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금)
산불이 휩쓴 자리에 다시 웃음이 피었다

[르포] 강원 산불 한 달, 마지막 구호팀 철수하던 날

“벌써 가?” 허봉선(75) 할머니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오른손에는 포도 주스, 왼손에는 쌀과자가 들렸다. 작은 이별 선물이었다. “선생님들 덕에 살 수 있었어. 나중에 동해 오면 꼭 연락해!”

지난 8일 강원 동해 지역의 산불 이재민을 돕던 마지막 구호팀이 철수했다. 구호팀이 동해에 들어온 지 33일 만이었다.

지난달 동해안을 덮친 대규모 산불로 강원 동해시 묵호동의 주택과 카페 등이 불에 탔다. 전소된 주택은 모두 철거되고 공터로 남아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동해안을 덮친 대규모 산불로 강원 동해시 묵호동의 주택과 카페 등이 불에 탔다. 전소된 주택은 모두 철거되고 공터로 남아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동해안을 덮친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 지났다. 지난달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이튿날 동해 시내로까지 번졌다. 특히 동해 지역은 시내 곳곳에 불길이 번져 73가구가 집을 잃었다. 당시 이재민 45가구는 친척이나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28가구는 묵호역 인근의 임시거주시설로 대피했다. 더프라미스·메디피스 등 비영리 민간단체 12곳은 임시거주시설에 머무는 주민을 돕기 위해 ‘산불 피해 합동대응팀’을 꾸려 사고 초기부터 현장에 머물렀다. 한 달 남짓 동해 이재민과 함께 울고 웃던 마지막 구호팀이 철수하던 지난 8일 기자가 동행했다.

구호팀 머문 416호, 주민들의 ‘마을회관’

구호팀의 마지막 날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팀원들은 임시거주시설 인근 숙박업소에 머물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숙소 로비에 팀원 8명이 모였다. 임시거주시설까지는 차로 5분가량 걸렸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창 밖에 펼쳐진 논밭만 바라볼 뿐이었다.

동해 임시거주시설은 국가철도공단에서 운영하는 망상수련원에 마련됐다. 동해 주요 관광지인 묵호항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산불 발생 직후 28가구가 있었지만, 하나 둘 떠나고 이젠 17가구가 남아 있었다.

임시거주시설은 필로티(piloti) 구조로 1·2층 없이 3·4층으로만 구성됐다. 건물 아래로 동해선 철도가 나있었고, 이따금 열차가 통과했다. 이재민은 총 29개 객실에 나뉘어 머물고 있었다. 동해시청 공무원은 3층 상황실에 상주했다. 기본적인 생활용품과 위생용품은 상황실에서 쌓여 있었다.

임시거주시설 416호에 4명의 이재민과 5명의 합동대응팀원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들은 각자 안부를 물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임시거주시설 416호에 이재민 4명과 구호팀 5명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들은 각자 안부를 물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구호팀의 공간은 4층 끝 방인 416호다. 이재민들의 ‘마을회관’ 역할을 한 공간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생활에 힘든 점을 털어놓거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416호를 찾았다. 주민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유일한 공간이다.

아침 식사는 8시에 도시락으로 지급됐다. 강원도자원봉사센터가 밥차를 마련해 도시락을 만들고, 구호팀이 각 가구로 배달하는 식이다. 아침 메뉴는 쌀밥, 닭야채볶음, 마늘쫑새우볶음, 두부조림, 냉이된장국이었다. 구호팀은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물품들을 매일 조사했다. ‘노크 살살’ ‘소리 잘 못 들으심’ ‘치아가 불편함’ 등의 사소한 정보도 챙겼다. 고수지 더프라미스 국제사업팀 매니저는 “꾸준히 이재민들과 접촉하며 확보한 1급 정보”라고 했다.

결혼사진도 못 챙긴 이재민에게 ‘첫 가족사진’ 선물

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416호로 모였다. 길영자(65) 할머니는 문을 열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이제 다시 안 오는 거야?”라며 아쉬워했다. 주민들이 2~3명 더 모이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집은 불타 없어졌지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기도 했다. 일상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이었다.

8일 임시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는 신정염 할머니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민정 메디피스 인턴은 이를 옆에서 도우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8일 임시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는 신정염 할머니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민정 메디피스 인턴은 이를 옆에서 도우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임시거주시설 뒤뜰에는 텐트로 만든 ‘사랑방’도 있었다. 사랑방은 미술심리치료와 상담서비스를 지원하는 공간이다. 아들·며느리와 함께 사는 신정염(88) 할머니는 이곳에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푹 빠졌다. 신 할머니는 10분에 한 번씩 기억을 잃는 치매 환자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만큼은 잊지 않았다. 구호팀의 유가영 운디드힐러 활동가는 “어르신들이 그림에 집중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낀다”며 “매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사랑방에서 미술심리치료를 진행하고 상담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최만호(79)·김일례(72)·서순자(68)·손복예(66) 할머니도 사랑방을 찾았다. 그간 수십 수백번은 반복했을 50년 전의 시집살이를 꺼내면서 통쾌하게 웃기도 했다.

박주현 더프라미스 매니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서순자 할머니를 찍고 있다. 서순자 할머니는 초롱꽃 화분을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박주현 더프라미스 매니저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서순자 할머니를 찍고 있다. 서순자 할머니는 초롱꽃 화분을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이날 구호팀은 사랑방에서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현장에서 바로 인화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는 탓인지 입꼬리가 어색했다. 플래시가 터지고 사진기에서 사진이 나오자 할머니들이 “왜 안 보이나?”라고 물었다. 몇 초가 지나자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사진에 그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내 첫 사진이에요.” 최만호 할머니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는 동해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살던 집을 이번 산불로 잃었다. 친정어머니와 손주들 사진부터 족두리를 쓴 결혼식 날 사진까지 모두 불탔다. 최 할머니는 “나에겐 전부였던 사진들이 모두 없어져 말도 못하게 속상했다”면서도 “이렇게 내 첫 사진이 다시 생겨 행복하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끝으로 사랑방 텐트는 철거됐다. 오후 5시였다.

구호팀 “공식 활동은 종료됐지만 다시 찾아뵐 것”

구호팀이 마지막 일정이라며 급히 차에 올랐다. 이날 주민들의 요청 물품을 마지막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내의 지역 마트에 다녀온다고 했다. 임시거주시설 인근에는 식당이나 카페, 편의점이 없다. 1시간 남짓 시간이 흐르고 구호팀이 돌아왔다. 이들은 각 객실을 방문하며 구매한 물건을 전달하면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사랑방에 오지 못한 이재민들의 사진도 즉석에서 찍어 액자에 담았다. 그렇게 33일간의 구호 활동이 마무리됐다.

동해 산불 피해 구호팀이 8일 마지막 활동을 종료하기 전 각 객실을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재민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과 양갱, 직접 쓴 편지도 전달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동해 산불 피해 구호팀이 8일 마지막 활동을 종료하기 전 각 객실을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재민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과 양갱, 직접 쓴 편지도 전달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주민들은 묵호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오르는 구호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 사이드미러로 비친 주민들은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김동훈 더프라미스 이사는 “이번 구호활동은 합동대응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비영리 국제개발구호단체 ‘더프라미스’와 국제보건의료 NGO ‘메디피스’가 주도한 합동대응팀에는 ▲라이프라인코리아(Life-Line Korea) ▲원불교봉공회(WBGA) ▲416가족협의회 ▲운디드힐러(Wounded Healer) ▲이지스(AEGIS) ▲위드(WiTH) ▲아트온어스(Art on Earth) ▲뜻밖의상담소 ▲와이퍼스(Wiperth) ▲한국아웃도어안전연구소 등 총 12곳이 참여했다.

더프라미스·메디피스 등은 인력을 제공했고 아트온어스는 미술심리치료 물품을 지원했다. 416 가족협의회와 운디드힐러는 이재민들과 소통하고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운디드힐러는 세월호 생존자로 구성된 상담 단체다. 현장에 파견되는 인원은 로테이션으로 배정됐다. 고수지 매니저는 “합동대응팀의 구호활동은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앞으로 꾸준히 이재민들과 소식을 공유하며 자주 찾아뵐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구호팀이 철수하고 이재민들도 임시거주시설을 떠났다. 이들은 지난 10일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마련한 임시주택에 입주하거나 개인 소유 부지에 컨테이너 조립주택을 지어 이주해야 했다. 14일 기준, 13가구가 임시주택·조립주택으로 입주했다. 아직 4가구가 남았다. 동해시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주민들의 입주를 도울 예정”이라고 했다.

동해=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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