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끼리 자녀 돌봐… 엄마는 친구가 아이들은 형제가 생겼어요
매주 돌아가면서 품앗이 프로그램 기획, 각자 재능 나누며 보람도
여성가족부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연령대에 맞게 연결 지원… 품앗이 장소 제공도
“작은 용기가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가족을, 엄마들에겐 둘도 없는 친구를 만들어줬어요. 이젠 급한 일 때문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습니다. 교육 관련 정보를 몰라 불안해할 필요도 없어졌고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털실·단추·스티커를 들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만 손이 움직일 때마다 눈사람 얼굴에 눈과 귀가 그려지고, 알록달록 옷이 입혀졌다. 지난 1월 7일 부산시 사하구에서 가족품앗이(‘파워레인저’)를 하고 있는 네 가족의 토요일 오후 모습이었다.
인터넷 ‘맘(Mom)카페’에 올라온 글귀 하나가 이들의 만남을 이끌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끼리 모여보자는 글이었죠. 사실 많이 망설였어요. 처음 보는 엄마들과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됐거든요.”
박미란씨가 첫 모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벌써 3년째,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 다양한 체험과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여성가족부에서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운영하고 가족품앗이 그룹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모임의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가족품앗이란 이웃에 사는 사람들끼리 자녀 돌봄, 자신이 가진 노동력·물품 등을 교환하는 모든 형태를 말한다.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지역사회 가족들이 서로 품을 나누는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품앗이 장소를 제공하고 각 그룹에게 소정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11월까지 총 3만6976명이 가족품앗이를 진행했고, 8만1511명이 공동육아나눔터를 이용했다.
박건화씨는 “가족품앗이를 하면서 엄마들이 성장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매주 돌아가면서 품앗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물품을 준비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고, 더 재미있고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게 되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고민해보니 자녀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더군요.”
보육시설의 사각을 가족품앗이로 해결한 그룹도 있었다. 취업모와 비취업모가 함께 모인 천안시 가족품앗이 ‘아리둥지’ 그룹이 바로 그 예다. 임미선씨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보통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되기 때문에 출근 후 1시간, 퇴근 후 1시간 이상 공백이 생겨요. 다행히 우리 품앗이에선 한 엄마가 자녀를 데리러 갈 때 다른 아이들도 함께 돌봐주세요.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거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도 돌아가며 아이를 맡아주고 있죠.”
‘아리둥지’ 그룹은 엄마들이 일일교사가 되어 품앗이를 진행하고 있다. 수학·영어·한자·미술 등 과목도 다양하다.
“우리 품앗이에 선생님들이 모인 덕분이에요. 아이들이 엄마가 수업을 진행하는 걸 신기해하면서 집중을 잘하더라고요. 각자의 재능을 나누면서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임미선씨는 가족품앗이를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아이들에게 재미난 영어교육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스토리텔링 수업을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됐다.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의 추천으로 면접을 치렀고, 영어 스토리텔링 교사로 정식 발령을 받은 것이다.
“가족품앗이가 제 비전을 찾는 통로가 됐죠.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고, 또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는 걸 품앗이를 통해 알게 됐으니까요.”
형제 없이 홀로 자라는 아이들이 많은 요즘 가족품앗이는 자녀들이 이웃을 배려하고 나눔을 배울 수 있는 인성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부산시 사하구의 ‘엄궁놀토’ 품앗이가 그러했다.
“아이들이 품앗이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요. 주말에 쉬고 싶어도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니 오지 않을 수 없죠.” 배영숙씨가 왁자지껄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집에서는 항상 동생이던 아이가 품앗이에선 형 역할을 하게 되니 자세가 달라지고 의젓해지더라고요. 자기만 생각하던 아이들이 맛있는 과자도 함께 나누려 하고,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가족품앗이는 작은 만남 속에서 이뤄진다. 대부분의 품앗이들이 평소 친분이 있던 학부모를 연결하거나 인터넷 카페나 아파트 동호회, 문화센터 강좌를 통해 만남을 시작했다.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방법이다. 센터에선 자녀 연령대와 마음에 맞는 엄마들끼리 품앗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3년간 가족품앗이를 진행해온 배영숙씨가 따뜻한 조언을 덧붙였다.
“적극적인 자세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해요. 일단 가까운 이웃과 함께 시작해보세요. 전국의 많은 엄마들이 가족품앗이를 통해 용기와 힘을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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