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 <5>
기후기술 생태계 구성원 중개하는 금융기관 필요
인류가 자초한 기후위기. 지구 생태계 파괴와 인류 멸종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28일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는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호모사피엔스, 기후위기를 말하다’라는 대주제로 물리학, 심리학, 국문학, 환경공학, 건축학, 지리학 등 여섯 분야 학자들의 강연이 진행됐다. |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지만, 실제 상용화 단계에 이른 기술은 많지 않다.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탄소 감축과 관련돼 현재 개발된 기술 중 실제 시장에 적용된 기술은 25%뿐이다. 나머지 75% 중 40%는 보유 중이지만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 35%는 여전히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술이다. 인소영 카이스트 건설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기후위기가 가속하면서 ‘기술혁신으로 탄소 중립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최근 자주 받는다”며 “좁은 기회지만 기술 혁신으로 중립이 가능하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아일랜드에서 개최된 ‘2023 미래지식포럼’에서 ‘돈이 기후를 바꾼다’를 주제로 인소영 교수가 2부의 첫 문을 열었다. 그는 IEA의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현재 시장에 상용화된 기후기술은 매우 적다”며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선 기술 혁신의 가속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인 교수는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지 않는 이유로 기술 개발과 시장 상용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스탠포드 대학 등이 공동으로 진행했던 ‘기술의 시장 진입(Tech to Market)’과 관련된 연구를 보면, 기술이 시장에 실제로 적용되려면 측정 불가능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아이디어 실현가능성에 대한 평가 그리고 초기 모델인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파일럿 테스트를 하는 것까지 기술이 성숙해질 때까지는 절차가 복잡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성숙하더라도 시장은 이런 기술을 바로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 기술이 탄소 중립에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이 됐을 때 비로소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술 개발 스타트업이나 연구자들은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에 맞닥뜨린다. 죽음의 계곡은 기술 스타트업이나 연구 프로젝트가 기술 개발 전 과정에서 겪는 운영적 어려움을 뜻한다. 인 교수는 “기술 스타트업이나 연구자들은 기술 개발 과정에서 두 개의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된다”며 “기술 개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와 상용화 단계에서 시장 진입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라고 말했다.
기후기술 관련 투자 위축에 대한 문제점도 꼽았다. “저는 기후기술 분야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드테크는 힘들다(Hardtech is hard)’. 기후 대응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투자에 비해 풍력발전, 원자력발전 등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것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하드테크는 초기 투자 비용도 많고, 유동성 확보도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투자를 해야합니다. 실제로 진행되는 기후기술 투자를 보면 약 18% 만이 하드테크에 투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후기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탄소 감축을 위한 기후기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구성원은 기술 개발자, 초기 단계 투자자, 후기단계 투자자 등 세 곳이다. 기술 개발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직접적인 기술들을 개발, 초기 투자자는 기술 개발이 원활하게 이뤄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금융을 지원, 후기 투자자는 수익을 내기 위해 해당 기술 보유 기업에 투자하는 역할이다. 그는 “기후기술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기후기술의 특성을 진단하고, 해당 생태계의 이해관계자들의 수요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이해관계자 간의 필요한 부분들이 메워 질 때 기술을 통한 탄소 중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생태계 내의 이해관계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금융 중개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인 교수는 “생태계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려면 이 세 곳을 중개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매우 중요하다”며 “해당 기관이 건강하게 작동하면 금융 혁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 중개기관의 역할은 크게 기술 개발 스타트업이 첫 손실 위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소액 투자가 이뤄지게 유도하는 것(앵커링·Anchoring), 초기단계 투자자와 후기단계 투자자 사이의 정보의 균형을 맞추는 것(균형잡힌 바벨·Balanced Barbell), 이해관계자 외에도 다양한 출처로부터 대규모 자본이 조달될 수 있도록 돕는 것(경계 확장·Boundary spanning)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