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8일(토)

“농인들에겐 한글도 외국어… ‘수어 아바타’로 소통의 벽 허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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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인구 이큐포올 공동대표

지난달 27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인구 이큐포올 공동대표는 “어디서든 수어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농인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2017년 설립된 이큐포올은 농인을 위한 ‘수어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한글 텍스트를 수어 영상으로 번역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진행되는 정부 브리핑에서 손짓과 표정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어통역사처럼 아바타(가상 캐릭터)가 등장해 수어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에는 긴급 재난문자를 수어로 번역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수어통’을 출시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인구(47) 이큐포올 공동대표는 “비상 탈출 안내, AED(자동제세동기) 사용법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 중에 수어로 제공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면서 “수어통역사들을 동원해서 만들어야 하는 정보들을 ‘아바타 수어’로 손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농인의 제1언어는 한국어 아닌 한국수어

“아바타 수어는 다양한 곳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구청이나 병원, 기차 등 스크린만 마련돼 있으면 어디서든 수어로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전시회 수어 해설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AR 기능이 들어간 안경을 착용하고 전시품에 다가가면 눈앞에 아바타가 나타나 수어로 해설을 해줍니다. 최근에는 소화기 같은 안전도구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사용 방법을 수어로 안내하는 기술도 마련했어요.”

이큐포올의 수어 번역 서비스는 사회 각 영역으로 조금씩 보급되고 있다. 아바타 수어는 서울 강남구청, 충남대병원, 여의도 이룸센터 등에 설치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에 이미 도입됐고, SRT 역사와 열차 내부에 있는 스크린에서도 긴급 상황을 안내하는 데 쓰이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농인 택시 운전사가 운행하는 ‘고요한M’의 승객용 태블릿에 탑재돼 승객과 운전사 간 소통을 돕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다른 언어예요. 농인들에게 한글은 외국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영어 교육을 받지만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도 한글로 제공하면 괜찮다고 생각한 부분이 많았던 겁니다.”

농인들로부터 평가받은 아바타 수어의 정보전달 점수는 백점 만점에 ‘90점’이다. 이큐포올은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농인 30여 명을 모아 ‘아바타 수어 시험’이라는 자체 평가를 진행한다. 아바타 수어로 정보전달이 정확해졌는지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언어 번역 서비스처럼 수어 번역도 기술적으로 완벽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수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선 AI와 사람 둘 다 필요합니다. 먼저 AI로 번역하고 나면 농인이나 수어통역사가 어색한 부분을 바로잡습니다.”

번역 부문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아직 통역 기술은 완성하지 못했다. 이인구 대표는 “입으로 뱉는 말은 내용을 전달하는 속도가 수어보다 2배 이상 빠르다”며 “실제 뉴스 방송에서는 수어통역사가 보도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바타의 손동작을 2배 이상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속도를 높이면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AI 기술로 세상을 평등하게

이인구 대표는 삼성 SDS에서 일을 시작해 외국계 기업의 북아시아 지사장까지 지냈다. 직장 생활을 20년 가까이했지만, 사업 욕심이 자꾸만 들었다. 그는 “지사장은 본사 제품을 담당 지역에 맞게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포장하는 역할을 했는데, 나만의 ‘알맹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고승용 공동대표와 함께 ‘착한 사업’을 해보자며 합심했다.

두 사람은 국내에 설루션이 없는 장애인 분야를 찾았다. “지체장애, 시각장애 분야에는 선도하는 소셜벤처들이 있었어요. 닷이나 토도웍스 같은 곳들이요. 발달장애 관련 문제는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농인들을 위한 설루션을 만드는 소셜벤처는 잘 안 보이더라고요. 농인 문제를 해결해보자 싶었죠.”

이 대표는 법인을 설립한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수어 번역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수화언어학’도 공부했다. 첫 서비스를 내놓자 예상치 못한 반발도 있었다.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한 ‘수어통역사’들이었다.

“수어통역사들은 아바타 수어가 본인들의 일을 대체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어 번역 AI는 사람을 절대 대체할 수 없어요. 정보전달만 할 수 있을 뿐 감정전달은 불가능하죠. 또 지금 기술력으로는 오역이 있어서 반드시 사람 손을 거쳐야 합니다. 오히려 수어 분야에 ‘번역’이라는 일이 새로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에게도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협력 관계라고 말씀드렸죠.”

이큐포올은 지난달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수어 기반 유·아동 교육 서비스 개발 사업’의 주관을 맡았다. KT 스카이라이프 셋톱박스에 수어 교육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청인(廳人) 사이에서 태어난 농아동이 가족과 함께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인구 대표는 “청인 사이에서 태어난 농아동 중에 가족과 소통을 못 하면서 발달 지연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영·유아기 교육을 활성화해서 농인들이 사회에 참여할 가능성을 더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아바타 수어의 시장성을 판단할 때 농인 수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농인들의 돈을 받아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바타 수어 보편화로 이익을 보는 기업과 국가에 받을 생각이죠. 수어 보편화로 농인들의 사회 참여가 늘면 기업들과 정부가 지출하던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 겁니다. 저희는 비용을 아껴준 만큼 돈을 받아야죠. 그게 소셜벤처가 사는 방법 아닐까요.”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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