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람도 시키는 사람도 힘든 ‘자활사업 프로그램’
참여자들 의지 낮고 지자체 지원 부족… 창업해도 2~3년 내에 폐업… 자활 재수
지원기관도 운영비 때문에 실적에 연연
탈빈곤의 창구로 거듭나기 위해선 지자체·지역사회가 함께 도와야
센터 안에 자회사 만들어 자활 도울 예정
기초생활수급자 유민구(가명·47·경기도 안양)씨가 청소업체를 차린 건 2006년. 자활센터에서 청소 일을 배운 지 1년 남짓 됐을 때였다. 당시 자활센터에서 창업 준비를 하던 이들이 “창업하면 망한다”며 갑자기 안 한다던 회사를 그가 덜컥 맡기로 한 것. 유씨는 “사무실도 내주고, 차량과 도구도 주는데 ‘못하겠나’ 싶었다”고 했다. 동료 2명과 함께 창업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청소업계 경쟁은 치열했고, 기술력도 없고 판로도 마땅찮은 유씨의 회사는 금세 밑천을 드러냈다. 유씨는 8년이 지난 지금도 기초생활수급자다. 일해서 버는 소득이 기초생활수급비보다 적어 차액을 더 받는 상황이다. 유씨는 “매년 이 상태면 일할 이유가 없지만,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명숙(가명·47·대구광역시)씨는 2011년 이혼 후 아들딸을 혼자 돌본다. 전(前)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졸지에 기초생활수급자까지 됐다. 화병에 우울증까지 생겼다. 이씨는 최근 동사무소에서 일자리를 연계해줘서 지역의 한 식품회사에 취업했다. 과일 통조림에 내용물을 담는 일을 했다. 최저임금을 받았지만, 자립할 희망을 갖고 취업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씨는 4일 만에 그만뒀다. 이씨는 “사람들이 일도 안 가르쳐주고, 텃세만 심하게 부렸다”며 “가뜩이나 밖에 나오면 주눅이 들었는데, 우울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 관뒀다”고 했다.
◇우리 사장님은 기초생활수급자? 복지와 고용의 접점 ‘자활기업’
유씨와 이씨는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자활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다. 자활사업은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 계층에게 근로 기회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활동이다. 지난해 자활사업에 쓰인 예산은 총 7453억원으로, 10만9206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빈곤 탈출과 자립이라는 목표가 무색할 정도로 기초생활수급자를 탈피한 비율은 15.9%에 그친다. 특히 자활 참여자들이 공동 창업하는 형태의 ‘자활기업’은 준비도 없이 밀어내기식 창업으로 조기 폐업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활기업 수는 전국 1340곳이다(2012년). 하지만 지난해 자활기업 종사자의 월평균 임금은 97만원에 불과하다. 같은 해 2인 최저생계비(97만4000원)보다 낮다. 자활센터에서 근무하다 직접 자활기업을 차린 김기홍 크린서비스청 대표는 “참여자들의 역량이 부족한데, 지원마저 부족하니 2~3년 내에 폐업하고 다시 자활센터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실제 자활기업의 평균 근속 연수는 30개월에 그친다. 창업 후 인건비 일부(전체 직원의 1/3·1년)만 보조받는 등 지원책이 미비한 가운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경우도 10% 미만이다.
문제는 참여자들이 최대 3년 동안 자활근로를 하면 자활센터를 나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업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현행 자활사업 프로그램은 수급권자의 능력에 따라 ‘근로유지형’ ‘사회서비스형’, ‘시장진입형’ 등으로 단계가 올라가는 형태인데, 시장진입형 사업단이 구성되면 2년 이내에 창업하도록 되어 있다. 전직 지역 자활센터 근무자 H씨는 “센터 담당자가 봐서 ‘잘되겠다’ ‘준비가 됐다’고 해서 창업시키는 게 아니다”며 “창업팀 개수가 지역 자활센터의 평가 기준에 포함되고, 이 점수가 한 해 운영비에 반영되다 보니 실적에 연연하게 된다”고 했다.
자활센터 직원 10여명이 통상 100여명을 책임지다 보니 “촘촘한 관리가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한 지역 자활센터의 센터장은 “우후죽순으로 나가다 보니, 창업팀이나 그들과 맞닥뜨리는 소비자의 민원도 빗발친다”며 “본업보다 민원을 막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정도”라고 했다. 엄태영 경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몇 번씩 탈락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시장으로 재진입시키려면 더 많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활 관련 업무는 사회복지 분야의 ‘3D’가 됐을 정도로, 고용과 복지가 만나는 매우 중요한 전달 체계가 빈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활기업 “하는 사람도, 시키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자활사업은 희한합니다. 정책의 목표는 ‘탈(脫)수급’인데, ‘탈수급’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죠.”(D지역 자활센터 P 관계자)
이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할까봐 일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활근로 참여자의 절반 이상(65.8%, 2011년)이 조건부 수급자(근로능력의 유무를 판정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경우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받는 자)인 것은 그래서다. 의욕이나 근로 역량이 높을 리 없다. 지난 2002년 안산 지역 자활센터장으로 일하다 참여자들과 함께 자활기업을 만들었던 권운혁 사회적기업 컴윈 대표는 “업무의 기본은 영업인데,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굉장히 꺼리더라”며 “교육과 소통을 통해 이를 바꾸는 데만 4~5년 정도가 걸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활기업이 탈빈곤의 창구가 되기 위해선 지자체나 지역사회가 짐을 함께 나눠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이명숙씨의 변화가 좋은 예다. 이씨는 1년 전 ‘행복하계’라는 자활기업에 참여하면서부터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 회사는 프랜차이즈 치킨업체에 닭을 가공해 납품하는 회사다. 월 1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수급권자 딱지도 뗐다. 이 회사는 대구광역자활센터가 밑그림을 그렸고, 지역사회의 프랜차이즈 업체가 공장을 짓고, 임대를 내줬고 판로도 마련해줬다. 이 지역 자활센터 출신 12명이 회사의 주인으로, 현재 협동조합 창립총회도 마쳤다. 이씨는 “똑같이 힘든 조건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며 가족같이 일하니, 갈등도 불만도 없다”며 “언젠간 내 가게를 갖겠다는 꿈을 품는 등 삶의 의욕도 커졌다”고 했다.
박송묵 대구광역자활센터 센터장은 “자활에서 일하며 기술, 거래처, 자본 등을 획득해 창업까지 이어지는 자활기업은 자활사업의 꽃”이라며 “자활은 효율성을 앞세우면 안 되는 복지사업 분야라는 걸 잊지 말고 실무자, 참여자, 주민들이 서로 공감대를 쌓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했다.
한편 이승묵 보건복지부 자립지원과 사무관은 “자활기업이 돼도 지역 자활센터를 떠나는 게 아니라 지역 자활센터 안에서 자회사 형태로 유지되는 시범사업을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준비 중”이라며 “이를 위해 지역 자활센터 자체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