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國 아이들, 도서관에서 ‘새로운 우주’ 키웠다”
‘룸투리드’ 설립자 존 우드 인터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NGO’ ‘자선이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한 성공 사례’.
비영리단체 ‘룸투리드(Room to Read)‘에 뒤따르는 수식어다. 이 단체를 만든 건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에서 잘나가던 임원 존 우드(54). 17년 전 휴가차 떠난 네팔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찾은 시골 학교가 그의 삶을 바꿨다. 텅 빈 도서관, 등산객이 놓고 간 몇 권 안 되는 책들…. 그는 “미쳤다”는 얘기를 뒤로한 채 회사를 그만뒀다. ‘태어난 곳 상관없이, 누구나 책 읽고 교육받게 하겠다’며 맨주먹으로 만든 단체가 지금의 룸투리드. 지난달 28일 스파크랩 발표를 위해 방한한 존 우드 창립자는 “올해 11월 인도에서 2만 번째 도서관이 문을 연다”며 “전 세계 15개국 100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책 안에서 ‘새로운 우주’를 키웠다”고 했다.
◇담대한 목표로 투자자 끌어들여
‘2020년까지 전 세계 1000만명의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겠다’. 신생 단체의 목표치곤 너무 거창했다. 룸투리드가 이 목표를 달성한 건 2015년. 그는 “처음부터 스케일을 키우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8년간 MS에서 배운 건 ‘크게 생각할 것, 수치로 얘기할 것, 결과에 집중할 것, 뛰어난 사람은 빠르게 고용할 것, 논쟁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 것’ 등이었다. 룸투리드는 비영리 버전의 MS가 되고자 했다. 앤드루 카네기가 미 전역에 3000여개의 공공 도서관을 만들어 미국 교육의 지형을 바꿨듯 개도국 수만 곳에 도서관을 세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임팩트 투자자들은 그의 대담한 목표에 끌렸다. 드레이퍼리처드재단(DRF)이 초기 투자를 했고, 글로벌카탈리스트재단, MS 등의 지원도 잇따랐다.
“룸투리드 경영진 대부분이 기업 출신이다. CEO는 골드만삭스, 최고개발책임자(CDO)는 테크 스타트업에서 왔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크게 생각하고, 어떻게 규모를 키울지 고민한다. 비영리 내에 ‘비즈니스 사고’는 확산될 필요가 있다. 비영리 영역에선 자원이 부족해서인지 사고를 한정하는 걸 많이 봤다. 규모가 만드는 임팩트가 있다.”(그는 기부자를 ‘투자자’, 기부금을 ‘투자금’이라 불렀다)
룸투리드는 한 해 현금 기부로 4530만달러(약508억원), 현물 기부로 420만달러(약 47억원)를 받는다. 이 중 30%는 기업 기부금, 나머지 30%는 기업 대표나 임원의 개인 기부다. 골드만삭스, 크레딧스위스, 힐튼, 오라클, 스와로브스키재단 등 굴지의 기업·재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그는 “기업 고위직엔 돈을 많이 버는 것 외에 삶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며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이라고 했다. 기업과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니 수치와 자료, 결과로 말하는 건 기본이다. 클릭 몇 번이면 수치가 튀어나온다. ‘2015년 한 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부터 총 780만권의 책을 대출했으며, 도서관 한 곳당 평균 2300권의 책이 대출됐고, 아이 한 명당 평균 9.5권의 책을 대출했다’는 식이다.
룸투리드의 간접비는 17%. 지난 11년 연속 비영리 평가 단체 채러티 네비게이터(Charity Navigator)로부터 별 4점 만점을 받았다. 그는 “행정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업의 (유·무상) 자원을 적극 요청한다”고 했다.
“도교·홍콩의 펀드레이징(모금) 지부가 입주한 공간은 스위스계 은행 ‘크레딧스위스’에서 기부받았다. 런던 지부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서 내어준 공간을 쓴다. 미국 클라우드 솔루션 업체인 ‘세일즈포스’로부터는 디지털 클라우드 저장 공간을 기부받고, 힐튼이나 로즈우드 같은 호텔과도 파트너십을 맺어 무료로 숙박을 해결한다. 하다못해 비행기 마일리지도 기부받는다. 기업 대표나 임원을 만나면 ‘마일리지 좀 달라’고 한다. 비영리단체에서 기업 자원을 보다 적극 요청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도 가진 자원을 나눠주길 바란다(웃음).”
◇교육, 삶을 바꿀 유일한 기회
그는 “삶의 ‘로또’ 같은 우연성을 없애는 게 룸투리드의 목표”라고 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너무 많은 걸 결정한다. 한국의 중산층 부모 아래 태어났다면 당신은 전 세계 상위 10%다. 캄보디아 시골, 하루 2달러 남짓으로 살아가야 하는 집에 태어났다면? 당신 자식도, 그다음 세대도 비슷한 삶을 살 확률이 높다. 교육이 삶을 바꿀 유일한 방법인데, 기회조차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과 교육 기회를 주는 게 우리의 존재 이유다.”
룸투리드가 학교와 도서관을 짓는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학습 교재를 개발하고, 교사를 트레이닝하며, 교육부와 협력해 시스템을 바꾸거나 캠페인을 벌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2004년부터는 24개 현지어로 된 아동 도서를 직접 출판해 왔다.
“개발도상국에선 현지어로 된 아동 도서가 드물다. 돈이 안 되니 영리 출판사에서 책을 안 낸다. 지금까지 1500권을 기획했고, 1800만권을 인쇄·배포했다. 영어 도서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각 나라의 현지 작가 및 아티스트와 함께 새로운 책을 기획한다. 올해부터는 두바이 케어스(Dubai Cares)재단 후원으로, 요르단으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책 20권을 새로 기획하고 50만부를 배포할 계획이다.”
사업 임팩트는 모니터링·평가팀에서 측정한다.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에서 모니터링에 드는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학생들이 1분에 몇 개의 단어를 읽는지, 통제군 학교에선 어느 수준인지, 한 학생당 몇권의 책을 빌리는지, 이해도는 어떤지를 잰다. 현장의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학생들이 가장 많이 대출하는 도서, 국가별 차이, 연도별 추이나 지역별 분석 등도 가능하다. 홈페이지에 임팩트를 측정하는 모든 척도가 나와 있다.”
존 우드 창업자는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로 “회복하고 나아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가 룸투리드를 시작할 때 실패할 이유를 100가지 넘게 들었다. 새로운 걸 시작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말할 이들이 정말 많을 거다. 겸손하게 듣되 일로 돌아가라. 열심히 일하고, 잘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라. 일은 언제든 잘못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