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화)

간판에 상인 스토리 담은 전통시장, 멋 입고 부활

– 현대카드 봉평장 활성화 프로젝트
상품·거리에 봉평장 로고 붙이고… 차 없는 거리 만들고 원산지 표시
“이야기 있는 깨끗한 시장” 소문나… 주말장 오는 고객 80%이상 관광객

봉평장 상인들의 간판과 명함엔 개개인의 얼굴과 스토리가 담겼다. 한 봉평장 상인은 “인터넷으로‘스토리 간판’이 알려지다 보니,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봉평장에 찾아오는 부모들도 생겼다”며 “얼굴 내걸고 장사한다 생각하니 어깨가 더 무겁다”며 웃었다. /현대카드 제공
봉평장 상인들의 간판과 명함엔 개개인의 얼굴과 스토리가 담겼다. 한 봉평장 상인은 “인터넷으로‘스토리 간판’이 알려지다 보니,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봉평장에 찾아오는 부모들도 생겼다”며 “얼굴 내걸고 장사한다 생각하니 어깨가 더 무겁다”며 웃었다. /현대카드 제공

’35년 성질 죽이고 스타일 살린 봉평 패션살롱, 제천상회’ ‘봉평에서 40년, 사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생선, 미래생선’ ‘아버지와 아들이 잇는 50년 전통의 잡곡 전문점, 대흥상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하얀 감자꽃, 푸른 메밀밭 사이로 난 장터 길을 따라 색색의 천막들이 들어섰다. 천막마다 활짝 웃는 주인장 사진들이 내걸렸다. 짤막한 글귀가 덧붙여진 ‘스토리 간판’이다. 메밀 전병, 메밀 부꾸미 부치는 냄새가 가득한 봉평장엔 병아리부터 고추 모종, 건어물과 야채, 강냉이까지 각양각색 점포들이 북적댔다. 지난 2일에 찾은 강원도 봉평 5일장 현장이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장, 낡은 시장에 새 활력을 불어넣다

봉평장이 생긴 건 약 400년 전.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속 장돌뱅이 허생원이 찾았던 봉평장은 여전히 끝자리 2, 7일에 열리는 5일장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30여년 전만 해도 각지 상인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 없던 시장도 이제는 옛말. 70년대 말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고 사람들이 대거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5일장 규모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100여가구 상인들이 ‘때 되면’ 봉평장으로 모여들지만 상인과 시장이 함께 늙어가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전통은 남기되 시장은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지난해 3월 현대카드는 강원도와 함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봉평장’을 선정했다. 송현주 현대카드 경영지원실 과장은 “일반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라고 하면 최신식 아케이드나 카드 결제를 위한 통신 기반 시설 등 ‘현대화 시설’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지만, 결국 사람들을 전통시장으로 오게 하는 힘은 ‘전통시장 고유의 맛’을 살리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남기고 디자인은 더하다

‘상인’들이야말로 봉평장이 가진 역사이자 힘이었다. 상인 개개인의 얼굴과 히스토리를 담은 ‘스토리 간판’에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수개월에 걸쳐 시장 옆에 세워진 간이 스튜디오에서 상인 100여명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촬영됐다. 일대일 인터뷰도 진행됐다. 2월부터 시장에 나와 메밀 부꾸미, 전병을 팔기 시작한 ‘나들이부침’ 상인 전순자(48)씨는 “부침 장사를 하기 전 봉평에서 20여년간 운영했던 미용실 이름이 ‘나들이’여서 간판 이름 정할 때 ‘나들이’로 했다”며 “부침 장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간판이나 명함 보면서 말도 오가니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는 살리되 변화도 필요했다. 지저분했던 시장 골목을 정리하고 봉평면사무소·상인들과 논의를 거쳐 5일장이 서는 날은 장터 길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다. 봉평장의 외형을 개선하고 재디자인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2010년부터 과일가게·분식점·미용실 등 소상공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가게 인테리어를 개선하고 컨설팅해온 현대카드의 사회공헌 ‘드림 실현 프로젝트’의 경험이 한껏 발휘됐다. 우선 ‘봉평장 로고’가 새로 탄생했다. 산과 들에 둘러싸인 봉평장을 상징하듯 둥근 원 모양의 로고를 만들어 거리 곳곳, 상품 여기저기에 붙였다. 품목(농산물·수산물·먹거리·의류·잡화)에 따라 천막도 5가지 색상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손님들의 눈높이에 맞게 매대를 바꾸고 원산지·가격 표시판도 달았다.

시장 한쪽 공공 화장실 앞 공터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꾸며졌다. 상인들의 타성에 젖은 판매 방식도 바뀌어야 했다. 원산지 표시며 품목 정렬, 고객 응대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7차례에 걸친 강의가 이뤄졌다. 시장을 관리할 ‘매니저’도 새롭게 구성됐다. 봉평장에 온 걸 기념하는 ‘스탬프’나 메밀놀이주머니 같은 기념품도 제작됐다. 지난 4월 27일 지난 1년간 새로워진 봉평장이 사람들 앞에 새롭게 섰다.

현대카드 제공
현대카드 제공

◇상인들 마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다

시장이 깨끗해지고 이야기가 더해지니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봉평장 중앙에 만들어진 간이 안내 데스크에서 관광지나 봉평장을 소개하는 봉평시장 매니저 박경록(43)씨는 “특히 주말장에 오는 사람들의 80% 이상이 관광객”이라며 “이전에는 오래된 5일장이다 보니 장도 지저분하고 차도 다녀 정신없었는데, 시장이 깨끗해지고 보기에도 좋아서 놀러 온 사람들한테 소개하기에도 자신이 있다”며 웃었다.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시장 상인들 간의 ‘단합’의 계기도 됐다. 다 함께 참여해서 시장을 바꾸고 교육을 들으면서 ‘나’만 생각하던 상인들이 ‘우리’를 생각하게 된 것. 김형일 봉평전통상인회장은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지곤 하는 5일장 상인들 특성상 함께 뭔가를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상인대학’도 등록하고 평창올림픽과 맞물려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려고 한다”며 “봉평장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가장 필요한 게 상인들의 단합이었는데 ‘봉평장 프로젝트’가 그런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했다.

봉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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