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일(토)
“정치판 뒤흔들 청년 정치인 키웁니다”

[인터뷰] 정병국 청년정치학교 교장

“청년이 역량을 키워서 자기 능력으로 정치권에 진입할 기회를 주자고 만든 게 ‘청년정치학교’예요.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에게 영합하지 않고 저항하면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판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지난 16대 국회부터 내리 5선을 한 정병국(64) 전 미래통합당 의원의 현재 직함은 ‘청년정치학교 교장’이다. 청년정치학교는 지난 2017년 바른정당 창당 당시 정책연구소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더 많은 청년이 정치권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들의 정치계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강의와 토론, 멘토링 기회 등을 제공한다. 누적 졸업생은 250명. 이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만난 정병국 전 미래통합당 의원. 벽화마을의 작은 주택에 정 전 의원의 사무실이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만난 정병국 전 미래통합당 의원. 벽화마을의 작은 주택에 정 전 의원의 사무실이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정 전 의원은 1988년 서른 살 무렵 ‘청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고 보수 정당에서는 ‘원조 소장파’로 불리며 소신 발언을 이어왔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에 있는 정 전 의원의 사무실을 찾았다. 고불고불한 골목을 지나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자 낮은 철문을 둔 주택이 나왔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향과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우리는 ‘정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카페 같다.

“커피도 내려 마시고, 저녁에는 지인들과 간단히 술 한잔하기도 한다(웃음). 청년정치학교 수강생들도 와서 커피를 마시며 토론한다.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청년정치학교’ 이름이 재밌다. ‘정치’를 공부하는 건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가 망가진 가장 큰 요인은 ‘패거리 정치’다.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다 보니 청년이 정치권에 진입할 기회가 없다. 기회를 잡는다 해도 청년이 자신에게 기회를 준 집단의 하수나 앞잡이가 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러니 정치가 변하지 않는다. 공천 할당제는 답이 될 수 없다. 실력을 갖춘 청년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올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청년이 누군가에게 줄 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역량을 키워서 자력갱생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설립했다.”

-대부분 정치인을 꿈꾸는 청년이 입학하나.

“모토는 ‘시민 정치 교육’이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전체 입학생의 3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대기업 직장인, 의사, 변호사 등 직업이 다양하다. 중고등학생도 있다. 왜 지원했는지 물어보면 사회에 나와보니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정치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던 중에 청년정치학교를 발견한 거다. 수강생은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이번에 벌써 6기를 모집했다.”

-학교에서는 뭘 가르치나.

“예를 들어 ‘안보 문제’라고 하면 진영에 따라 생각이 다르지 않나.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와 진보적 시각의 전문가를 동시에 불러 강의를 한다. 선택은 학생이 직접 하는 거다. 특히 토론의 비중을 높게 둔다. 보좌관처럼 법안을 만들어보고 모의 국감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실무적인 훈련도 한다. 기존 정치인과의 미팅 자리를 마련해 당에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보좌진이나 사무처 당직자 등이 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직접 듣기도 한다. 최근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리더스 그룹과 대학원 심화과정도 만들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사람, 당 행정직으로 들어갈 사람 등 진로에 맞게 나를 포함한 멘토 6명이 멘토링을 해준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당 조직이 선대위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국민의힘은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이 갈등이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청년 정치인이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치인의 관행적 행태를 깨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보수 정당이 2030세대의 지지를 이렇게 많이 받은 적이 과거에 언제 있었나. 이번 선거에서는 대학생위원회, 청년보좌역 등이 활약했다. 이 젊은 사람들이 쇼츠 영상이나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서 소셜미디어에 파급하는 등 MZ세대 트렌드에 맞는 방식으로 선거를 주도했다. 지난 20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끊임없이 개혁 정치를 부르짖고 청년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못한 것을 이들이 했다.”

정 전 의원은 "우리나라 정치가 변화하려면 청년 정치인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치에 진입하고 실력을 쌓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정 전 의원은 “우리나라 정치가 변화하려면 청년 정치인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치에 진입하고 실력을 쌓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순응하지 않는 청년들

-청년들은 왜 정치판에서 능력발휘를 못하나.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청년을 영입하고, 할당제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정치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성 정치인을 보고 배운다. 또 청년 정치인이 진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 보니 특정 정치인 추천을 받아 라인을 타고 들어온다. 그러니 자기를 추천한 사람이나 라인의 대변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견해가 달라도 말을 하지 못한다. 의욕을 가지고 정치에 진입한 청년도 이런 현실 정치에 영합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진영 위주의 패거리 정치가 반복된다. 심지어 청년들이 현실 정치를 깨달은 순간부터 더 빨리 물들고 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정치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청년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궁금증이다. 정치권에 청년이 필요할까.

“우선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MZ세대 비율이 36% 정도 된다. 이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정치권에 있어야 한다. 기성 정치인의 언어나 관심 분야는 청년과 동떨어져 있다. MZ세대와 대화를 해보면 문화적 패러다임이나 생각이 확실히 다르다. 왜 그럴까. 많은 전문가와 대화를 해보고 얻은 결론은 MZ세대는 선진국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원조를 받으며 자란 세대고 MZ세대는 원조를 하는 세대다. 사고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난했던 우리 세대의 인사는 ‘식사하셨습니까’지 않나(웃음). 두 번째 이유는 청년도 언젠가는 기성 정치인이 될 거다. 기성 정치인이 되고 나면 기득권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럼 정치가 안 바뀐다.”

-꼭 청년이 아니라도 신인이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닌가.

“정치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 사람을 지금까지 많이 충원했다. 지난 19·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받은 보수 정당 비례대표를 보면 다수가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치 활동을 하는 걸 보면 ‘엑스(X)’였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이 사람들은 어떤 조직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주로 조직 논리에 순응하는 사람이 톱으로 올라간다. 이들에게 정치에서의 조직은 정당이다. 대다수가 정당에 순응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도 다수가 가는 길로 따라가고, 결국 ‘거수기’밖에 안된다. 이게 보수 정당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아직 조직에 길들지 않은 젊은 세대가 처음부터 정치를 배우면서 올라가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청년정치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병국 전 미래통합당 의원.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017년부터 청년정치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병국 전 미래통합당 의원.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정치판에도 지속적으로 청년 충원해야

정병국 전 의원은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서른 살이었다. 이후 1993년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계 입문 당시 ‘청년 정치인’이었다.

“그렇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먼저 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하면서 한나라당에서도 원희룡, 남경필, 오세훈, 임태희 등 젊은 인물을 대거 공천했다. 지금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그때 들어왔다. 우리는 ‘미래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당내에서 존재감을 부각하려고 했다. 현역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처음엔 목소리를 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의원총회에서 발언하려고 해도 선배들이 ‘야 인마, 내려와’ ‘집어치워’ 같은 소리를 했다. 대응방법을 고민하다가 우리끼리 연달아 발언권을 신청하고 서로 의견을 반박하면서 뜻을 관철하기도 했다. ‘내부 총질만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당내 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청년이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기성 정치인에게) 대응할 수 없겠더라. 또 혼자는 안된다.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공감대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그룹이 있어야 한다. 그게 청년 정책이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오늘날 청년 정치는 오히려 후퇴한 것 아닌가.

“당시에는 ‘양김’(김대중·김영삼)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들은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지금 정치인들은 다르다. 정치권에 청년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공감하면서도, 자기 휘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자신을 뛰어넘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청년 정치 토양이 잘 닦인 국가는 어딘가.

“독일과 영국이다. 독일은 정당마다 산하 연구소가 있고 부설 정치학교도 있다. 영국은 당내에 청년당을 따로 만든다. 그러니 젊은 당수와 수상이 나올 수 있는 거다. 젊은 나이에 정치 경력은 20~30년되는 정치인이 나오는 구조다. 청년정치학교도 독일의 정당 부설 정치학교를 모델로 만들었다.”

-눈여겨보는 청년 정치인이 있나.

“누구라고 특징할 수는 없지만 꽤 많다. 과거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상당수 있다. 희망을 본다. 잘 되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도 청년이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청년정치학교는 언제까지 운영할 건가.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할 거다. 지금 청년도 몇 년 지나면 기성 정치인이 된다. 계속 충원이 돼야 한다. 누가하든 청년정치교육은 지속해야 한다. 최근 우리 청년정치학교를 벤치마킹해서 정치 교육을 하는 기관이 많아지고 있다.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 기관을 따라 하지만 말고, 다양한 방식과 시도가 생겨났으면 한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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