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우리 옆집 난민 ①] “자유 찾아 한국 온지 3년…태극마크 달고 세계 챔프 되는 게 꿈”

[우리 옆집 난민 ①] 카메룬서 온 ‘난민 복서’ 길태산

855명. 난민법이 마련된 2013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한 사람의 숫자다. ‘난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이 있다. 다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 뿐이다. 더나은미래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난민들을 만나 보는 ‘우리 옆집 난민’ 시리즈를 연재한다.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총 5회 연재하며 1회는 지면에, 나머지는 더나은미래 홈페이지에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 프로 복싱 수퍼미들급 챔피언 길태산(31). 본명은 장 두란델 에투빌, 카메룬 출신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 주관 수퍼미들급(76.19㎏ 이하) 한국 타이틀 매치에서 이준용(27) 선수를 6라운드 TKO로 꺾고 챔프 자리에 올랐다. 올해로 한국 생활 4년 차인 길태산 선수를 지난 16일 천안 돌주먹복싱체육관에서 만났다. 서툰 한국어 탓에 인터뷰는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길태산 선수가 지난 16일 충남 천안 돌주먹복싱체육관에서 훈련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일요 기자


◇한국에서 얻은 것은 ‘자유’ 그리고 새로운 ‘가족’

“자유(la liberté)! 난 이제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온합니다.”

길태산 선수가 두 팔을 양옆으로 펼치며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고국인 카메룬에서는 군 소속 복싱 선수로 활동했다. 카메룬은 폴 비야(85)가 36년째 장기 집권하는 독재국가다.

“카메룬에서의 생활은 폭력과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회를 준비할 때면 군 당국의 가혹 행위가 이어졌어요. 다쳐도 자비로 치료해야 했고, 월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관리자들이 중간에서 가로챘죠. 반항하면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운동과 장사를 병행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죠.”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 2015년.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그는 동료 선수 이흑산(압둘레이 아싼·35)과 함께 도망쳤다.

“숙소를 나와 무작정 내달렸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어요. 난민 신청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서울 구의동의 한 모텔에 묵었는데, 주인에게 유엔난민기구(UNHCR) 사무소에 연락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모텔 주인의 딸은 우리에게 UNHCR로 갈 수 있게 택시를 불러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사람들이죠.”

길태산 선수는 습관처럼 ‘ma famille d’ici(이곳에 있는 내 가족)’라는 말을 반복했다. 권투를 지도해주는 최준규(36) 관장과 체육관 식구들,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후원자 길윤식(36)씨 등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들이 내게 권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코치(최준규 관장)와 보스(길윤식)가 작은 것까지 챙겨줍니다. 카메룬에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한국에 만난 사람들도 제겐 소중한 가족입니다.”

길태산 선수가 9월 7일 대전을 앞두고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 ⓒ문일요 기자


◇ “세계 챔피언이 꿈… 언젠가 한국인으로 살고파”

길태산 선수는 지난 3년간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6년 12월 1일’만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화성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날이다. 난민 신청자는 6개월마다 체류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당시 천안으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새 주소를 잘 몰라 접수가 이틀 늦어졌는데, 단속이 나와 외국인보호소로 가게 된 것이다. 길태산은 그곳을 ‘감옥’이라고 불렀다.

최악의 경우 강제 추방당해 카메룬으로 송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카메룬에 돌아가면 징역형이 불가피했다. 그때 또 다른 인연이 나타났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다. 길태산은 이일 변호사의 도움으로 난민 자격을 얻어, 10개월여 만에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현재 길태산은 천안에 있는 돌주먹복싱체육관에서 훈련한다. 매일 새벽 13km 거리를 달리고,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몸을 다진다. 지금까지 전적은 5전 5승이다.

승승장구하는 전적만큼이나 한국 생활에도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매주 금요일 저녁 교회에서 열리는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단골 음식점이 생길 정도로 한국 음식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제육볶음을 가장 좋아합니다. 부대찌개와 설렁탕도 잘 먹어요. 술은 경기 끝나고 가끔 마시는데, 소주 2병 정도는 거뜬히 마십니다(웃음).”

길태산은 다음 달 7일 부산에서 열리는 경기를 준비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권투위원회(WBC) 아시아 15위권에 진입하면 아시아챔피언에도 도전할 수 있고, 이를 발판 삼아 세계 챔피언도 노릴 수 있다.

“세계 챔피언이 꿈입니다. 나는 권투 선수니까요. 그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은 모르지만, 언젠가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천안=문일요·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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