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8일(토)

“지역 사회에 기여하자” 중견·중소기업 기부 늘어난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 사랑의열매 ‘나눔명문기업’ 들여다 보니 ]

1억원 이상 기부한 중견·중소기업
사랑의열매 ‘나눔명문기업’ 선정
출범 이후 누적 약정 금액 202억원

경영인 네트워크 타고 ‘릴레이 가입’
“돈 ‘잘’ 쓰는 오너가 존경받는 시대”

# 충남 금산군에서 2대(代)째 삼남제약을 운영하는 김호택(65) 회장에게 2020년은 특별한 해였다. 부친인 고(故) 김순기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이자 회사 설립 70주년이었다. 김 회장은 이 시기를 뜻깊게 보낼 방법을 오래전부터 고민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지역사회로 확산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명문기업’에 가입, 3년 동안 1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기부금은 금산군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써달라고 했다. 안경 하나라도 제대로 쓰고, 통학 교통비에 대한 부담이라도 조금 덜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회장은 “아버지는 지역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향인 금산군에 기업을 세우셨다”며 “그 뜻을 이어받아 지역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코로나19로 경기 전망이 불투명한 와중에 중견·중소기업가에는 ‘기부 훈풍’이 불고 있다. 과거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던 법인 기부시장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들 참여가 최근 몇 년 새 활발해지고 있다.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기부금 총액 중 국내 매출 상위 200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75.5%에서 2017년 63.4%로 낮아졌다. 그만큼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가 늘었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견·중소기업의 기부 참여는 더 확산하는 추세다. 올해 1~8월 사랑의열매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한 기업은 52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곳)에 비해 73% 늘었다. 노연희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중소기업들이 코로나19로 지역 사회가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며 ‘상생’을 고민하게 된 것”이라며 “중견·중소기업으로 번지는 기부 문화 확산 현상은 한층 성숙해진 한국 사회의 일면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기부를 도와드립니다”

나눔명문기업은 기업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고액을 기부한 중견·중소기업 모임이다. 1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일시납하거나 3년 이내 기부 약정하면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사랑의열매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법인판이다. 가입 기업에는 사업장에 설치할 수 있는 현판을 전달하고, 기부 인증패를 증정하는 등 예우를 한다.

회원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6월 출범 이후 지금까지 137개 기업이 가입했다. 누적 기부 약정 금액은 약 202억원에 달한다. 초기에는 제조업 분야 기업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사,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 등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사회공헌 의지가 있어도 실행할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재원 부족(27.1%)에 이어 정보 부족(14.6%), 인력 부족(14.1%) 등이 꼽히기도 했다. 기부하려고 해도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기부금 내역을 관리하고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할 인력을 갖추기도 어렵다. 나눔명문기업 관계자는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하면 사랑의열매 지역별 담당자가 기업의 관심 분야 중 믿을 만한 기관을 추천해준다”면서 “기부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예산을 분배하고 기부금 사용 내역도 정리해 전달한다”고 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국 52개 기업이 ‘나눔명문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앙회 1호 기업으로는 헤리티지자산운용이 가입해 3억원을 기부했다. 사진은 송현석(왼쪽) 헤리티지자산운용 대표이사와 김상균 사랑의열매 사무총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인맥’ 타고 퍼지는 기부 문화

중견·중소기업의 주 관심사는 지역 사회다. 전국 단위로 사업을 펼치기보다 특정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역 기반 기업의 기부는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양용희 한국비영리학회장은 “중소기업은 뿌리를 둔 지역 경제에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도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눔명문기업 가입 시에는 ‘일반 기부’와 ‘지정 기부’를 선택할 수 있다. 일반 기부는 사랑의열매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정 기부는 기부 지역과 기관 등을 특정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은 지역의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지정 기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 기부 현상의 중심에는 지역 내 경영인 네트워크가 있다. 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MBA)이나 기업인 모임 등을 통해 교류하며 나눔 활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 최근에는 아너 소사이어티와 나눔명문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부산에서는 상공회의소 회장단을 중심으로 나눔명문기업 ‘릴레이 가입’이 이어지고 있다. 사랑의열매 부산지회 관계자는 “부산 경제를 이끄는 경영인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데 이 중에는 사회공헌에 관심이 높아 이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분이 많다”면서 “최근 모임에서 ESG 경영을 실천할 방안을 고민하다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기부부터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나눔명문기업 회원사는 회사 특기를 살리는 방식으로 기부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주방용품을 만드는 크린랲은 저소득 미혼모 가정을 돕기 위해 공기청정기와 세탁기를 110대씩 후원했다. 한국키스미는 자사 화장품이 한 개 팔릴 때마다 100원씩 적립해 여성 청소년 속옷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명륜진사갈비는 전국 가맹점과 협력해 지역 자치단체에 이웃사랑성금을 기부하고, 독거 어르신과 결식아동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대유에이텍은 수리 기술을 살려 임직원이 지역 복지 기관의 고장 난 문이나 변기를 고쳐주는 시설 개·보수 봉사를 한다. 양용희 회장은 “이제는 돈을 ‘올바르게’ 쓰는 오너가 존경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다양한 기업의 기부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협찬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