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일(일)

아프다고 두려워 말고… 심장이 뛰는 일에 도전하세요

장찬재 선수의 하트투하트 이야기

출생 4주에 발견된 심장병 어려운 형편에 치료 힘들어 한국심장재단 도움받아 수술
사이클 선수 꿈 키웠지만 “심장 때문에 운동은 안된다” 반대 무릅쓰고 국가대표로
작년 연말 자선콘서트 열어 수익금 한국심장재단에 기부 “아픈 어린이 계속 돕고파”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를 갖다 대더니 아이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했어요.”

사이클 국가대표 선수 장찬재(25·양양군청 소속)씨는 선천성 심장병(심실중격결손증)을 안고 태어났다. 출산 4주 후, 첫 예방 접종을 하러 간 날이었다. 어머니 김인곤(54)씨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병원·자선단체 등을 뒤졌다. “오진(誤診)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거액의 수술비가 나올 것’이란 말만 들었다”고 한다. 임대아파트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김씨 형편으로는 수술을 감히 꿈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씨는 “당시 서울대병원 소아병동 4인실에 있었는데, 함께 있던 3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는 것을 지켜보며 조급함과 막막함이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① 장선재(가운데) 선수는 한 살 때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다. 지난 30년간 재단의 수술지원을 받은 환자는 3만1000여명, 이 중 30%가 장 선수처럼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 조범구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은 “수술을 받고 후원자 대열에 합류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큰 자랑”이라고 했다.②한 동호인이 바자행사를 통해 구입한 사이클용품. /스포티즌·한국심장재단 제공
① 장선재(가운데) 선수는 한 살 때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다. 지난 30년간 재단의 수술지원을 받은 환자는 3만1000여명, 이 중 30%가 장 선수처럼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 조범구 한국심장재단 이사장은 “수술을 받고 후원자 대열에 합류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큰 자랑”이라고 했다.②한 동호인이 바자행사를 통해 구입한 사이클용품. /스포티즌·한국심장재단 제공

한국심장재단을 만난 건 그때였다. 심장병을 앓는 국내 아이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해준다고 했다. 장씨는 그 길로 수술대에 올랐다. 심장을 정지시키고, 갈비뼈를 잘라낸 뒤 진행됐던 큰 수술이었다.

“가슴팍 사이로 새빨간 세로줄이 길게 나있고, 퉁퉁 부어 튀어나와 있었어요. 전 남들도 다 그런 줄만 알았죠.” 수술 덕에 건강하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장씨. 1학년 특별활동시간, 수영장에 갔다가 아이들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았다. 수술 흉터가 특별한 것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장씨는 “그때부터 주눅이 들어 다른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치는 아이가 됐다”고 기억했다.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장씨에겐 ‘더 재밌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가 했었고, 형이 하고 있는 사이클이다.

“집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게 온갖 트로피들이었죠. 아버지와 형 모두 사이클을 잘했거든요. 다른 애들이 오락실 갈 때 전 매일 사이클 훈련장에 가서 형이 운동하는 걸 구경했죠.” 아버지 장윤호(53·현 대한지적공사 감독)씨는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고, 장선재(30·대한지적공사 소속)씨는 두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를 획득했다.

장씨도 하고 싶었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수술 경력 때문이다. 장씨는 “어릴 때 아빠는 형한테는 ‘운동하라’고, 나한테는 ‘운동하지 마라’고 다그쳤다”고 회상했다. 운동을 못 하면서 몸만 불었다. “열여섯살 때는 84㎏까지 나갔다”고 한다.

“매일 조르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아빠가 자전거 한 대를 주며 한 달 동안 살을 빼면 허락하겠다는 거예요.” 장씨는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8시간씩 땀을 흘렸다. “3일이 지나자 바로 코피가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만에 20㎏을 감량하고 꿈에 그리던 사이클 선수가 됐다.

장씨는 아버지·형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작년에는 중국의 프로팀에서 뛰었는데, 국내 남자 선수가 해외 프로팀에 진출한 것은 장씨가 처음이라고 한다. 3월 말 있을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만 통과하면, 메달도 기대할 만하다.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암스트롱(Lance Armstrong)’ 얘기를 꺼냈다. ‘고환암’을 이기고,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사상 최초로 7연패를 달성한 미국의 사이클 선수다. “고등학생 때 자서전을 봤는데, 공감이 되고 힘도 나더라고요. ‘나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큰 병을 앓았던 사람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는 걸 말이죠.”(하지만 장씨는 지금은 암스트롱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선수는 2012년 불법약물 복용으로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지난해 연말, 그는 특별한 행사를 하나 마련했다.

“안녕하세요! 사이클 국가대표 선수 장찬재입니다. 전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한 살도 되기 전에 가슴을 열고 수술을 받았죠. 운동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의사도 부모님도 말렸어요. ‘넌 안 된다’면서요. 하지만 전 해냈습니다. 이런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여기 섰습니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장찬재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자 150여명의 관객이 환호성을 보냈다. 장씨는 형과 함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살롱드에이치’에서 ‘두 바퀴 자선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자신들의 운동용품을 바자 형식으로 판매하고 관객들에게 경험을 들려주는 자리였다. 이날 모인 300만원의 수익금은 모두 ‘한국심장재단에 기부됐다. 어릴 때 장씨를 수술해 준 바로 그곳이었다.

형제 사이클 선수 장선재(왼쪽)·장찬재
형제 사이클 선수 장선재(왼쪽)·장찬재

장씨는 “재단을 통해 새 생명을 받았는데, 여태껏 내가 한 게 없더라”면서 “스무 살 때부터 사이클 꿈나무들에게 물품을 나눠줬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엮어 후원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행사를 주최했던 스포츠매니지먼트사 ‘스포티즌’의 김태형 부장은 “장 선수의 뜻에 동참해,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선수나 10여개의 사이클 협찬사가 자발적으로 물건을 기부하며 참여해줬다”고 했다. 장씨는 “아프다고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며 “앞으로도 한국심장재단을 도와 아픈 어린이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천호동의 한 자전거 용품숍에서 만난 장씨는 이틀 후부터 경남 창영에서 진행될 대표팀 합숙훈련 채비로 분주했다. “사이클이 의외로 예민한 운동이거든요. 기계의 작은 오차가 시합의 결과를 바꿔요.” 장비를 꼼꼼히 점검하는 장씨의 눈매가 매서웠다. 늠름한 체격에 키도 훤칠했다. “심장 수술한 사람 같지 않다”는 질문에 그 자리에서 윗옷을 벗어 올리고, 수술 흉터를 보이며 웃었다. 운동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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