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탈북 청소년 “이웃 도우며 ‘나도 쓸 만하구나’ 자존감 생겼죠”

2006년 설립 땐 “빨갱이학교” 반발 심해
신호래 교감 부임 이후 봉사 활동 시작
고구마 농사 수익금은 라오스에 기부도
“낮은 곳에서 열심히… 편견없이 봐주세요”

정금성(22)군의 고향은 한반도 북단, 함경북도 온성이다. 2010년, 6개월간 머물렀던 라오스를 거쳐 혼자 들어온 남한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여기저기서 들으면 새터민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안 좋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겠거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위축되더라고요. 혼자 내려와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한국에서 내 존재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18년을 보냈던 함경북도 청진을 떠나, 2009년 남한에 들어온 전다원(22)양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서울의 학교에 다니다 적응이 쉽지 않아 한겨레 고등학교로 전학 온 전양은 “처음엔 많이 외롭고 두려웠다”며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 같다는 편견도 커서, 선뜻 다가갈 용기도 못 냈다”고 했다.

신호래 교감은 “많은 아이가 ‘결핍’ 없이 자라다보니 본인이 얼마나 풍족한 상황에서 살고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인성과 진로, 자아를 탐색하는데 봉사가 갖는 힘이 크다”고 했다. 사진은 사랑실천봉사동아리 학생들이 현장 곳곳에서 봉사하는 모습. /한겨레 고등학교 제공
신호래 교감은 “많은 아이가 ‘결핍’ 없이 자라다보니 본인이 얼마나 풍족한 상황에서 살고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인성과 진로, 자아를 탐색하는데 봉사가 갖는 힘이 크다”고 했다. 사진은 사랑실천봉사동아리 학생들이 현장 곳곳에서 봉사하는 모습. /한겨레 고등학교 제공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한겨레 고등학교’에 신호래(52) 교감이 부임한 건 2010년. 신 교감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다 ‘봉사활동’을 택했다. 신 교감과 전다원양이 합심해 봉사동아리를 만들고 학생 20여명을 끌어들였다. 이름도 지었다. ‘사랑실천봉사동아리’.

봉사는 가까운 지역부터 시작됐다. 학교가 위치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시골 마을. 교통이 불편해 목욕탕에 가기 어려운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차량에 모시고 함께 목욕 봉사를 가는 것. 지역 주민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건 아니었다.

“2006년에 학교가 만들어질 때, ‘빨갱이 학교 웬 말이냐, 왜 하필 이 지역이냐’며 플래카드가 붙고 반발이 심했어요. 인천에 세워질 계획이었는데, 반발에 못 이겨 산골로 내려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였거든요. 몇 년 동안 공사를 진행 못 하다가 몇 분씩 설득해가며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신호래 교감)

목욕도 시켜 드리고, 등도 밀어주고…. 할머니는 수년째 얼굴 못 본 손녀딸 생각, 손녀딸뻘 아이들은 북에 두고 온 할머니 생각을 하며 서로 더 각별해졌다. “고향은 어디냐” “오는 길이 힘들진 않았느냐”며 질문도 오가고 정도 쌓였다. “봉사하면서 처음으로, ‘그래, 나도 그래도 쓸 만하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받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고,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게 처음이었거든요. 좀 벅찼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정도 쌓이고요.”(정금성) 이제는 지역 행사 있는 날엔 ‘사랑실천봉사동아리’가 출동하고, 졸업식이며 학교 중요 행사엔 마을 주민들은 가장 중요한 귀빈이다. 마을 주민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 졸업생들을 위해 매년 장학금도 전달한다.

봉사 동아리는 목욕 봉사를 시작으로 지역 요양병원, 새터민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서울역 노숙자 ‘밥퍼’ 봉사, 현충일, 광복절 음식 봉사 등 봉사할 곳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꾀부리지 않고 일을 잘한다”며 한번 갔던 곳에서는 다시 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적도 여러 번이다.

신호래 교감은 “아이들이 원래 일을 많이 해봤기도 하고 꾀도 안 부려, 남한에서 자란 아이들보다도 훨씬 정직하게 일을 잘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남에게 해주는 경험을 하고, 그걸 통해 인정받으면서 이전보다 자존감이 높아진 게 가장 감사한 부분”이라고 했다.

2년 전부터 이들은 캄보디아, 라오스 오지로 들어가 봉사활동도 시작했다. 원칙은 봉사 경비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 봉사자가 지역에 ‘해(害)’를 끼치는 것이 아닌, 책임 있는 봉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출국 전 수개월에 걸친 철저한 준비도 필수다. “많은 아이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캄보디아나 라오스에 머물다 한국으로 들어와요. 그때는 불안한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여권을 지닌 안전한 신분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기왕이면 자기가 직접 돈을 모아서 그 나라에 필요한 봉사도 하고 돌아오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신호래 교장)

길거리 기타 연주 모금으로 돈을 모으는 아이부터 아르바이트하는 친구,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면 나오는 보조금을 다시 기부하는 친구까지 다양한 모금이 이뤄졌다. 지난해부턴 해외 봉사 기금 만들기를 위한 ‘고구마 농사’도 시작했다. 지역에서 기부한 500평 밭에 고구마를 심어, 그 수익금 역시 봉사에 보태기로 한 것. 고구마 5㎏짜리 한 상자에 1만원, 지난해에는 325만원이었던 수익금이 올해는 박스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빠르게 동났다. 무려 520만원의 수익을 남겼다.

이런 노력이 모여, 지난해 라오스엔 지역 주민3만명을 위한 평화저수지가 만들어졌고, 올해 1월에도 라오스 외진 마을 4곳에 평화저수지 4개가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올해 사랑실천봉사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박천강(18)군은 “그 어떤 봉사활동보다도 고구마 캐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도 “우리 힘으로 돈 벌어서,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게 뿌듯한 것 같다”고 했다.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 은상,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 여성가족부 장관상, 한국자원봉사관리자상 동상…. 한결같이 이어지는 봉사활동에 어느새 쌓인 수상 경력, 상금만도 상당하다. 이 모든 상금 역시 해외 봉사를 위한 마중물로 쓰일 예정이다.

“어린 나이에 상상할 수 없는 급작스러운 변화를 겪어낸 친구들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들을 향한 사회의 편견이 너무 커서, 우리가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낮은 곳에서, 할 수 있는 본인들의 몫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제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탈북’이란 편견 없이 받아주는 게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몫 아닐까요.”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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