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공감펀딩] “함께 살 새 집 지어질 날 올까요”…은평재활원 50명 장애인들의 기다림

“저요? 하루 종일 휠체어에만 있는데….”

평소에 무얼 하며 노느냐고 묻자, 이승연(가명·15)군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이군은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퇴화하는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한때 뜀박질을 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병의 진행이 빨라지면서 아예 걸을 수 없게 됐다. 근이영양증은 심장 근육에까지 진행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고, 20세 이후로는 생존 가능성이 낮은 병이다.

“안타깝죠. 한창 꿈 많을 시기인데 자기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요리사가 돼서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더니,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제 못 하잖아요’ 하더라고요.”(이보라 사회복지사)

휠체어를 탄 승연(가명·15)군. ⓒ은평재활원

이군은 현재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인 서울 은평구 은평재활원에서 생활한다. 어릴 적 부모와 분리돼 일반 아동시설에서 지내다 지적·지체 장애 증세로 2011년 이곳에 왔다. 이군을 돌보는 이보라 사회복지사는 “친구들처럼 ‘춤을 배우고 싶어요’, ‘빵 만드는 제과제빵사가 되고 싶어요’ 하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로 꿈이 바뀌더라”며 “옆에서 응원해줘도 자신이 이미 꿈을 포기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런 이군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재활원의 또래 친구들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원래 지내던 재활원 건물이 2014년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철거되면서, 3년 전부터 50명 원생이 아파트 1곳과 빌라 2곳에 떨어져 살게 됐기 때문이다. 또래들이 지내는 5층 빌라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이군 혼자만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서 중년배 형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수현 은평재활원 팀장은 “또래 친구들이 낮에 치료를 받으러 들렀다가도 저녁이 되면 각자 숙소로 가버리기 때문에 승연이가 유독 외로워한다”며 “재활원 건물이 다 지어지면 친구들과 방을 함께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완공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은평재활원이 있던 부지는 지난 6월 증·개축 착공에 들어가 공사 중이나, 현재 증·개축 자금 부족으로 완공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친구들과 생활하게 되면 승연이가 좀 활기차지지 않을까 싶어요. 남은 생이라도 또래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직접 그린 집 그림을 보여주는 승연(가명·15)군. ⓒ은평재활원

지적장애 3급인 김효원(가명·22)씨에게도 재활원 완공은 손꼽아 기다리는 꿈이다. 바리스타로 자립을 준비 중인 김씨는 주말마다 혼자 버스와 전철을 타고 합정역의 한 커피숍에 출근해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그런데 임시 거처인 빌라로 옮겨 오면서 바깥 외출이 불편해졌다. 전철역과 멀어진데다, 지난 5년간 수차례에 걸친 대장 절제 수술, 용종 제거 수술로 체력이 약해져 5층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만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너무 불편해요. 일을 갈 때나 병원에 가려면 버스도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가 복잡해서 내려야 할 곳에 못 내린 적도 있어요.”

효원씨(가명·22)가 거주하는 임시 거처인 4층 빌라 건물의 모든 창문은 판자로 가로막혀 있다. ⓒ은평재활원

성인인 김씨가 자유롭게 생활하는 데에도 여러 제약이 있다. 김씨는 “예전 재활원은 다녔던 학교가 바로 앞에 있어서 봉사도 다니고 선생님도 보러 갔는데 이제 한번 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오래 걸어야 한다”고 했다. 15평 남짓한 공간에 다섯 명 이상 복작복작 모여 사는 환경도 스트레스다. 그는 “좁은 곳에 모여 사니 혼자 집중하거나 쉬고 싶어도 정신이 없다”며 “빌라 창문도 주변 주민들 항의로 다 가려놔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프기 전에는 스페셜 올림픽(장애인 올림픽) 종목인 인라인 스케이트와 보체(장애인 올림픽 공식 구기 종목) 경기를 뛸 만큼 건강했어요. 병 때문에 꿈이 바뀌었지만, 바리스타의 꿈을 이루도록 새 건물에 작은 카페를 열어주고 싶습니다.”

바리스타 실습 중인 효원(가명·22)씨. ⓒ은평재활원

이수현 팀장은 “효원씨는 발목이 좋지 않고 몸이 원체 약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환경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제 성인이고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해서 형들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건강상 문제로 당장 자립하지 못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효원씨가 자기 일을 하며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재활원이 완공되면 1층에 카페를 열어 바리스타 일을 하도록 지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페 이름은 ‘특별한 카페’라고 짓고 싶어요. 내년 여름쯤 다시 오시면 직접 만든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대접할게요.”

현재 은평재활원 증·개축 공사는 전체의 40% 정도 진행됐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자재 값과 인테리어비 등을 포함해 5억원가량의 비용이 모자라 공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법인 내 직원들과 의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놓은 성금과 바자회를 통해 모은 후원금도 거의 바닥난 상태다. 세 갈래로 쪼개진 은평재활원 50여명 식구는 오늘도 함께 모여 살 새 집을 기다린다.

은평재활원 철거 현장 모습. ⓒ은평재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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