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화)

선택 아닌 필수가 된 인권 리스크 대응, 한국 기업의 전략은?

9월 5일, 서울시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옥스팜과 임팩트온이 ESG 컨퍼런스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글로벌 인권 실사 흐름을 공유하고, 국내 기업의 대응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9월 5일, ESG 컨퍼런스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에서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관부분 총괄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채예빈 기자

지난 7월 유럽연합이 기업에 인권과 환경 실사를 강제하는 공급망 실사 지침(CSDDD)를 발효하며 인권 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 컨퍼런스는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의 관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옥스팜과 임팩트온이 함께 주최했다. 200명이 넘는 기업, 비영리, 연구 관계자가 참여해 페럼홀을 가득 채웠다.

◇ 핵심은 현장에서 듣고 변화를 만드는 것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관부분 총괄은 한국 기업이 이해 당사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는 것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44%가 인권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기업 활동의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와 소통하는 기업은 2%에 불과하다.

9월 5일 서울시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열린 ESG 컨퍼런스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에 200여 명이 참가했다. /옥스팜

음랑가 총괄은 “한국 기업은 노동조합 등 이해당사자와 소통하며 근로 환경을 살펴보는 대신 컴플라이언스, 즉 규칙에 의존하며 하향식 인권 정책을 세운다”며 “기업이 인권 정책을 실천하려면 당사자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옥스팜이 글로벌 슈퍼마켓 기업의 인권 정책과 관행을 평가하고 개선을 요구한 ‘비하인드 더 바코드(Behinds the Barcodes)’ 캠페인의 성과도 함께 공유됐다. 일례로 테스코(Tesco)는 2018년에 공급망 인권 점수가 평균이 23점이었지만, 2022년에는 이를 61점까지 끌어올렸다. 음랑가 총괄은 “고위 임원의 지지를 얻어 공급망 내 인권 향상을 위한 자원을 확보한 것이 주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엘레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은 기업이 현장 실사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와 함께 개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한국 기업도 인권영향평가(HRIA)와 같은 공급망 인권 심층실사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인권영향평가는 옥스팜이 ‘비하인드 더 바코드’ 캠페인에 활용한 조사 방법이다. 글로벌 공급망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지역 공동체, 근로자 등 기업 활동의 영향을 받는 ‘권리보유자’와 대화를 나눠야 하므로 1년이 넘는 기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책상에 앉아서 하는 조사로는 발견할 수 없는 인권 위험이 상당하다”며 “인권영향평가는 많은 경제·시간 자원을 소모하지만, 현장의 인권 문제를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해관계자와 권리보유자 모두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명확한 목표가 있는 실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 공급망 실사, 한국이 아닌 글로벌 관점에서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는 공급망 실사가 위험에 기반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험은 기업의 재무 혹은 평판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아닌 이해관계자 개인이 받는 영향을 말한다. 원칙상 기업은 위험이 심각하고 발생 가능성이 높을수록 더 광범위한 실사를 해야 하고, 가장 중대한 위험 먼저 해결해야 한다.

(왼쪽부터)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 양지원 포스코홀딩스 기업윤리팀 ESG 차장, 엘레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관부분 총괄,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이규영 SK마이써니 RF가 9월 5일 열린 옥스팜 ‘비즈니스 인권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전과 과제’ 컨퍼런스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옥스팜

민창욱 변호사는 “한국 기업은 주로 협력사의 매출액이나 근로자 수, 거래기간을 고려해 현장 실사 대상을 정하는데 이는 공급망 실사 지침이 요구하는 방법론과 다르다”고 꼬집었다. 기업 간의 관계가 아니라 기업 활동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끼치는지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규영 SK마이써니 RF는 SK실트론의 사례를 통해 인권실사를 실행한 경험을 나눴다. SK실트론은 반도체의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기업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인권 현황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 실사를 진행한 경우다.

이규영 RF는 “9개 영역 150개 체크리스트 지표를 만들어 인권경영체계를 진단하고 보고서를 인권경영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인권경영교육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와 이 부분을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외 고객사가 인권 실사를 요구할 때나 함께 미팅할 때 보고서를 활용할 수 있어 비즈니스적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토론에서 양지원 포스코홀딩스 기업윤리팀 ESG 차장은 “유럽 펀드 투자사들이 인권 경영에 개입한다고 해서 규모가 큰 자회사의 인권 경영 체계를 준비해서 만났다”며 “정작 그들이 궁금해한 것은 튀르키예의 작은 가공센터와 미얀마의 팜농장의 인권 이슈였다”고 이야기했다. 인권 실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장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지원 차장은 외부에 있는 작은 사업장에서 제3자 실사를 시행하다 보면 대기업 입장에서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느낀다며, 비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지경영 옥스팜 대표는 이날 개회사에서 “EU 실사 지침은 기업의 의사결정과 활동이 개개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맥락 아래 만들어졌다”며 “기업과 함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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