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3>
사회적가치연구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 포럼 현장
“사회적 기업은 영리 기업이 회피하는 비용까지 적극적으로 부담하는데, 이는 달리기 시합에서 스스로 모래 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과 같다. 사회성과인센티브는 더 많은 모래 주머니를 찬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김효선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 포럼에서 ‘사회성과인센티브(SPC)’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진행된 ‘제1회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에서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 – SV측정과 보상’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SK가 지난 10년간 진행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의 여정과 성과를 공유하고, 앞으로의 전략을 함께 모색했다.
사회성과인센티브(SPC·Social Progress Credits)는 사회적 기업이 해결한 사회문제의 양에 비례해 SK가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프로젝트다. 2013년 다보스포럼(WEF)에서 최태원 SK 회장이 제안해 2015년 본격 도입됐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448개 기업에 711억원을 지원했다. 그 결과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약 5000억원에 달한다.
민간에서 시작된 실험을 기반으로 공공에서는 정책에 반영하는 등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제주특별자치도는 민관이 사회성과인센티브를 함께 실행하는 ‘사회적경제기업 사회성과 측정 및 보상사업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서울시, 경상남도, 전라남도, 화성시, 춘천시 등 6개 지방자치단체와도 사회성과인센티브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청중 참여 토크쇼 형식으로 꾸려진 포럼에서는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제도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고민부터, 앞으로의 과제까지 진솔한 이야기가 오갔다. 윤은주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고, 김효선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 문재원 제주도청 과장, 박성훈 사회적가치연구원 실장, 최영준 연세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 중앙정부의 ‘탑다운’이냐, 지자체의 ‘바텀업’이냐
“사회성과인센티브 지원은 중앙정부에서 ‘탑다운(top-down)’으로 일괄 적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해 점점 확산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이 효과적일까요?”
효과적인 사회성과인센티브 재원 마련에 대한 질문에 투표에 참여한 사람 중 53.5%(54명)이 ‘중앙정부지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지자체부터 시작되는 바텀업(상향식) 방식을 선택했다.
박성훈 실장은 “청중들이 ‘중앙정부 도입’을 더 많이 선택한 것처럼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면 정부와의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며 “다만 ‘지자체 도입’을 선택한 이유는 지자체에서 먼저 사례와 데이터를 쌓으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최영준 교수 또한 “중앙에서 시작할 경우 많은 국민이 정책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 의료나 연금 개혁처럼 중앙정부 정책에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해 도입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며 “지자체가 먼저 시행할 경우 다양하고 혁신적인 실험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 제도 도입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의견을 보탰다. 그러면서 “한국 지방 행정은 한 지자체가 좋은 성과를 낼 경우 확산 속도가 빠르다”면서 “제주에서 우수한 사례를 만들면 전국화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선 변호사는 “제도의 안착과 발전을 위해선 사회적 기업들이 인센티브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 보조금법 정비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사회성과인센티브의 핵심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 지원인데, 제주도의 사례처럼 인센티브가 보조금에 포함되면 용도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탄소처럼 사회적 성과도 거래할 수 있을까
“사회적 성과의 보상을 지금처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과 탄소배출권처럼 사고팔 수 있는 형식(거래화)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 중 어떤 것이 사회적 기업의 성장에 유리할까요?
사회적 기업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인센티브 형식에 대한 질문에 투표 참여자 중 67.7%(67명)가 ‘거래화’를 골랐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선택은 ‘둘 다’ 였다. 현재는 현금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되, 추후 사회적가치거래시장이 생긴다면 거래 가능한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박성훈 실장은 “현재는 사회적 성과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이 없어 현금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다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만들어지면 거래 가능한 인센티브를 발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성훈 실장은 오늘날 성장하고 있는 탄소배출권 시장과 친환경 기술 세액공제권 시장을 예시로 들었다. 2023년 한 해 동안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은 740억 달러(한화 약 98조3904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재생 에너지를 생산·판매하면 양도 가능한 세액공제권을 주는데, 시장에 풀리는 세액공제권 규모만 올해 470억 달러(한화 약 62조491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1000억 달러(한화 약 132조9600억원) 를 넘어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사례로는 경기도가 구축하고 있는 ‘RE100 거래 플랫폼’을 들 수 있는데, 기업 또는 개인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재생에너지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광주광역시는 탄소감축의무가 없는 지역의 중소·중견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배출권을 거래하는 ‘기업탄소액션’ 시스템을 12개 기업과 실험하고 있다.
사회적 성과가 거래되기 위해선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대중의 공감’이 선행 조건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문재원 과장은 “일정 수준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 의무화된다면 사회적 성과가 모자라는 기업이 사회적 성과를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며 “다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냈을 때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준 교수는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과 같은 환경 분야에 대한 측정이 사회 성과 측정보다 쉬우며 기후문제에 대한 대중적 위기의식도 높다”며 “비(非)환경 사회문제 또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측정 방식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효선 변호사는 국내에 아직 세액 공제권 시장이 없는 만큼 이와 관련된 법 또한 함께 정비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