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코로나19 아이들을 다시 일터로 내몰다

[Cover Story] 퇴보 위기 놓인 아동 인권

아이만은 여덟 살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살고 있다. 아이만의 하루는 소 떼를 들판에 끌고 나가면서 시작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연필을 쥐었던 손에는 나무 막대가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건초를 찾아 가축들을 먹이는 게 일이다. 일터엔 그늘이 없다. 그렇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를 보낸다. 올해 3월 아프리카에서도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아이만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학교가 폐쇄됐고, 학생들은 갈 곳을 잃었다. 가정에서 학업을 이어갈 여건은 되지 않았다. 4월에 접어들면서 상점들도 문을 닫고, 어른들의 일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뛰어들어야 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의 꿈이 코로나19로 무너지고 있다.

아프리카 내륙 국가 니제르의 한 소년이 이른 아침 물을 길어오고 있다. /ILO 제공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아동들이 다시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분 빈곤 인구가 많은 인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6월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발표한 ‘COVID-19가 아동 노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 현장에 보내진 아동은 1억5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절반은 5~11세 아이들로 파악됐다. ILO는 빈곤율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아동 노동 인구는 최소 0.7%포인트 증가한다는 연구를 근거로,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오던 아동 노동 인구가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증가할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유행은 수년간의 발전을 역전시킬 뿐만 아니라 아동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 아이들, 살기 위해 광산·농장으로…

현지 상황은 연구 보고서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재웅 굿네이버스 잠비아 대표는 더나은미래와 가진 통화에서 “잠비아에는 도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농촌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가정이 많은데, 정부 차원의 록다운 실시로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실직자도 크게 늘었다”면서 “코로나19 발생 전에도 감염병 위험이 존재하던 곳인데,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해지면서 아이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 사는 아이만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소 떼를 돌보며 하루를 보낸다. /굿네이버스 제공

실제로 잠비아 길거리에는 숯을 내다 파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요리할 때 나무 땔감 대신 숯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숯 만드는 일은 까다롭다. 나무를 베고 차곡차곡 쌓은 다음에 그 위에 진흙을 발라 임시 가마를 만들어 불을 지핀다. 이틀 정도 나무를 태워 열기가 잦아들면 가마를 손으로 깨고 숯을 꺼내 포대에 담아 낸다. 보호 장비는 없다. 이렇게 숯 한 포대를 만드는 데 일주일이 걸리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50~100잠비아콰차(약 3500~7000원)다. 이마저도 중간상인이 끼는 경우에는 수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광산 노동자로 동원되는 아이들도 있다. 잠비아 남동부에 있는 도시 리빙스턴에는 구리 광산이 많이 형성돼 있다. 광산업에는 중국인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몇 해 전 중국인 사업주와 현지 노동자 간 임금 갈등으로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로 위험한 곳이지만, 광산에서 채취한 구리를 운반하는 일에 아이들이 동원되고 있다. 목화 농장에서 나무에 물을 주고 농약을 뿌리는 일,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제거하는 일, 민물고기를 훈제해 판매하는 일도 잠비아 아이들의 몫이다.

ILO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코코아 생산량 세계 1위인 코트디부아르에서는 가계 수입이 10% 줄 때마다 아동 노동 인구가 5%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오면 성인 대신 아동으로 노동력을 대체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아동의 임금이 성인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2015년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에서는 전체 아동 600만명 중에 160만명이 노동 현장에 투입됐다. 이양희 국제아동인권센터 대표는 “아동 노동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데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현지 모니터링조차 어렵다”고 했다.

잠비아에 사는 밀링가(42)는 가정부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고됐다. 농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남편은 코로나 이후 일감이 줄어 가족의 식비를 버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결국 밀링가의 자녀 4명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일용직으로 일하게 됐다. 밀링가 가족은 하루 두 끼, 옥수수죽과 정어리로 된 식사를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최근에는 한 끼 식사를 위한 재료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다.

인근 국가 말라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말라위에서는 국가 수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담뱃잎 생산에 아이들이 동원된다. 담뱃잎을 재배하고 말리고 포대에 넣는 단순 노동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가족이 대규모 농장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노성채 굿네이버스 말라위 프로젝트매니저는 “아이들을 정식 노동자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할당된 일을 자녀들이 함께 돕는 형태”라며 “의무교육이라 학비 부담도 없는 나라인데,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일터로 데리고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네팔 어린이들은 돌을 운반하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유니세프 제공

방치된 아이들, 인신매매에 노출되기도

“자녀들에게 돈을 벌어오라는 부모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가까이 지켜보니까 생각이 달라져요. 부모들의 선택이라기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거든요. 조숙한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를 안 가고 부모를 돕게 되는 거고요. 조혼 문화도 근절돼야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 딸을 보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정서가 깔려있습니다.”

이재웅 굿네이버스 잠비아 대표는 부모들이 나쁜 줄 알면서도 아동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부모가 도시로 돈 벌러 나가면 부모의 형제들이 조카들을 돌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부분 학교보다는 노동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케냐에는 사금 채취 일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10세 이상의 아동이나 성인들이 굴에 들어가서 금이 붙은 돌을 옮겨오면, 그보다 작은 어린 아이들이 돌을 망치로 깨고 물에 씻어서 사금을 걸러낸다.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아이들은 왕복 12시간 거리의 강에서 물을 떠 와 마을에 파는 ‘물지게꾼’이 된다. 케냐 성인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평균 소득은 약 1000실링(약 1만원)이며, 아이들은 그 절반 수준의 돈을 번다.

가족 붕괴는 아동 인신매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6일(현지 시각) 인도 남부의 한 의류 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어린이 35명이 현지 인권 단체에 의해 구출됐다. 인도 아동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아이들은 하루 14시간을 쉬는 날 없이 일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사건을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와 국가 봉쇄령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아동 인신매매로 판단하고 있다.

원격 수업을 지원하는 ‘홈스쿨링 키트’를 전달받고 환하게 웃는 마티다(왼쪽)와 굿네이버스 잠비아 현지 직원의 모습. /굿네이버스 제공

코로나 이후 개도국 초등생 86% 학업 중단

유엔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 5일 기준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학업 중단 아동은 전 세계 190여 국가 16억명에 이른다. 또한 143국 아동 3억7000만명이 학교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지만, 학교 폐쇄로 식량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한 ’2020 코로나19와 인간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초등학생의 86%는 코로나19 이후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단체들은 식량 안보와 함께 교육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잠비아의 경우 교육부에서 지난 4월부터 국영 방송국의 TV와 라디오를 통해 원격 수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마을이 많다.

굿네이버스는 최근 해외 교육 지원 캠페인 ‘NEVER STOP’을 통해 홈스쿨링이 가능한 키트를 보급하고 있다. 홈스쿨링 키트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필요한 태양광 패널, 태양광 라디오, 태양광 랜턴, 축전지, 필기구 등과 함께 감염 예방과 건강 유지를 위한 마스크, 손 소독제 등이 담겼다. 이와 별도로 영양식도 보급된다. 또 코로나19가 안정된 후 학교에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교내에 간이 세면 시설 ‘워터바스켓’을 설치하는 보건위생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로 아동 학대와 아동 노동, 교육 격차 문제가 20년 전 수준으로 퇴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재웅 굿네이버스 잠비아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지만 대부분 단시간 노동만 했다”면서 “지금 상황이 지속하면 아이들은 점점 장시간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학교를 다시 열어도 돌아올 가능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제적 회복 없이는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지만, 교육 지원 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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