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① 김상민∙김경란 부부의 ‘기쁜기부’ 남수단 아이들의 자립으로 이어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해피플’ 1호 방송인 김경란·국회의원 김상민 부부
“조금만 도와주면, 이 아이들도 자립의 꿈을 꿉니다”

기쁜 날, 우리는 흔히 “한턱 쏜다”고 합니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자연스러운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매력적인 문화입니다. 하지만 기쁘고 행복한 기념일에 기부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기념일 혹은 특별한 날에 기부를 실천하는 문화를 확대하고자 ‘기쁜기부, 해피플’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해피플은 ‘해피'(Happy)와 ‘피플'(people)의 합성어로, 기쁜 기부를 실천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해피플 1호는, 결혼식 축의금 1억원을 기부한 방송인 김경란·국회의원 김상민 부부입니다. ‘더나은미래’는 지난 5월 26~31일까지 김경란·김상민 부부의 기부금이 쓰이게 될 남수단 현장을 직접 동행 취재했습니다. 편집자 주


강연욱 사진작가
강연욱 사진작가

“작년 난민 캠프에서 울기 직전의 아이를 봤어요. 우울한 표정으로 계속 혼자더군요. 내전을 피해 달아나면서 부모님을 모두 잃은 것이었어요. 나무 밑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자는 아이에게 ‘혹시 갖고 싶은 것 없니’ 물어봤는데,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답답해, 저도 모르게 ‘지금 이 상황에서 학교 가고 싶은 게 어떻게 네 꿈이야!’ 하면서 한국말로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방송인 김경란(37)씨가 2012년부터 올해까지 벌써 4번째 남수단을 찾는 이유이자, 1억원이란 큰돈을 기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는 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 행복을 우리만 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상민(41) 의원은 “축의금에 개인 돈을 조금 보태 기부금을 마련했다”며 “아내의 남수단 사랑에 감동하고 힘을 보태기위해 실천하게 되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아내는 ‘준(準)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직원”이라며 투정 섞인 ‘뒷담화’를 하지만, 비행기 공포증과 다른 일정을 마다하고 남수단까지 따라 나섰다.

김경란·김상민 부부는 지난달 24일 남수단 구기 초등학교에 연필과 공책 등 학용품이 담긴 책가방 1000개를 직접 제작해 전달했다. /강연욱 사진작가
김경란·김상민 부부는 지난달 24일 남수단 구기 초등학교에 연필과 공책 등 학용품이 담긴 책가방 1000개를 직접 제작해 전달했다. /강연욱 사진작가

◇너무도 닮은 ‘남수단(South Sudan)과 대한민국(South Korea)’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두바이를 거쳐 남수단 수도 주바까지 비행 시간만 18시간. 공항에 들어서자, 금세 땀범벅이다. 40도가 넘지만 냉방 시설이 전혀 없는 70평 남짓의 주바 공항.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 짐과 사람이 빼곡히 뒤엉킨 채, 짐가방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기약 없이 기다리는 입국 심사에 파김치가 됐다. 그래도 김경란씨는 “아이들 만날 생각에 설렌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런 고된 여정이 벌써 4번째다.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시작은 2007년부터 무려 6년 동안 진행한 ‘사랑의 리퀘스트’였다. 기초수급자가 아닌, 경계선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모금 방송이었는데, 1년에 40억원을 모았다. “한 아이는 아직도 생생해요. 아픈 엄마와 함께 어릴 때부터 병원에서 생활하던 아이였는데, 식사를 안 하는 거예요. 당시 병원 밥이 1000원이었는데, 그걸 아끼려고요. 울음을 참으려 애썼지만 되지 않았어요. 울먹이며 ‘저 아이에게 1000원짜리 밥 한 끼 사준다고 생각해달라’고 했어요. 당시 한 통화에 1000원이었거든요. 그러자 전화 수가 갑자기 폭증했죠. 가슴이 먹먹하고 ‘아직 우리 사회가 따뜻하구나’ 느꼈어요.”

김씨에게 남수단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남수단을 보면 꼭 지난날의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식민지와 내전을 겪으면서도, 쉽사리 구걸하지 않는 자존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남수단은 80년간 이집트와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남북이 갈려 39년 동안 두 차례 내전을 치렀다.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만명 넘는 난민이 생겼다. 인프라는 파괴됐고, 건기인 지금은 식량마저 부족하다. “처음 남수단 활동에 뛰어들 때만 해도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런데 가족도 잃고, 먹을 것도 없는 이들이 ‘꿈이 있다’ ‘배우고 싶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을 매년 지켜보면서 제가 배우게 되고 감사해요.”

김씨는 2013년 ‘남수단 나눔조합(현 나눔조합)’을 창단했다. 밥장 일러스트, 강기태 트랙터 여행가, 김준영 KBS 작가, 강연욱 포토그래퍼, 태병원 프로듀서 등 나눔조합원들과 함께 남수단 방문 홍보 책자 2000부를 만들어 배포하고, ‘떼톡쇼’라는 나눔 토크쇼도 연다.

남수단에 도착한 첫날 저녁, 김경란·김상민 부부는 어린이재단 남수단사무소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작업’을 했다. 책가방에 연필 2다스, 공책 7권, 연필깎이 1개, 지우개 10개, 컴퍼스 등이 들어 있는 산수 세트 한 개를 담는 작업이다. 이 스쿨키트 한 개 단가는 30달러, 우리 돈으로 3만2000원 정도다. 모든 학용품은 우간다 제품이다. 한국산보다 품질은 낮아도, 이곳 제품을 사야 현지 경제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초록색이었으면 예뻤을 텐데” “군대에 온 기분이다” …. 김씨 부부는 손을 맞춰 1000개의 키트를 완성했다.

김상민 의원이 구기 초등학교 학생에게 티셔츠를 전달하며 응원하고 있다(위). 방송인 김경란씨가 구기 초등학교 학생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강연욱 사진작가
김상민 의원이 구기 초등학교 학생에게 티셔츠를 전달하며 응원하고 있다(위). 방송인 김경란씨가 구기 초등학교 학생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강연욱 사진작가

◇피부색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해

이튿날, 주바 시내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을 달리자, 널찍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2013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학용품과 학교 시설을 지원하는 구기초등학교 운동장이다. “Welcome, welcome, we are happy to see you(환영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740명 전교생의 신나는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졌다. 동네 주민까지 모두 운동장에 모여 한국에서 온 부부를 환영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진 것.

“내 이름은 김경란입니다.” “경량….” 주민들의 서툰 발음에 김경란은 자신을 한 번 더 소개한다. “그냥 ‘란’이라고 불러주세요, ‘란’. 여기 어르신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두 가지예요. 아이들에게 꼭 꿈을 갖게 해주세요. 그리고 여자아이들도 꼭 학교를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이어 남편 김상민 의원은 “나는 ‘킴'”이라며 따라 하자, 주민들이 킥킥 웃었다.

“대한민국이 불과 50년 전만 해도 남수단과 비슷했어요. 지금은 세계 경제 대국 10위예요. 남수단도 꿈을 갖고 학생들을 열심히 학교에 보내면, 부자 나라가 될 겁니다. 남수단에 예쁘고 멋진 학교가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어요.” 김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자, 통역도 하기 전에 주민들 사이에서 “아멘~ 아멘~”이라는 감탄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무 그늘 밑이 교실이었던 이 학교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건물 4개 동이 마련됐다. 필요한 재료는 재단이 제공하되, 건축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미셸 라두 앤드루(Michael Ladeu Andrew·43) 구기 초등학교장은 “1000명이던 학생 수가 한때 3분의 2가량 줄었으나 지금은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 740명이 됐다”고 했다. 학생 한명 한명에게 스쿨키트를 전달한 김씨 부부는 이날 오후 일일 교사로 나서, 그동안 열심히 배운 ‘색종이 접기’ 수업을 했다. 국내 최대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인 ‘V원정대’의 설립자로서, 대학생들과 독특한 나눔 활동을 펼쳐온 김상민 의원도 익숙하게 아이들과 어울렸다. 교실이 좁아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은 창문에 매미처럼 붙어 있을 정도였다. ‘동서남북’ 접는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은 금방 따라 하는데 선생님들은 어려워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김현석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남수단 국가사무소장은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주민들에게 물으면 언제나 ‘교육’을 꼽는다”며 “나는 못 배웠지만 내 자식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의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일방적’ 주고받는 것 아닌 ‘자립 협력’ 관계로

김경란·김상민 부부의 기부금 덕분에 구기 지역에는 영유아부터 여성교육까지 커뮤니티센터의 기능을 담당하는 학교가 건립될 예정이다. 남수단은 조혼이 많아, 여아의 중등학교 등록 비율은 남아에 비해 절반가량이다. 중도 퇴학률은 70%가 넘는다.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스스로 문제를 고민하고 풀려고 하는 이들은 조금의 도움만 있으면 충분히 자립이 가능하겠다는 믿음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됐습니다.”

김경란씨는 확신했다. 그녀는 “힘든 시기를 먼저 겪은 나라로서, 우리가 희망이 될 수 있는 곳에 와 있어 오히려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이번 기부와 봉사활동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밝혔다.

김상민 의원은 “우리 부부 인생의 기쁨이 대한민국에서 아프리카 남수단까지 확장됐다는 것이 놀랍다”는 말을 거듭했다. “사실 제 인생에서 남수단이라니 생각도 못 했죠(웃음). 막상 와 보니 남수단, 멀지 않네요. 나의 단 하루로 누군가의 60~70년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죠.” 그는 이러한 기쁜 날 기부와 나눔이 즐거운 문화로 정착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기쁜 날 나눔을 ‘한턱 쏘세요’.”

남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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