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건강하다’는 느낌이 떠오를 겁니다. 최근 화학 물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먹고, 입고, 바르는 제품에도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화장품 업계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허브, 과일, 꽃, 달팽이, 광물을 비롯한 각양각색의 재료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는 재료 중의 하나가 바로 마이카(Mica)라는 광물입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여러분께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의 성분표를 확인해 보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마이카는 반짝거리는 성질이 있어서 아이섀도우, 립스틱과 같은 색조 화장품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이카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 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마이카 광산의 아이들
“학교 끝나고 와서 일하는 거에요. 정말이에요.”
인도 북동쪽에는 자르칸트 주에 사는 12살 살림은 마이카 광산에서 일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이죠. 알고 보니 살림은 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매일 광산으로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의 비하르와 자르칸트 주는 전 세계 1/4의 마이카를 생산할 정도로 광산이 많습니다. 광산이 많으면 일자리도 많아서 주민들이 먹고 살기 충분할 텐데, 이 두 지역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합니다. 인도의 다른 지역보다 문맹률도 높고,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도 많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전 세계 화장품 산업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가지만, 인도에는 살림처럼 마이카 광산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2만명이나 됩니다.
광산에서 하루 종일 일해서 버는 돈은 하루 생활비 약 2200원(1.90달러)이라는 절대 빈곤선을 넘지도 못합니다. 10kg의 마이카를 캐면 겨우 1달러의 가치에 해당하는 80루피를 받기 때문입니다. 마이카의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이럴까요? 마이카는 종류에 따라 1kg에 450원(40센트)에서 230만원(2000달러)의 가격을 오갑니다. 하지만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1kg에 113원(8루피)을 받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광산에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스데브 라이 프라타프씨는 16살 아들 마단을 잃었습니다. 2016년 6월 23일, 자르칸드에 있는 광산이 무너졌는데 마단은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광산이 이렇게 위험한 곳인 줄 몰랐어요. 알았더라면 그런 곳에 보내지 않았을 거에요.”
프라타프씨는 뒤 늦은 후회를 했지만 아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은 마단 뿐만은 아닙니다. 6월에만 20명, 7월에는 4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실 이 역시 제대로 된 수치는 아닙니다. 불법 광산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신고가 되지 않을뿐더러 공식적인 통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 단체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을 뿐이죠. 확실한 것은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없이 광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언제나 사고 위험에 노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잃어도 억울한 죽음을 호소할 데도 없습니다. 대부분이 불법 광산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마이카의 70%가 불법 광산에서 생산되는데, 마단이 일했던 광산 역시 이 중 하나였습니다.
그 많은 마이카는 어디로 갔을까?
비하르와 자르칸트 주에서 생산되는 마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네덜란드 다국적기업연구센터(SOMO)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독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룩셈부르크로 수출 된다고 합니다. 수출된 마이카의 59%는 화장품, 잉크, 플라스틱과 같은 광택 안료를 사용하는 회사로 갑니다. 31%는 가루로 만들어져 수출 됐는데, 수입 회사는 주로 전자 기기나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마이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광물의 특성 때문입니다. 물이나 기름, 산에 반응하지 않으며, 가볍고 단단합니다. 고온이나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 고압 전류에도 잘 견디며, 단열 효과도 있습니다. 빛을 반사해 빛나게 하는 효과도 있고, 자외선을 차단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화장품뿐만 아니라 전자 업계의 사랑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랑 받는 화장품과 전자 제품에 인도산 마이카가 쓰이고 있지만,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걸까요? 바로 원산지 표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시민 단체 단워치(Danwatch)에서 자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 16곳을 대상으로 마이카를 어디에서 구입하고 있는지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들은 투명하게 공급망을 공개 하고 있을까요?
16개 회사 중 홈페이지에 아동 노동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써놓은 회사는 7곳이나 됐지만, 12개 회사가 마이카 원산지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곳은 인도산 마이카를 구매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2곳은 인도산 마이카를 구매하지만 동시에 아동 노동 근절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5년 판매 실적이 가장 높은 국내 15개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아동 노동에 관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10개 회사는 제품을 클릭 했을 때 전성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이카를 포함한 재료의 원산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광산대신 학교에 가는 아이들
“부모들도 마이카 광산이 죽음의 덫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산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죠. 더 많은 아이들이 희생 당하기 전에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사티아르티가 만든 인도의 시민단체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BBA)은 마이카 광산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의 직접적인 원인을 가난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아이들은 학교에 갈수 있으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은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일하는 아이들이 없는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는 시간에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바로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는 게 좋아요. 친구도 사귈 수 있고 놀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잖아요.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 단체가 저희 마을에 와서 좋아요. 아이들이 일하는 게 왜 안 좋은지 부모님도 이제는 아시 거든요.”
13살 푸자는 프로젝트 덕분에 마이카 광산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광산에 들어갈 때마다 돌이 떨어지거나 광산이 무너질 까봐 걱정했던 소녀는 이제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마을 만들기는 현재 500여개의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 100개의 마을이 성공적으로 아동 노동을 없앴습니다. 3,650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게 된 것입니다. 가난하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책임지는 기업들
인도 마이카 광산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인도 시민단체 만은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시민단체 다국적기업연구센터(SOMO)는 광산 문제를 조사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시민 단체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미녀와 야수’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서명운동을 펼쳐 마이카 아동 노동 근절에 찬성하는 11,400명 사인을 받아 릴리아너 플루먼 국제무역개발협력장관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서명을 받은 장관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 까요?
“인도 미이카 광산에서 벌어지는 아동 노동은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회사들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2016년 7월, 장관은 기업들에게 마이카 광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는 말을 하며, 아동 노동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에 인도산 마이카를 구입하고 있던 회사들은 자체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역시 시민들의 의견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회사는 페인트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아크조노벨,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전자회사 필립스, 뷰티 전문브랜드 왓슨에 이어 자동차 제조업체인 지엠과 비엠더블유 였습니다. 소비자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기업들도 이 문제를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눈과 입술을 볼 때면 저절로 눈이 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인도의 아이들이 광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 이상, 반짝이는 화장품에 담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가 의지를 가지면,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회사에 마이카의 원산지를 요구하고, 회사가 원산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철저하게 조사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회사는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인도산 마이카를 사용하지 않거나, 또 어떤 회사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지원해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입니다. 오늘부터 화장품 원료의 원산지를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비영리단체 보니따(BONITA)는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Bon Idea To Action)’라는 뜻으로, 세계시민교육, 캠페인, 개발협력 프로젝트,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모두에게 이로운 세계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