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헌재 “친모만 할 수 있는 ‘혼외자 출생신고’는 위헌”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생부의 출생신고를 가로막는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2항, 제57조 1항과 2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에서는 혼외자의 출생신고 의무는 생모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57조는 혼외자의 출생신고를 생부도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생모가 소재불명이거나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한정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조선DB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조선DB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기혼여성과 교제 또는 동거하며 아이를 낳은 생부와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이다. 지난 2021년 8월 생부들은 자신과 아이들 명의로 “생부의 평등권과 아이들의 출생 등록될 권리가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출생 후 아동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아동 출생과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등록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이 되지 않는다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아동으로서는 이러한 관계 형성의 기회가 완전히 박탈될 수 있다”며 출생등록 권리가 사회적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는 혼인 중인 친모가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한 경우, 가족 관계가 파탄 날 것을 우려해 출생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도 감안됐다. 지방자치단체장 등도 출생신고권을 가지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가 빈번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또 생부가 아닌 친모의 남편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다만 헌재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생부의 권리까지 침해한 것은 아니라며 생부들의 헌법소원은 기각했다.

헌재는 “국회는 출생등록을 실효적으로 보장하면서 법적 부자관계의 형성에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입법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며 오는 2025년 5월31일까지 개선입법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령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이번 판결의 효력은 상실된다.

비영리단체 등 21개 조직이 연대해 결성한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30일 헌재 결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성명문은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7조는 당사국 관할 영토 내 출생한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 될 권리를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지난 1월 진행된 유엔인권이사회의 제4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서도 회원국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영토 내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출생등록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하므로 국회와 행정부는 즉각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부합하는 입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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