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모두의 칼럼] 내가 걷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유지민(서울 강명중 2)
유지민(서울 강명중 2)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에게 비장애인들이 덕담 혹은 격려라며 하는 말이 있다. “네가 빨리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어릴 땐 그저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점점 커가며 이 말에 대한 반감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의 생각과 방황 끝에 나 스스로 결정한, ‘내가 걷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걸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다. 소아암으로 인한 선천적 장애인이라 평생을 못 걷는 상태로 살아왔는데, 굳이 걸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많은 비장애인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장애인에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장애는 병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낫는다’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 나는 걷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을 뿐, 감기처럼 치료하고 나아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잘 걸어 다니던 비장애인이 모종의 이유로 휠체어를 타게 되면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험난한 재활과정을 거치며 체력적, 정신적으로 부담이 생긴다. 나는 그 과정을 견디며 걷고 싶은 마음이 없다.

두 번째, 걷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장애인을 동정과 도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 장애인도 있겠지만, 알아서 제 갈 길 가는 장애인에게 괜히 오지랖 부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는 또 다른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비장애인들 상당수가 장애인을 일상에서 접해볼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세상이 장애인들에게 너무나도 불친절해서 쉽게 외출하기 어려운 탓도 있다. 모처럼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 공사로 30분 넘게 허비하거나 계단 3개 때문에 원하는 식당에 가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험들을 차곡차곡 적립해가다 보니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크고 작은 장애 차별을 세상에 알려 걷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내가 만약 걷게 된다면 이러한 ‘휠체어의 시선’을 잃게 될지 모른다. 내가 굳이 걷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 내가 겪지 못한 다른 장애의 불편함, 장애를 넘어 사회적 소수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건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변화는 그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놓인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들이 모여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일도 그 과정의 일부다. 누군가 나의 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고 뜻을 함께한다면, 이 또한 세상을 바꾸는 한 가지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진 않지만 무엇이든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지민(서울 강명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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