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지도 프로젝트](4) 전문가 12인의 대한민국 일자리 진단
정부, 효율성·영향력 부족한 노동시장 정책에
일자리 양극화와 청년실업문제 도돌이표
대기업·사회적 합의로 노동불안정 해결하고
사회적기업은 지속가능한 수익구조 마련해야
최근 20~30대 젊은층은 우리나라를 ‘헬조선(hell+조선의 합성어)’이라 부른다.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어려운 취업 문제가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의 올해 1분기 청년실업률은 10.9%, 체감 실업률은 11.3%에 달한다(OECD). 청년 10명 중 1명이 실업자란 얘기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STH.I.S와 함께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안전(336만8060건·77.45%)’과 ‘부동산 대책(65만7074건·13.8%)’ 문제 다음으로 ‘청년 일자리(14만735건·2.97%)’와 ‘비정규직(10만6996건·2.2%)’이 온라인상에서 해결이 시급한 사회 문제로 꼽혔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사회적기업연구소,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연구센터와 함께 진행하는 ‘미래지도 프로젝트(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사회적기업 간의 미스매치를 살펴보는 기획)’ 네 번째 순서로 비정규직 및 청년 일자리 전문가 12인을 만나 현안과 대안을 찾고, 사회적기업의 역할을 심층 진단했다. 편집자 주
더나은미래가 ‘노동 불안정’을 야기하는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를 꼽아달란 질문을 던지자, 전문가 12인 모두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와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꼽았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OECD 평균 대학진학률이 50%인데, 우리나라는 70%에 달한다”면서 “대졸자 중 취업 못한 청년이 116만명,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100만명이라 수치상으론 실업이 없어야 하는데 노동 시장과 학력 간 미스매치가 심화돼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5년 9월 기준 고용률이 60.9%까지 올랐지만, 15~29세 청년고용률은 41.7%(통계청)에 불과하다. 금재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인력개발학과 교수는 “노동 시장이 경직돼 있다 보니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 기간제, 하청업체 계약 등을 늘리고 있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고용안정성 격차가 점점 커지는 양극화 현상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보다 적극적인 청년 실업 정책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있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전 세계 연구에 따르면 사회 진출 초기에 장기간 취업을 못하면 30~40대가 돼서도 실업자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면서 “유럽에서 돈을 들여서라도 초기에 청년들에게 노동 시장 경험을 시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시의적절하지만 효율성·영향력은 ‘글쎄’
최근 노동 시장 개혁을 추진한 정부는 17년 만에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냈고, 임금피크제·청년희망펀드 등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노동 개혁을 단행한 점을 높이 평가했으나, 효율성·영향력 면에선 박한 점수를 줬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중장년 월급을 떼어다가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은 현명하지 못하다”면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시장은 경직돼 있는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박봉(薄俸)에 이직도 잦아 상대적으로 유연한데, 섹터별로 맞춤형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종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정책이 피부에 와 닿아야 하는데,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현 청년 일자리 정책은 구체적인 효과가 그려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노동 불안정 문제가 가속화되는 이유는 과거 교육·노동·복지 등 각 부처가 자기중심적인 정책을 펼친 결과라는 지적도 있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대학 설립과 인문계를 확대하는 교육 정책을 시행했는데, 반대로 이공계 수요가 높아지고 노동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면서 “최근 현장 직무 중심의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도입했지만, 인력 수급을 위한 노동 정책과 교육이 선제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하는 사회적기업…사회 안전망 역할
한편, 비정규직·기간제 고용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드는 사회적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더나은미래가 사회적기업연구소,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연구센터와 함께 인증 사회적기업 1299곳을 사회문제 유형별로 새롭게 분류한 결과, 노동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기업은 총 405곳(31.2%)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된 2007년 인증 사회적기업 50곳이 고용한 취약계층 숫자는 1403명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늘어 2014년 12월 기준 1만5815명(사회적기업 1251곳)으로 증가했다. 취약계층을 포함한 총 고용자 수는 약 3만명에 달한다. 가구를 제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일굼터’는 중증장애인 58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4대 보험, 퇴직연금 모두 보장한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다.
윤주이 일굼터 사무국장은 “3개월 실습기간 동안 모든 파트를 경험하는 ‘직무분석’을 통해 직원들이 잘 할 수 있는 부서에 배치하고, 언제든 상담을 통해 보직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사회적기업이든 일반 기업이든 직원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 배치와 배려가 회사의 효율성, 생산성, 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지름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성욱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서비스진흥센터 연구위원은 “노동 시장을 보완하려면 실직자나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민관이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시급···노동 시장 유연성·중소기업 육성 함께 가야
그러나 사회적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노동 불안정 문제의 대안이 되기엔 무리란 지적이 많다. 이종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아직까진 사회적기업 생태계가 약하기 때문에 의식 있는 청년들을 제외하곤 사회적기업이 매력적인 일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고,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지원, 국민 세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사회적기업의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418명을 고용한 포스코휴먼스, 다솜이재단(401명), 행복나래(160명) 등은 각각 포스코·교보생명·SK의 계열사 형식이거나 직접 지원·육성받아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아동·노인·장애인 돌봄 서비스로 280명을 고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도우누리 민영세 대표는 “사회적기업도 운영상 어려움으로 정규직보단 무기계약직인 경우가 많다”면서 “비정규직·청년 실업 등 노동 불안정 문제는 대기업이나 사회적 합의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사회적기업은 주류 노동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부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속 가능한 수익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단 목소리도 많았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회적기업이라도 취약계층 10명을 고용했다가 1년 후에 파산해 직원이 모두 해고되면, 그것만큼 불안정한 고용은 없다”면서 “외부 지원 없이도 시장의 냉정한 평가 속에서 성공하는 사회적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노동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용 규제 완화와 차별 금지 ▲우수 중소기업 육성 및 브랜딩 ▲민간 자율성 강화 ▲여성 경제활동 증진을 꼽았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노동 시장 규제를 완화하되, 비슷한 업무를 하는 직원들 간의 불합리한 차별을 막자’는 어젠다를 새로운 핵심 고용 전략으로 설정했다.
배진한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인력배치 전환 등 유연성을 더하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복지 등 격차를 줄여나가는 양보가 필요하다”고 했고,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자리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배분하고 베이비부머 710만명을 위한 고용 안정 조치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고용의 88%를 중소기업이 책임지는 만큼, 중소기업의 근로 환경과 임금 개선, 우수 중소기업 발굴과 브랜딩 지원을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움 주신 분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금재호 한국과학기술교육원 인력개발학과 교수,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오성욱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서비스진흥센터 연구위원, 이종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이상 가나다순)
특별취재팀=정유진·김경하·권보람·강미애·오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