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더나미 책꽂이] ‘이제 시골’,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외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20대 손녀가 치매 걸린 90대 할머니를 돌보며 써내려간 2년의 기록. 취업준비생이라는 이유로 얼떨결에 맡게 된 일이지만, 손녀는 할머니를 돌보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양갱만 좋아할 줄 알았지만 달디단 마카롱을 좋아하고, 자연과 농사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입체적인 할머니의 모습은 좋은 면만 보여주진 않았다. 할머니는 평생 고된 집안일과 농사로 가족을 돌보면서도 그 가치를 존중받아본 적 없는 피해자면서, 딸과 손녀에게 그 노동을 당연하게 대물림하려는 가해자였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만 여겼던 엄마도 할머니 돌봄을 거부하는 올케를 비난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돌봄으로 얽힌 가부장제의 입체적인 모습을 찬찬히 이해해나간다. 노년 여성의 삶과 돌봄 노동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기록한 훌륭한 구술사.
윤이재 지음, 다다서재, 14000

 

커밍 업 쇼트
노동 계급 밀레니얼 청년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2030세대의 삶을 연구하는 저자는 청년 100여 명의 인터뷰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의 시작은왜 밀레니얼들은 결혼이나 정규직 일자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성인됨의 지표들을 가지지 않고 있는가하는 질문이었다. 혹자는 비혼이나 자유로운 이주, 다양한 일의 방식 등 선택권이 넓어진 탓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노동 계급 청년의 인생 궤적을 추적했더니 타의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살려 기록했다.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은 질병·실업 등의 위험으로 금세 헤어나올 수 없는 불안정한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노력하면 된다는 신념은 쉽게 무너진다. 저자가 출간 전에 생각했던 책 제목은지연된 꿈이다.
제니퍼 M. 실바 지음, 문현아·박준규 옮김, 리시올, 18000

 

이제, 시골
사회적경제 영역에서재야의 리더로 인정받는 임경수 협동조합 이장 대표가 퍼머컬처(permaculture)와 귀촌(歸村)에 대한 책을 냈다. 유기농업과 로컬에 대한 애정을 갖고 홍성·완주 등에서 살아온 그간의 경험을 녹여낸귀향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귀촌이나 귀농이라는 단어 대신귀향(歸鄕)’이라는 단어를 쓴다. ‘농사를 짓는 지역 살이와 그렇지 않은 생활을 구분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농촌에 농민만 살았던 게 아니고, 농사만 짓는 농부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마음의 고향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성공적인 귀향을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반농반X’. 반농반X는 일본 작가 시오미 나오키의 책에 나오는 말로, 자연 속에서 농사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일’(X)을 추구하는 삶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로컬에서 새로운 귀향을 꿈꾸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길잡이다.
임경수 지음, 소일, 13000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프랑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자신의 임신중지 과정을 그래픽노블로 기록했다. 1986년생인 저자는 8년 전 원치 않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임신중지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이기적으로 태아를 죽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었으며, 감정적·신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고 반박한다. 경험을 책으로 펴낸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임신중지가 합법인 프랑스에서조차 임신중지를 쉬쉬하거나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는 것을 느끼고 임신중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경험에 더해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임신중지 시술을 진행해 온 산부인과 전문의 마크 조프란이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른 여성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낸 작가의 용기는 여성의 성적 재생산 권리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드 메르미오 지음, 이민경 옮김, 롤러코스터, 17000

 

자연의 권리
법체계가 자연과 동물 권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한 권의 책에 정리했다. 저자는 유엔 인권·환경 특별보고관이자 환경 전문 변호사다. 그는 환경과 동물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은 널리 퍼졌지만, 법체계는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기존 환경법이 자연 세계의 훼손을 무시할 뿐 아니라 도리어 방조, 승인, 합법화한다고도 말한다. 법제도가 인간중심주의·재산권·경제성장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기후재앙이 가까워진 상황 속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법체계로 환경 파괴가 가속된다는 점을 고발하면서도 실제 사례를 통해 대안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항 속에 금붕어 한 마리만 기르는 것을 불법화한 뉴질랜드, 동물원과 사파리 퇴출을 명문화한 코스타리카 등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면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으로의 전환은 가능하다고.
데이비드 보이드 지음, 이지원 옮김, 교유서가, 18000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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