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목)

[대한민국 사회문제 지도로 그리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 ③ 취약계층 구제할 ‘착한 공급자’는 어디 있나

[미래지도 프로젝트] (3) 전문가 12인의 대한민국 가계부채·부동산 대책 진단
국내 사회적 기업 1299곳 중 6%만 소득 및 주거불안 문제 해결에 집중
그중 ‘에듀머니’·’두꺼비하우징’ 취약계층 가계부채 해결 성과 높아

가계 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 부채에 대한 국민의 불안 심리는 더욱 높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STH.I.S와 함께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안전(45%)’ 다음으로 ‘가계 부채(20%)’가 해결이 시급한 사회문제로 꼽혔다. 특히 온라인상에서는 가계 부채와 연관성이 깊은 ‘부동산 대책’ 문제가 65만7074건 검색돼, 청년 일자리(14만735건), 비정규직(10만6996건), 보육(9만1842건)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사회적기업연구소,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연구센터와 함께 진행하는 ‘미래지도 프로젝트(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사회적기업 간의 미스매치를 살펴보는 기획)’ 세 번째 순서로 가계 부채 및 부동산 대책 전문가 12인을 만나 현안과 대안을 찾고, 사회적기업의 역할을 심층 진단했다. 편집자 주


더나은미래가 ‘소득 및 주거 불안’을 야기하는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를 꼽아달란 질문을 던지자, 전문가 12인 모두 ‘부동산 시장 불안정’과 ‘빈부 격차(가구 빈곤)’를 꼽았다. 손종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기에 월세 제도에 대한 보완 없이 전셋값이 폭등하니,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주거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고, 소비와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9월까지 서울 주택의 전세 가격은 작년 한 해 상승률 4.27%를 크게 웃도는 6.37%까지 뛰었고, 서울 아파트의 전셋값 절반 이상이 3억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고정 금리, 분할 상환 등 가계 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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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의 가계 부채야말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반 근로자가 담보 없이 신용으로 빌릴 수 있는 돈이 보통 500만~100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주거용 부동산은 그나마 안전한 자산이지만, 생활비·사업 도산·의료비 등으로 빚이 늘어난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복지 서비스를 동시에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단 의견도 많았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저소득층이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들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와 경제 주체로서의 의지를 북돋워주는 서비스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 점수 “나쁨”… 민간 시장 육성해야

전문가들은 현 정부 가계 부채, 부동산 정책의 시의적절성, 효율성, 영향력 등 3부문에 대해 박한 점수를 줬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공급(행복주택)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임대주택을 공급한 점에서 효율성이 높지만, 그 외의 정책들은 시의적절성·효율성·영향력이 낮다”고 했고,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편적인 응급 처방에 매달리면 안 되고, 장기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면서 “집주인이 왜 월세로 전환하려 하는지, 사람들이 왜 빚을 지려고 하는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등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 교육 등 가계 부채와 연관된 문제가 많은 만큼 부처 간 협업이 중요하단 의견도 있었다. 김지섭 KDI 거시경제연구위원은 “고령층을 위한 노동시장, 저소득층 채무불이행을 위한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부처의 범정부적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안 모색을 위해서는 “민간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은행이 일종의 보험 상품처럼 주택 가격이 하락했을 때 떨어진 만큼만 상환하도록 하는 대출 상품을 만드는 방법도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민간 임대 주택 사업의 활성화를 재촉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KHI) 선임연구원은 “향후 집값이 오르지 않고 월세가 고착화되면, 집 관리 및 서비스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민간의 임대 주택 관리 사업이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일본의 임대주택업 매출액 1위 회사 다이토우 겐타구는 70만호에 달하는 임대주택을 건설 및 운영할 정도로 활발하지만 국내는 미약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민간임대사업자를 육성하면 주택임대시장이 좀 더 효율적이고 투명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득·주거 불안 해결하는 사회적기업 6%… 사회적 경제 조직의 역할 기대

비영리 및 사회적 경제 분야의 역할을 기대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은 가계 부채 그래프가 쭉 올라가다가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뚝 떨어졌는데, 상환 능력이 생긴 게 아니라 대부분 파산했기 때문”이라면서 “덴마크, 스웨덴이 우리나라보다 가계부채율이 높지만 건실하게 성장하는 이유는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돈을 모아 주택을 마련하거나, 비영리단체 등이 부채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 역시 “서민 대상 공공임대주택이 핵심이나,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의 ‘착한 공급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면서 “영국 등 유럽은 주택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들이 임대주택을 운영·관리하는 등 사회적 경제 차원의 해법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취약 계층의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에듀머니’는 지난 8년간 시민대상 경제교육, 재무상담, 금융복지 상담사 및 경제교육 강사 배출을 해왔다. 시민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부실채권을 매입한 후 소각하는 ‘빚 탕감 프로젝트’를 통해 3405명의 빚 약 171억7700만원을 탕감했다. 2010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두꺼비하우징’은 취약 계층의 주거 환경을 정기적으로 점검, 건물 에너지 진단·설계를 비롯해 돌봄 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소득 및 주거 불안 문제 해결을 위한 국내 사회적기업의 움직임은 미약한 수준이다.

더나은미래가 사회적기업연구소,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연구센터와 함께 인증 사회적기업 1299곳을 사회문제 유형별로 새롭게 분류한 결과, 소득 및 주거 불안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기업은 총 78곳(6%)에 그쳤다. 서재혁 사회적기업연구소 소장은 “사회적기업이 고용한 취약 계층 근로자 수가 2012년 9488명에서 1만4179명으로 갈수록 늘고 있지만, 정부 지원금 없이 도산하는 사회적기업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성장해야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빚 갚으려는 의지가 중요… 협동조합 및 청년 활동 확산돼

한편, 소득 및 주거 불안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단체, 비영리단체, 협동조합의 활동도 증가하고 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 100여 명이 출자금 1000만원을 모아 만든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이 매달 낸 출자금으로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준다. 만 15~39세 청년이면 가입할 수 있고, 출자금으로 5000원 이상 내면 첫 달부터 3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김진회 토닥 이사장은 “채무자가 직접 이자율을 책정하는 자율이자제를 도입했고, 이자를 직접 저축하도록 해 건전한 재무 관리가 일어나도록 한다”면서 “상환율은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학자금 탕감을 위해 단체들끼리 협업하는 움직임도 생겼다. 올해 초 청어람 M·희년함께·기독청년아카데미 등 7개 단체가 연합해 ‘청춘희년운동본부’를 설립, 정부 학자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한 35세 이하 청년의 일정 금액을 갚아주고, 금융교육 및 자조 모임을 지원하고 있는 것. 빚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컨설팅해 진단하는 기업도 있다. ㈜희망을만드는사람들은 채무자의 재무 상황은 물론 심리, 가족관계까지 컨설팅해 맞춤형 대출 상품을 소개하고 부채를 줄여준다.

지난해엔 미국 비영리단체 ‘B랩(B-LAB)’이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수여하는 ‘B코퍼레이션(B-Corporation)’ 인증도 받았다. 형사처벌로 벌금형을 받아 생계가 어려워진 가족에게 무이자 무담보 대출을 해주는 비영리단체 ‘장발장은행’도 눈에 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특히 청년들처럼 연대하기 어려운 고령자나 1인 가구를 위한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경제 조직을 양성하고, 소득 및 주거 불안 해소에 앞장서는 민간 단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움 주신 분: 김지섭 KDI 거시경제연구위원,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손종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연구위원,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이상 가나다순)

특별취재팀=정유진·김경하·권보람·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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