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발달장애인 ‘고용’하려고 비누를 만듭니다

[Cover Story] 착한 비누로 60억 매출, 노순호 ‘동구밭’ 대표

직원의 절발이 ‘발달장애인’
천연 성분 고체 비누로
3년 만에 매출 60억원 달성

내년 목표 ‘보수적으로’ 100억
가장 중요한 건 망하지 않는 것

발달장애인 직원을 고용해 천연 성분의 고체 비누와 세제를 만드는 동구밭이 올해 매출 6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매출이 늘 때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약속도 잘 지키고 있다. 2020년 11월 현재 전체 직원 53명 중 27명이 발달장애인이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더 많은 발달장애인이 정년까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동구밭의 목표”라고 말했다.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발달장애인 직원을 고용해 천연 고체 비누를 생산하는 ‘동구밭’은 전형적인 사회적기업이다. 비누를 만들기 위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비누를 만드는 회사다.

동구밭에 관한 반가운 소문을 들었다. 매출 50억원을 달성했다는 소식이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경기도 하남에 큰 공장을 샀다, 대기업들의 납품 요청이 줄을 잇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노순호(29) 동구밭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냐 물었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다 맞는데 하나는 틀렸다”고 말했다. “50억이 아니라 60억 찍을 것 같아요.”

2015년 1월 설립된 동구밭은 원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도시 농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제조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건 2017년. 비누를 만든 지 3년 만에 매출 60억원을 달성한 셈이다. 일반 기업에선 상식적인 일일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에선 보기 드문 성장 곡선이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약속도 잘 지켜지고 있다. 전체 직원 53명 가운데 절반이 발달장애인 직원이다. 지금까지 입사한 발달장애인 중 중도 퇴사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지난 10일 노순호 대표를 만났다. 농축과 숙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 동그랗고 단단한 비누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만약 동구밭이 망한다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경쟁에 밀려서? 품질이 떨어져서? 아니에요. 발달장애인 문제에 더는 관심을 갖지 않을 때, 그 시점이 바로 우리의 내리막길일 겁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은 우리의 목적이자 정체성이고, 제조업은 그걸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에요. 목적과 수단이 바뀌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원칙이에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망쳐서 버린 비누만 20만개

―언제부터 발달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요.

“대학 다니던 2013년에 인액터스라는 사회 혁신 동아리 친구들과 ‘동구밭 프로젝트’라는 걸 했어요. 비장애인이 발달장애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사회 적응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대학 졸업하기 전에 딱 1년만 뭔가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죠. 솔직히 진정성은 부족했어요. 발달장애인은 사회문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러 온 혁신가들. 그런 우월감에 취해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없던 진정성이 갑자기 생겨난 계기가 있었나요.

“발달장애인들이 제 또래였거든요. 6개월 정도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친구가 됐죠. 그냥 그게 계기였어요.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그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생겼어요.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발달장애인이 사회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였군요.

“그렇죠. 가장 큰 오류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문제에 자꾸 ‘고용률’을 들이댄다는 거예요. 장애인 10명을 각각 한 달씩 일하게 한 복지관이 있고, 장애인 1명을 열 달 동안 일하게 한 복지관이 있어요. 어디가 좋은 평가를 받을까요? 10명을 일하게 한 곳이에요. 근속 기간은 신경 안 써요. 발달장애인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예요. 당사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니 늘 불안하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5년 소셜벤처 동구밭을 정식으로 설립했어요. 발달장애인에게 비장애인 친구가 생기면 사회 적응력이 커져 취업 후 근속 연수가 늘어날 거라는 가설까지는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매출이 없었어요.”

―잘 안 됐군요.

“망할 뻔했죠.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갔어요. 2016년 말까지만 하고 정리하자고 생각했지만 접을 수가 없었어요. 발달장애인을 직접 고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요. 그때 ‘베어베터’가 떠올랐어요. 베어베터처럼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물건을 만들어 B2B로 납품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업과 계약한 뒤 거기에서 발생하는 고정 매출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모델이죠. 베어베터 안에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문제는 제조 품목이었죠. 기준을 네 가지로 정했어요. 첫째, 발달장애인이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둘째, 자본이 적게 들어야 한다. 셋째, 잘 안 팔릴 가능성을 대비해 유통기한이 긴 품목이어야 한다. 넷째, 1등 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도 업계 1위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쿨하잖아요.”

―네 가지 조건을 만족한 품목이 ‘비누’였군요.

“화장품 시장을 분석해보니 1세대 화장품은 보급, 2세대는 기능성, 3세대는 ‘다음 세대를 고려하는 화장품’이 화두였어요. 친환경적인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담은 브랜드가 주목받게 될 거라는 결론이었죠. 그래서 친환경 가치를 담은 천연 원료의 세안 비누를 만들기로 했어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제조업에 뛰어든 2017년, 망쳐서 버린 비누만 20만개에 달했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일했다. 전 직원이 지방의 공장으로 흩어져 기술을 배워왔다. 대구로, 강릉으로, 파주로 가서 한 달씩 기술을 배운 뒤 본사에 모여 레시피를 공유했다. “처음에 비누를 만들고 보니 비누가 아니었어요(웃음). 기름 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어쩔 땐 너무 딱딱해서 빨랫비누처럼 나왔고요. 흰색 비누를 만들어야 하는데 노랗게 나올 때도 있었어요. 원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주문이 들어와도 문제였다. 밤을 새워 수천 개를 만들어 놓고 퇴근했는데 다음 날 보니 상태가 엉망이라 새로 만든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짓을 얼마나 한 겁니까.

“6개월 했죠. 미칠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네요.”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수십억 투자 거절한 이유

때마침 미세 플라스틱 문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등 환경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졌다. 동구밭의 제품이 커뮤니티에서 ‘착한 비누’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2017년 말 출시한 고체 형태의 ‘설거지 워싱바’는 이른바 대박을 쳤다. 출시 석 달 만에 4만 개가 팔렸다.

―설거지 세제는 액체라는 인식이 강해서 고체 형태를 낯설게 느낄 법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팔린 건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어요. 액상 주방 세제는 사실 원액을 쓰는 게 아니라 물에 희석해서 사용해야 해요. 그게 표준 사용법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푹푹 눌러 짜서 쓰니까 세제를 정말 많이 쓰게 돼요. 그 원액이 그대로 강물로 흘러가고 일부는 우리 몸에 쌓이죠. 플라스틱 용기도 안 쓰고, 계면활성제도 첨가되지 않은 고체 세제는 적당량을 쓸 수 있어서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 그런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게 소비자들에게 통한 거죠.”

―설거지바의 성공에 힘입어 고체 샴푸와 린스도 출시했군요.

“보디버든(체내에 축적된 화학물질의 양), 제로웨이스트(재활용과 재사용을 통해 폐기물을 없애는 것) 이슈가 고체 샴푸와 린스에도 작동했죠. 우리 제품이 잘되니까 많은 브랜드사에서 ‘우리도 만들어서 납품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고체 세제, 샴푸와 린스의 경우 90%가 동구밭 물건입니다. 동구밭이라는 사회적기업이 시장의 카테고리를 바꿨죠.”

―카테고리가 바뀌었다고요?

“예전에는 설거지 세제가 단일 카테고리였어요. 그런데 이제 액체와 고체 둘로 나뉩니다. 샴푸, 린스도 마찬가지고요.”

동구밭은 제조업을 시작한 2017년 매출 7억원을 시작으로 2018년 15억원, 2019년 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 매출이 60억원이니 매년 두 배로 성장한 셈이다.

―내년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100억원이 목표입니다.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거예요. 최근에 월 7억원 정도 팔고 있는데, 내년에는 월 9억~10억원 정도로 기대하고 있어요. 매출도 중요하지만 발달장애인 고용이 언제나 우선이에요.”

―투자사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미팅을 하자고 해서 만났는데 재무제표를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 보여주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사회적기업이 이렇게 이익을 내는 게 가능하냐고 묻던데요. 당장 투자하고 싶다고 했는데 저희가 거절했어요.”

―수십억 규모의 투자일 텐데 거절했다고요?

“우리는 사실 투자가 필요 없어요. 이번에 하남에 200평대 공장을 매입했는데 일부 대출을 받긴 했지만 대출 없이도 살 수 있었어요. 건실하게 안 쓸 데 안 쓰고 필요한 데 쓰면서 경영했거든요. 게다가 우리 같은 사회적기업은 일반 기업의 논리로 따지면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결정을 많이 하는 곳이에요. 예를 들어 1000만원 벌 수 있는 일인데 성공 확률이 50%고, 10만원 벌 수 있는데 성공 확률이 99%라면 우리는 10만원을 버는 쪽을 선택해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망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야 발달장애인이 오래 일할 수 있으니까요. 성공을 위한 경영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경영을 하는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의 경영 방침이 흔들릴 수도 있죠. 무리하게 욕심낼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미션이 뚜렷하지 않은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도 많던데요. 그런 곳이 어영부영 임팩트 투자를 받기도 하고요.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소셜벤처 중에 사이비가 많아요. ‘임팩트 워싱’이라고 하죠. 사실 비즈니스 모델은 수억 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셜 미션은 바뀌지 않아야 해요. 발달장애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가 잘 안 되면 탈북민 문제로 넘어가고, 그러다 또 공정 무역하고 그런 곳도 있어요. 그런 데 투자한 회사가 있다면 그 투자사도 다른 목적이 있는 거겠죠.”

―발달장애인 고용에 대한 내부적인 원칙이 있나요.

“2017년에 B2B 매출이 400만원씩 늘 때마다 발달장애인 한 명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위기가 몇 번 있었어요. 5000만원짜리 계약이 이뤄져서 12명을 고용했는데, 중간에 계약이 취소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회사 규모가 커지면 전문 인력들이 많이 필요해지는데 무조건 발달장애인 직원만 고용하겠다는 것도 문제가 있었고요. 그래서 올해 새로 정한 기준이 있어요. 최소한 전체 직원의 50%는 발달장애인 직원으로 고용한다는 거죠.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의 최대 미션은 몇 명을 고용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예요. 그렇다고 ‘지금 있는 직원들 잘 있으니까 안 뽑아도 되겠지’ 하며 안주하는 건 위험한 일이죠. 내년에 100억원 달성하면 장애인 직원도 50여 명 정도로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10일은 동구밭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는 날이었다. 동구밭은 분기별로 영업 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저는 ‘돈 벌면 잘해줄게’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대신 ‘돈 벌 때마다 잘해줄게’라고 말합니다(웃음). 성과급 주는 날에는 발달장애인 부모님께 편지도 보냅니다. ‘이번 분기에도 매출이 좋아서 성과급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로서 가장 뿌듯하고 기쁜 순간입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기자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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