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금)
‘강제 노동 상품 금지법’ 시행 앞두고 글로벌 기업·주주들 초긴장

최근 중국에 공급망을 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내 ‘강제 노동 상품 금지법’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미국 정부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이하 신장)에서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된 모든 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위구르강제노역금지법’을 오는 6월 21일부터 시행한다. 남은 시간은 120여 일. 미국 국토안보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 시행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관계자들의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고, 해당 업체들은 바싹 긴장한 상태다.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를 포함해 미국의 다국적 회사들은 중국 공급망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지난해 의회를 상대로 집중 로비를 펼쳤지만 별 소득을 거두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듯 이 회사들은 의회 차원의 법 제정을 지지하고, 중국 내 강제 노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지만 불안한 기색은 여전하다.

애플은 다음 달 4일 주주총회에서 '강제 노동 상품 금지법' 시행에 따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제안에 관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애플은 다음 달 4일 주주총회에서 ‘강제 노동 상품 금지법’ 시행에 따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제안에 관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6월부터 ‘강제 노동 상품’ 美 수입 금지

위구르강제노역금지법은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겨냥해 지난해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발의돼 통과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3일 서명했다.

미국은 중국이 2017년 반테러 진압 작전 아래 신장 북부 지역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벌여 100만명 넘는 위구르인을 체포·구금한 뒤 ‘정치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강제 노동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7월 신장의 강제 노동에 관한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이 신장 지역 내 1200곳에 달하는 구금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신체적 위협과 고문 등을 통해 의류, 신발, 카펫, 식료품, 건설 자재, 태양광 장비 재료, 의약품 등을 생산하는 시설에서 노동을 강요했고, 이들이 만든 제품이 전 세계 기업들과 가정에 흘러들어 간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서 법이 제정, 통과됐지만 문제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관련 제품이 신장의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해당 업체가 증명해야 하지만 그 방법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미국 국토안보부는 1월 24일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에 낸 공고에서 법 시행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과 시행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질문할 18항목을 제시하고 오는 3월 10일까지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특히 질문 항목 가운데는 강제 노동의 결과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업체들의 효과적 공급망 추적과 관리 문제, 증명의 유형과 성격 및 범위를 묻는 대목도 들어 있다. 이 문제가 시행상 핵심 쟁점인 만큼 국토안보부도 상당히 신경 쓰는 분위기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마커스 놀런드 부소장은 11일(현지 시각) 더나은미래에 “국토안보부가 의견 수렴과 공청회를 거쳐 충분한 증명 기준을 제시할 테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의 핵심은 미국으로 들어올 수입품이 신장 노동자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을 해당 기업이 명확하고 신빙성 있게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강제 노동 여부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면 검사관이 생산 시설을 방문해야 하지만 중국 정부가 허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피터슨 부소장은 “강제 노동을 통해 만든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외부 검사관이 해당 지역을 방문, 확인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SG 중시 투자자들 ‘공급망 리스크’ 대책 마련 요구

신장의 경제 규모는 18조달러에 달하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류 원료인 면화와 태양광 발전용 재료인 폴리실리콘은 세계 최대 공급지다. 세계 면화 총생산의 약 20%가 신장에서 생산되고, 폴리실리콘도 세계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해당 지역의 중국 내 공급망을 가진 의류 업체와 태양광 업체들은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타격이 불가피하고, 그로 인한 세계적 공급망 차질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온다.

해당 법은 최종 완제품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신장의 원료, 반제품, 노동력을 부분적으로 활용한 제품도 수입 금지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 패션 브랜드 휴고보스(Hugo Boss), 캘빈클라인과 타미힐피거의 모회사 PVH는 자사 의류 제품이 중국 내 강제 노동을 통해 수확된 면화로 만든 게 아님을 확인하는 검증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제조 업체인 중국의 렌즈테크놀로지는 신장 근로자 수백 명을 내보냈고, 신장 출신의 직원 채용을 중단했다. 나이키는 2020년 6월 회사 웹사이트를 통해 나이키 운동화를 만드는 한국 태광실업의 중국 자회사가 신장 출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 관점의 ‘공급망 리스크’ 대책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높다. 애플은 오는 3월 4일 주주총회에서 향후 중국 강제 노동과 인권 문제를 피할 방안 검토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제안에 관해 표결할 예정이다. 놀란드 부소장은 “중국의 강제 노동 문제를 점점 ESG 차원에서 보려는 기업들의 인식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비영리 컨설팅 기관 BSR의 애런 크레이머 회장은 의회 전문 매체 롤콜(Roll Call)에 “회사들이 점점 더 노동 기준, 노동 관행, 탄소, 물, 인권 등 광범위한 ESG 이슈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회사들이 ESG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려면 공급망 선별이 필수”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대형 국제 법률 회사 노턴 로즈 풀브라이트의 파트너인 제프 마길레스를 포함한 세 변호사는 해당 법 발효를 앞두고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지침에서 “신장 지역에 공급망을 가진 상장 회사들은 주주들의 소송은 물론 지배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가 가능한 점을 감안해 향후 자체 ESG 프로그램을 폭넓게 재검토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해당 법은 위반 시 외국인을 포함한 해당자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워싱턴=찰리변 더나은미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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