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경영평가 결과는?
A등급 6곳… 토지주택공사, 사회적 가치 1위
대한석탄공사, 또 낙제점… 올해도 S등급 없어
가장 큰 성과 ‘일자리’… 35개 기업, 9070명 채용
채용·설비 투자 집중하다보니 사업성은 ‘하락’ 각 기관 성격 고려 못한 평가 기준은 개선돼야
공기업이 달라지고 있다. ‘생산성’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 목표로 재설정하고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일자리’ ‘안전’ ‘환경’ 등은 공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가 됐다. ‘포용국가’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 정부가 공기업에 사회적 가치 창출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역시 수익성 중심에서 공공성 중심으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 35개 공기업의 지난해 성과를 분석한 ‘2018 공기업 경영평가'(이하 공평) 결과를 지난 20일 발표했다. 이번 평가에서 공기업들의 명암을 가른 것도 사회적 가치였다. 100점 만점인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관련 배점만 30점에 달했다.
◇”사회적 가치 외면하면 좋은 평가 못 받는다”
공평은 공기업들을 S(탁월)·A(우수)·B(양호)·C(보통)·D(미흡)·E(아주 미흡)의 여섯 등급으로 분류한다. C등급 이상 받으면 성과급 등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만, E등급을 받거나 2년 연속으로 D등급을 받으면 기관장이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르는 등 페널티를 받는다. 공기업 종사자 사이에서 공평이 ‘1년 농사’로 불리는 이유다.
올해 공평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인천항만공사·한국남부발전·한국수자원공사·한국중부발전 등 여섯 곳이 A등급을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사회적 가치 평가에서 전체 1위에 올랐다. 반면 대한석탄공사는 지난 평가에 이어 이번에도 E등급 낙제점을 받았다. 그랜드코리아레저·한국마사회·한국전력기술·한전KPS 등 4개 기업은 D등급에 머물렀다. S등급은 이번에도 없었다. 2012년도 평가부터 7년째 공석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83년 제도 도입 이후 30여년 만에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고서 시행한 첫 평가”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 정도가 경평 결과도 좌우했다. 더나은미래가 입수한 ‘2018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 종합’ 자료를 보면 한국중부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도로공사·인천항만공사·한국남동발전·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사회적 가치 구현 상위 8개 기업’ 가운데 6곳이 A등급, 2곳은 B등급을 받았다. 새로 A등급을 받은 인천항만공사·한국남부발전·한국중부발전 등도 모두 이 리스트에 포함됐다.
신완선 공기업 평가단장(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은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등급이 갈렸다고 보면 된다”며 “아무리 사업적인 성과가 좋아도 일자리 창출, 노동자 삶의 질 개선, 지역사회와의 상생 노력 등을 게을리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용 늘고 환경·안전 개선… 공기업 본연 공공성 강화
지난 평가에서 ‘전략기획 및 사회적 책임'(5점) 단일 항목이었던 사회적 가치 지표는 이번 평가에서 ▲일자리 창출(7점)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4점) ▲안전·환경(3점)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5점) ▲윤리경영(3점) ▲삶의 질(1점) ▲혁신 노력·성과(3점) ▲국민 소통(2점) ▲노사 관계(2점) 등 9개 항목(30점)으로 대폭 확대됐다.
공기업 평가단에 따르면 평가 대상 공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지표 평균 득점률은 71.5%에 이른다. 지난해 사회적 가치 지표 평균 득점률(57%)보다 14.5%P나 높았다. 사회적 가치 확대 드라이브를 건 정부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췄다는 이야기다.
더나은미래가 확보한 공기업 평가단의 ‘공기업 경쟁력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가장 큰 성과는 일자리에서 나왔다. 지난해 35개 공기업은 모두 9070명을 신규 채용했다. 2017년 6805명을 새로 고용한 것과 비교해 약 33% 증가했다. 지역 인재 채용 비율도 2017년 30.2%에서 지난해 35%로 높아졌다. 평균 미세 먼지 저감률은 2017년 25.4%에서 지난해 40.0%로, 온실가스 저감률도 같은 기간 16%에서 23%로 각각 57.5%, 56.3% 개선됐다.
반면 사업성은 악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35개 공기업의 평균 영업이익은 2017년 4588억원에서 지난해 3791억원으로 17.4%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하락폭이 더 커서 같은 기간 평균 1200억원에서 686억원으로 57%나 급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기업 관계자는 “채용 규모와 안전 설비 투자를 늘리다 보니 재무 지표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기업 경쟁력 분석 보고서에는 평균적으로 공기업의 안전성·혁신성은 30% 정도 향상됐지만, 사업성은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에 따른 공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꼭 ‘적신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진경 LAB2050 연구원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역할은 수익성 극대화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 증진”이라며 “안전 확보, 환경 보호, 사회 취약 계층 배려 등 본연의 기능을 하는 데 따른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 등 일부 지표에 배점 몰려… 개선 필요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5월 사장 직속 사회적 가치 전담 부서인 사회가치추진실을 설치했다. 인천항만공사도 지난해 7월 일자리사회가치실을,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11월 사회가치혁신처를 신설하는 등 저마다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비한 조직을 꾸렸다. 공기업 평가단은 공기업들의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에 대해 “고군분투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와 관련해 공기업들이 수행하는 과제만 943개, 수행률도 74%에 달한다. 다만 사회적 가치 측정 관련 평가 방식 자체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공기업이 많았다.
한국석유공사 열린혁신팀 관계자는 “기관마다 사업의 성격과 경영 상황이 다른데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사회적 가치 확대를 위해서는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지만, 경영 현황을 고려할 때 신규 투자 여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 평가에 ‘일자리 창출’ 등 일부 지표에 배점이 몰린 데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대한석탄공사 사회혁신팀 관계자는 “석탄공사의 경우 경영 환경 악화 등 이유로 2017년부터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는 여러 분야에서 창출할 수 있는데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다 보니 다른 분야의 노력이 빛이 바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사회적가치추진단 관계자는 “기관의 설립 목적, 고유 사업과 연계한 평가 항목 개발·적용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각 기업의 특성에 맞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 평가단에서도 지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회적 가치를 지속해서 창출할 동력은 약하다는 것이다. 신완선 단장은 “관련 지표가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 보니 점수 채우기에 급급한 경향이 있다”며 “공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자율성을 발휘해 임팩트를 만들 수 있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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