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에 강한 목화, 냉장고에 오래 보관해도 무르지 않는 토마토, 영양소가 가득 담긴 비타민 쌀, 백신 유전자를 넣은 바나나까지. 유전자변형식품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재배 면적도 날로 증가해 현재는 전 세계 농지 10%에서 유전자변형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어느 새 우리 식탁을 장악한 유전자변형식품.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앞으로 2회에 걸쳐 유전자변형식품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농사꾼은 종자를 베고 죽을지언정 결코 먹어 없애지 않는다.”
1년 내내 힘들게 지은 농사의 끝은 수확한 곡식의 일부를 골라 이듬해에 파종할 종자를 남겨 두는 일입니다. 몇 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해마다 훌륭한 종자를 선별해 왔고, 이 덕분에 우리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십 년 동안 현실은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오랜 세월 창고 한 켠을 차지했던 종자. 하지만 미국대법원은 생산자들에게 씨앗을 남기지 말라는 판결을 남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씨앗 전쟁
2013년, 75세 농사꾼 버넌 허 바우만씨는 미국의 다국적기업 몬산토로부터 소송을 당했습니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몬산토는 유전자변형 종자인 라운드업 레디 대두 종자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이 종자는 1996년에 개발된 이래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콩 농사를 짓는 미국 농가의 90%이상에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콩 농사를 짓는 바우만씨 역시 근처 대형 곡물 창고에서 라운드업 레디 대두 종자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 농사를 마친 바우만씨는 다음해를 위해 대두 종자를 남겨 두었습니다. 바우만씨가 다음 해에 이것을 밭에 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몬산토는 바우만씨가 몬산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농부 바우만씨와 몬산토 사이에 종자의 소유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몬산토는 유전자변형 종자는 회사가 개발했기 때문에 종자의 소유주가 회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회사는 유전자변형 종자를 판매하기 전에 종자를 남기지 않겠다는 생산자의 서명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우만씨의 소송을 도왔던 데비 바커씨는 다른 주장을 했습니다.
“씨앗은 회사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기업이 인류 공동의 자산에 대해 특허권을 주장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결국 몬산토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몬산토가 개발한 종자를 다른 누군가가 마음대로 재생산한다면, 어느 누가 종자 개발에 돈과 노력을 쏟겠냐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소송을 당한 생산자는 바우만씨 뿐만이 아닙니다. 식량안보센터와 우리종자지키기 캠페인 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까지 몬산토가 27개 이상의 국가에서 410명의 생산자와 56개의 중소기업을 상대로 142건의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통해 약 250억 원 이상의 배상금을 받아냈습니다.
◇매년 종자를 사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도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적이 있었습니다. 1995년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도 생산자만 무려 약 30만 명. 자살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수십 만 명이 잇달아 같은 선택을 한다면 그 이유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살의 씨앗이라고 밖에 볼 수 없어요. BT목화가 도입된 후부터 자살이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핵물리학자이자 유명한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는 인도 농민의 자살 배경으로 유전자변형 목화를 지목했습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몬산토는 목화 생산자들의 골칫거리는 해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변형 종자인 BT목화를 개발했습니다. BT목화를 심으면 해충의 공격에도 끄떡없다는 회사의 설명에 너도나도 종자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인도 목화 경작지의 90%에 BT목화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BT목화가 인도에 들어온 1995년 이후, 목화 생산자들의 자살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유전자변형 종자는 일반 종자에 비해 가격이 비쌉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국가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싼 가격에 BT목화를 구입할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인 인도는 생산자들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합니다. 그래서 당시, 인도의 생산자들은 살충제가 필요 없어 생산비가 적게 들고, 수확량도 더 많을 것이라는 회사의 설명에 빚을 내어 BT 목화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더미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BT목화에 내성을 보이기 시작한 해충 때문에 또 다시 살충제를 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BT목화는 일반 목화에 비해 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해, 관개시설이 부족한 인도의 상황에 맞지 않았습니다. 줄어드는 수확량과 늘어나는 생산비를 감당하지 못하자 생산자들은 결국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전자변형 종자를 산다는 것은 농민들에게는 가난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토종 종자를 지키는 방법
유전자변형 종자에 점점 사라져 종자 주권,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놓기는 이릅니다. 유전자변형이나 교배가 이뤄지지 않은 토종 종자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자를 저축하세요
인도 생산자들의 잇따른 자살을 목격한 반다나 시바 박사는 나브다냐(Navdanya)라는 단체를 만들어 토종종자를 지키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브다냐는 힌디어로 ‘9개의 씨앗’으로, 지구는 몇몇 종이 아닌 다양한 종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브다냐는 현재 인도 17개 주에 111개의 종자 은행을 만들어,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보호하고 있으며, 생산자들이 종자를 스스로 보관할 수 있도록 씨앗을 나눠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5만 이상의 생산자 가족들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종자를 보존하는 일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에게 유기농법을 전수하는 일을 통해 환경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토종 종자 지키기 운동은 인도뿐만 아니라 노르웨이나 호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규모가 작지만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토종 씨앗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환경 운동가 콜린 코우리(Colin Khoury)씨는 쌀, 밀, 옥수수, 콩, 팜유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종자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7,000 종이 넘게 재배되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전 세계 95%가 30가지 작물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포장 음식과 간단한 몇 가지 요리로 살아가는 우리의 식습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몇 가지 음식들만 먹기 때문에 다양한 조리법이 사라지고, 필요 없는 수많은 식재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생물 다양성을 위한 슬로우푸드재단(Slow Food Foundation for Biodiversity)입니다. 이들은 사라져가는 조리법을 지키고, 지역 음식을 만드는 셰프 연합을 만들며 종자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유전자변형 종자가 재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자 시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소리 없는 종자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변형 종자뿐만 아니라, 다른 종자도 돈을 주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추수를 통해 얻는 씨앗은 수확량이 적어서 생산자들은 일반적으로 매년 씨앗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 듀퐁, 신젠타는 전 세계 종자 시장의 53%를, 상위 10대 다국적 기업은 7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들 회사에 돈을 주고 종자를 사고 있는 실정입니다. 1997년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대표적인 국내 종자 회사들이 다국적 기업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몬산토에, 서울종묘는 신젠타에, 청원종묘는 사카타에 팔렸습니다.
그 결과, 다국적 종자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커져갔습니다. 1997년 전, 14%정도였던 시장 점유율이 현재는 67%에 달합니다. 종자 시장을 빼앗겼다는 것은 다시 말해 종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해외 기업에 지불한 종자 사용료는 2001년 5억 5,000만원에서 2010년 218억 8,000만원으로, 10년 사이에 40배가 뛰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급될 사용료만 8,0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국내 종자 시장이 해외 기업의 차지가 되고 식량 자급률도 낮아지면서, 토종 종자를 지키기 보다는 유전자 변형 종자 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17개 작물에 한하여 180여 개의 유전자변형 종자가 개발 중입니다. 논과 밭에 유전자변형 옥수수와 콩, 쌀이 재배될 날이 리 멀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작물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미래가 인도나 미국의 생산자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돈벌이의 수단이 된 종자. 종자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인류 공동의 자산이었던 씨앗이 소수 기업에 장악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종자는 곧 생존권이라는 사실입니다. 종자를 넘겨주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종자 주권을 되찾는 것, 꼭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비영리단체 보니따(BONITA)는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Bon Idea To Action)’라는 뜻으로, 세계시민교육, 캠페인, 개발협력 프로젝트,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모두에게 이로운 세계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