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우리 학교엔 왜 엘리베이터가 없을까?”…장애·비장애 학생 함께 국회서 ‘교내 이동권’ 촉구

“‘이 학교에는 왜 엘리베이터가 없나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위해 학교를 방문했던 선생님께 들었던 질문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었습니다.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장애인 편의시설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왜 우리 학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로 결정했습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에서 최민기(18·현대청운고3)군은 “교내 장애인 편의시설은 모든 학생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7간담회실에서는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가 열렸다. /협동조합 무의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7간담회실에서는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가 열렸다. /협동조합 무의

협동조합 무의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가 강민정·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주최한 이번 간담회는 초중고교 내 장애편의시설 설치 현황을 점검하고, 법·정책을 제언하기 위해 열렸다. 강민정 의원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운영의 근간을 정하고 있는 ‘교육기본법’은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장애학생에 대한 교육 차별 현실을 드러내고 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을 되찾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현대청운고 학생들을 비롯해 유지민 전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 실천교육교사모임, 법무법인 디라이트,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은 지난해 세이브더칠드런이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진행한 ‘한국 장애아동의 삶의 질’ 연구 결과를 인용해 장애아동들이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장애아동 16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한 지체장애아동은 체육교사로부터 ‘체육 수행평가인 팔굽혀펴기 영상을 찍어서 보내라’는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특수학급이 일반학급과 멀리 떨어져 있어 친구들을 만날 일이 없어요’ ‘장애인 화장실은 있지만, 주로 창고로 활용되고 있어요’라는 답변도 있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유지민(16)양은 “사립고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서 포기했고, 또 다른 학교는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있어 통학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차선으로 간 대안학교에서도 물리적인 장벽을 느꼈다”고 했다.

교육부가 공시한 ‘장애인 편의시설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만2291개 초중고 중 1483개교(약 12%)는 승강기·경사로·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의 박현주 특수학급 교사는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는 사실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라면서 “한번 설치하고 나면 장기적으로 시설이 유지되고, 가시적인 효과도 큰데 왜 이게 쉽게 안 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전국 고등학생 1300여 명은 학교 내 장애학생의 교육기본권과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울산 현대청운고, 대구 경북예고, 전주 상산고 등 8개 사립고교 소속 학생들이 결성한 연합동아리 ‘모.이.자.’의 주도로 작성됐다. 이들은 “학교 내 경사로·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고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에게 요구했다. 지난 7월엔 노옥희 교육감과 면담을 진행하고,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간담회에 참석한 천원영(17·현대청운고2) 학생은 “지난주 행정실에 확인해본 결과 내년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하겠다고 밝혔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발언하고 있다. /협동조합 무의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모든 학생의 이동의 자유를 위한 실태조사 결과발표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발언하고 있다.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장애학생이 어떤 편의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렵고, 지원도 정부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서 혼란을 겪는다”며 “행정적인 칸막이를 없애고 학년별로 받을 수 있는 지원 내용을 체계적으로 양육자에 전달하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아동 교육권을 보장하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송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사립학교의 경우 법령상의 의무에도 불구하고 임의 이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차별금지법’ ‘특수교육법’ ‘장애인등편의법’ 등 여러 법안에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이 흩어져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초중등교육법’으로 통합해야 한다”면서 “사립학교에 편의시설 강제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입법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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