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8일(수)
“10년 후 가장 큰 이슈는 ‘다문화’ 건강한 사회 통합 프로그램 필요해”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

미상_사진_다문화_한용외_2010기업 사회 공헌과 사회복지 쪽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 ‘한용외’ 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이었다. 삼성재단과 삼성그룹 전체의 사회 공헌을 총괄했던 사람. 될성부른 사람은 확실히 키워주고 보수적인 삼성 조직문화 속에서도 아니다 싶으면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인터뷰는 녹록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할 때 사회 공헌은 ‘책임’이 아니라 ‘재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당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인터뷰를 위한 시간 확보가 쉽지 않았다. 사재(私財) 10억원을 기부해 만든 다문화지원재단 인클로버(www.inclover.or.kr) 활동과 사회복지를 주제로 한 박사 논문 집필, 최근 임명된 중앙국립박물관 이사장 역할까지 하느라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고 있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과천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다문화 캠프 현장과 9일 집무실에서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다문화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한 이사장에게 큰 화두(話頭)로 보였다.

―다문화 지원재단을 만드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앞으로 5~10년 이후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일지를 고민해보니 다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해결하려는 재단이 필요했지요.”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에서도 다문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다문화 프로그램은 한글과 한국 문화를 중심으로 한 주입식 통합 프로그램입니다. ‘한국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해줄 때 통합 속도가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국의 책을 읽고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합 프로그램이 절실합니다.”

―다문화사회가 오면 어떤 문제들이 생겨날까요.

“2019년 우리나라 농촌지역의 19세 미만 청소년들의 절반 정도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될 겁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잘 키우면 우리나라 곳곳의 핵심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반한(反韓) 세력으로 클 겁니다.”

―잘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30년 대계(大計)를 세우는 겁니다.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분야가 문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교육 분야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문화예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 대학 보내려고 수능 공부만 시킨다고 훌륭한 아이로 클까요? 오히려 각종 문화예술 캠프에 참여하고 한국 문화를 배우는 다문화 아이들이 헝그리 정신과 근성을 바탕으로 미래에 더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삼성의 사회 공헌 분야를 복지, 문화를 넘나들며 10년 넘게 이끌었습니다. 어떤 재능 때문입니까.

“개인적인 재능이 있다고 얘기하기는 힘들고….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 일의 본질과 관련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위에 잘 보일까, 이렇게 해서 승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일을 했지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을 사주신 게 아닐까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요? 기업의 책임은 이익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고 주주 배당하고 국가에 세금 내는 것입니다. 사회 공헌은 재량에 맡겨야지요. 기부는 기업보다는 개인의 몫으로 넘기는 것이 맞습니다. 기업이 사람들 돈 벌게 해주고, 그렇게 돈 번 사람이 자기 돈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좋은 정책과 사회 공헌 프로그램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선견력(先見力)과 실천력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안을 고민하면 됩니다. 정치가 국민을 위하지 않고 정당을 위하다 보니 그런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뿐입니다. 좋은 정책은 예산의 70~80%는 현재 문제 해결에 쓰더라도 나머지 20~30%는 30년 후에 무엇을 바꿔야 하나를 고민하며 쓰는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재단 이사장도 되셨습니다.

“무보수 비상근 자리이니 자원봉사인 셈이죠. 저는 노동으로 하는 자원봉사보다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 더 훌륭한 자원봉사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은 무료 변론하고, 의사들은 의료 봉사하고, 기술 있는 사람은 직업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지 않나요. 기업 자원봉사도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다문화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시는 것도 재능 나눔입니까.

“4년 전부터 조세현 작가에게 사진을 배웠습니다. 제 사진이 다문화 가족에게는 첫 번째 가족사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향력은 작지만, 행복하고 신나게 일하면 좋은 일입니다.”

한 이사장이 다문화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비는 예사롭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조명과 배경 스크린, 포토 프린터, 액자까지 가방 10개가 넘는 짐이 쌓여 있었다. 한 이사장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장비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른 가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저녁도 거르고 부인이 싸준 삶은 감자로 허기를 때웠다. 시간이 흐르니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삼성의 CEO에서 물러나 ‘나눔’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한 이사장의 변신은 이미 성공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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