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식용견에서 반려견으로… 자유 향한 첫 외출

[Cover Story] 개농장 구조견 해외 입양 가던 날

국제동물보호단체 HSI 17번째 임무
‘해미 개농장의 식용견을 구출하라’

견사 나가면 죽는다 인식, 겁먹은 개들
흥분한 대형견 달래고 꺼내느라 ‘진땀’

국제동물보호단체 HSI는 지난 2015년부터 한국에서 식용견 농장 폐쇄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올해 17번째 작업을 포함해 지금까지 2000마리 이상 개를 구조해 미국으로 해외 입양 보냈다. 사진은 애비 허버드 HSI 재난 대응 프로그램 매니저가 개 농장에서 만난 도사견의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 /HSI 제공

지난달 22일 오전 7시, 충남 서산 해미면. 노랗게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5t 화물차 세 대가 나란히 들어왔다. 차량 측면에는 ‘특수무진동트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날 수송 임무는 좀 특별했다. 작전명은 ‘해미 개농장 폐쇄’. 화물칸에 개 110마리를 실어 인천국제공항으로 보내야 하는 임무였다. 이날 현장 구조는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주도했다. 이들은 한국의 식용견 농장에서 구출한 개를 미국·캐나다 등으로 해외 입양 보내는 구호 활동을 펼친다. 이번이 17번째다. 현장에는 HSI코리아 활동가를 비롯해 지난 10월 1일 입국해 2주간 자가 격리를 마친 미국 활동가 3명이 함께했다.

죽음 문턱을 넘다

마땅한 표지판도 없는 골목에 들어서자 묵직한 오물 냄새가 밀려왔다. 농장 규모는 820㎡(약 250평) 남짓. 대부분의 개는 철창으로 바닥을 만들어 공중에 띄운 ‘뜬장’에 갇혀 있었고, 목줄 채워진 개들이 곳곳에 있었다. 견종은 다양했다. 식용견이나 투견으로 팔려간다는 도사견을 비롯해 진도 믹스견, 골든레트리버, 셰퍼드, 포메라니안도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눈빛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일정은 빠듯했다. 이날 작업을 총괄한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이사는 “밤 비행기를 타려면 오후 1시에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까지 이동하고 세관을 거쳐 탑승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개들은 견사에서 나오는 걸 두려워했다. 그간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개는 없었을 것이다. 개농장에서 외출은 죽음을 의미한다.

구조팀 5명이 견사로 들어섰다. 모기와 날파리 수백 마리가 시야를 방해했고, 바닥에 있던 성인 주먹만 한 쥐는 빠르게 몸을 숨겼다. 견사 안에 라디오 소리가 낮게 깔렸다. HSI코리아 활동가들은 구조견에게 미리 이름을 붙여둔 상태였다. 개체 정보가 없는 개는 출국이 안 되기 때문이다. ‘드와이트(Dwight)’라는 이름의 수컷 도사견은 철창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몸길이는 1m가 넘고 무게도 40~50㎏쯤 된다. 활동가 서너 명이 달라붙어야 할 정도로 힘이 좋았다. 아담은 흥분한 드와이트를 달래기 위해 무릎을 꿇고 눈을 맞췄다. 배설물과 진흙이 뒤섞인 질퍽한 오물에 바지가 젖었다.

케이지에 순순히 들어가는 개는 거의 없었다. 극도로 흥분한 녀석들의 경우 아예 곁을 주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연신 사납게 짖어댈 뿐이다. 이럴 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직접 뜬장에 몸을 구겨 넣은 켈리 오메라 HSI 이사가 손짓하며 말했다. “Everybody out!(다들 나가세요!)” 작업을 이어가던 활동가들과 취재진을 견사 밖으로 물렸다. 시야에 여러 사람이 보이면 흥분이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잔뜩 겁을 먹고 벌벌 떠는 개들도 많았다. 네 다리에 힘을 꼿꼿하게 주고 버티는 이런 녀석들은 케이지까지 들어서 옮겨야 했다. 아담의 품에 안겨 이동하던 ‘클로버(clover)’는 오줌을 줄줄 쌌다. 대형견을 케이지로 옮기는 작업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활동가들은 개 한 마리를 옮길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마스크는 쉼 없이 들썩였고, 작업복은 오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로 얼룩졌다.

식용견 농장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소형견들의 모습. /HSI 제공
아담 파라스칸돌라 HSI 이사가 뜬장에 직접 들어가 겁먹은 도사견을 달래고 있다. /HSI 제공

텅 빈 견사에 불이 꺼지다

구조팀은 작업 중간중간 서류를 보며 명단을 확인했다. 문서에는 100마리가 넘는 개들의 이름과 견종, 성별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김나라 HSI코리아 매니저는 “사전 답사를 통해 이름 없이 살던 개들의 이름을 짓고 개체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도 삽입했다”면서 “인천국제공항 세관에서 개체 확인을 하기 때문에 케이지마다 이름과 성별을 정확하게 써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입국 절차도 만만찮다. 아무 날이나 출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개농장 구조견들은 여객기가 아닌 화물용 비행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출발지와 도착지의 기온에 따라 탑승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김나라 매니저는 “화물칸에도 에어컨이나 히터가 작동하지만 너무 덥거나 추우면 승인이 안 난다”면서 “출국 일정을 다 잡아놓고도 화물칸에 얼음이 낀다는 이유로 3주나 지연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또 갓 태어난 새끼들은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 동물 판매를 목적으로 어린 강아지를 유통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의 경우 생후 6개월 이상의 개만 입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구조된 개 중에서도 갓 태어난 새끼와 모견(母犬)은 임시보호소로 보내져 다음 비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HSI는 개농장 근절을 위해 활동하지만, 농장주에게 폐쇄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따금 연락해 사업 전향 결심이 서면 구조 작업에 나서는 식이다. 해미의 농장주 김모(61)씨는 “이제 힘에도 부치고 생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아 개들을 데려가라고 했다”면서 “개들이 미국도 가고 캐나다나 호주로도 간다던데 거기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오후 1시 45분. 마지막으로 구조된 개가 트럭 위로 옮겨졌다. 텅 빈 견사에 적막이 흘렀다. 라디오도 꺼졌다.

HSI 활동가들이 40~50㎏ 무게 도사견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 /HSI 제공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활동가들이 식수 통에 물을 채우고 있다. /HSI 제공

자유를 찾아 떠나는 비행

대기하던 5t 트럭 세 대가 줄지어 도로 위를 달렸다. 쉬지 않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공항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함께 오를 개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지난해 부산 구포개시장 폐쇄 당시 구조된 44마리와 강원 홍천, 경북 경주 임시보호소에서 지내던 개를 포함해 총 196마리가 출국을 기다렸다.

이곳에서도 작업은 계속됐다. 이동 중에 발생한 배변을 치우고 케이지마다 배변 패드를 일일이 넣었다. 또 케이지 입구에 급수 통을 설치하고 생수를 채웠다. 케이지 상단에는 세관 증명서와 지퍼백에 나눠 담은 사료를 부착했다. 이 모든 작업이 동물 운송 관련 출입국 규정에 명시돼 있다. 한쪽에서는 세관 직원이 나와 무선 식별 장치로 개체마다 삽입된 마이크로칩을 읽고 명단을 확인해 나갔다. 김나라 매니저는 “워싱턴 덜레스 공항까지 꼬박 14시간을 날아가야 하는데, 그만큼 긴 시간 화물칸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규정이 엄격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아담 HSI 이사는 “구조된 개들은 미국에 도착한 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임시보호소로 옮겨지고, 이후 입양처를 찾아줄 HSI의 파트너 보호소에서 새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면서 “입양된 아이들이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새로운 세상을 배워가는 것들을 보는 게 우리가 해온 일에 대한 보상이자 이 일을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날 오전 7시에 시작된 작업은 10시간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해 저무는 늦은 오후, 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노을 위를 지날 때마다 구조된 개들이 고개 들어 가만히 바라봤다.

서산·인천=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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