은 거의 없었다. ‘우리마을’의 장애인들은 콩나물 재배와 전기부품 조립 등을 통해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80만원대까지 월급을 받는다.) ―콩나물 공장을 통해 수익사업을 하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애인 작업현장은 정말 열악해요. 우리는 꽉 짜인 틀에 맞추기보다 자유롭고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 1차산업을 하기로 했죠.

“여성 과학자여, 일이든 육아든 그대가 행복한 일 하세요”

로레알 여성생명과학상 수상자 이공주 이화여대 교수 20년전 남성중심의 과학계 여성 과학자 1300명 모아 ‘여성과학기술인회’ 만들어 작년엔 세계여성과학자 회장으로 선임돼 활동… 여성 과학자 위해 팔 걷어 “나이 먹어도 열심히 일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걸 젊은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네요.” 이공주(57) 이화여대 바이오융합과학과 교수는 올해 11년째인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분초를 쪼개서 생활해온 습관 때문인지, 말이 빠르고 정확했다. 이 교수는 현재 직함만 여러 개다. 이화여대 대학원장,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INWES) 회장, 한국세포·분자생물학회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기초연구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등이다. 이 교수는 프로테오믹스(단백질 분석기술) 세계적인 권위자다. 암 전이,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중요 단백질의 기능을 연구해왔다. 그녀의 지론은 “과학이 발전하려면, 한두 명의 천재가 아니라 그들을 키우고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사회에서 아직 소수자인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을 중요시한다. 이화여대 약대와 카이스트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애초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일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카이스트 남자 졸업생에게는 행정고시에 준하는 3급을 줬지만,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섰다. 귀국 후 첫 직장은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덕의 수많은 정부 출연기관 연구원 200명 중 여성은 서너 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이 교수는 “여성 연구원끼리 모임을 만들자”고 주도했고, 이것을 토대로 1993년 1300여명의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가 탄생했다. “외톨이처럼 살다가 모임을 만드니 너무 좋아했어요. 수위실에서 발기인대회를 했어요(웃음). 모임이 만들어지자 회장님이 처음 고위층이 하는

사진으로 떠나는 역사 공부… ‘시간여행자’ 발대식

“잘 나오면 사진이 아니다. 사진은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나오기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찍어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김중만 사진작가의 충고에 청소년 60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사회공헌프로그램 ‘시간여행자’ 발대식이 열렸다. ‘시간여행자’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사진을 매개로 역사와 지역사회,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두산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왜 사진일까. 조부관 ㈜두산 상무는 “청소년들에게 당장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는 정서적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며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체험하고, 역사와 지역사회 등 주변을 둘러보며 긍정적이고 넓은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두산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직간접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이날 발대식에 참석한 방선규 문화예술국장은 “베네수엘라의 ‘엘시스테마’교육은 단순히 음악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선후배가 함께 모여서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 교육의 목표”라며 “이 교육을 통해 창의력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광주 ㈜두산 사장은 발대식 인사말을 통해 “스스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주말에도 먼 거리를 달려와 면접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의지와 열정을 간직한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후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사진작가 배병우, 김중만씨, 양병이 서울대 명예교수, 무용가 안은미씨,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신병주 건국대 교수 등도 자리를 함께하며 청소년들을 격려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저소득가정 청소년 60명은 오는 8월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⑥ 세이브더칠드런 김노보 이사장

“내가 직접…” 참여형 캠페인 든든한 후원자 모집 비결이죠 적선하듯 돈 주던 사람들 정기후원자 한 명도 없어 길거리 캠페인 최초 시도 현재 15만명 270억 모금 ‘신생아살리기 모자뜨기’ 아내 잃은 남편이 뜨개질 해 보내는 등 감동적 사연 잇달아 한국NGO 해외원조 과제 한 지역 오래 지원해야 1919년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에글렌타인 젭이라는 여성이 전단지를 나눠주다 체포됐다. “굶주림을 물리치자”는 제목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담은 전단지 때문이었다. 적국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며칠 뒤 열린 재판에서 그녀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그 취지에 공감한 재판장은 단지 벌금 5파운드만 선고했다. 검찰은 이 5파운드를 기부했고, 이것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기금의 시작이다. 1953년 6·25전쟁 당시 한국지부를 세웠던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 30개 중 9위에 속한다. 지난해 12월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노보 이사장은 2004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30년간 기업에서 일하시다 한국네슬레 상무로 퇴직한 후 2004년 세이브더칠드런에 합류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당시 저는 심장병 어린이 치료지원을 하던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후원자였습니다. 2003년 정년퇴직하고 쉬고 있는데, 2004년 무렵 전임 이사장님께서 세이브더칠드런과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의 합병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감사로 활동했습니다. 직원 수 10여명인 작은 조직이었는데, 6개월 정도 지켜보니 너무 허술했어요. 직원들한테 10명씩 할당을 주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 후원을 부탁하는 식이었어요. 기업체에 제안서를 써가는 것도, 구걸하는 형태였어요. ‘평생 할 일인데 전문성을 키워야겠다’ 싶어서,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