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한국의 혼을 찾아서①] 무형문화재 최기영 대목장

“후대에 전할 기술·기법하나라도 더 남겨야지”

인간문화재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혼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하며, 인간문화재와 첫 만남을 가지는 자리였기에 기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기영(68) 대목장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74호이자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작년까지 충남 부여군 백마강 일대에 1300년 전 사라진 백제를 재현하는 ‘백제문화단지’ 조성을 지휘했고, 서울 서대문 봉원사, 경기도 양평 용문사, 전남 순천 송광사, 창경궁, 남한산성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인간문화재는 한복을 입고 한과를 즐길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전수교육관에 들어서자마자 여지 없이 깨졌다. 최기영 대목장은 ‘삼부특수목재’라는 글자가 박힌 검은 작업복 점퍼를 입은 채 탁자에 코를 박고 한옥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현장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최기영 대목장은“지금의 무형문화재들이 살아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많은 기술을 전파하고 후대에 남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대목장은“지금의 무형문화재들이 살아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많은 기술을 전파하고 후대에 남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말에 “대통령이든 서민이든, 어린 아이든 백세 노인이든 분수를 알아야 혀. 분수를 알아야 공부도 저절로 되고 기능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 이 말이여. 목수는 목수로 끝내야 혀. 문화재니 교수니 해도 ‘나는 목수다’하고 생각허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말이지.”라며 웃었다.

‘나는 목수다’라는 목소리 속에는 대목장이기 이전에 목수라는 업에 대한 자부심과 작업에 대한 집요한 열정이 느껴졌다. 대목장(大木匠)은 나무를 소재로 집을 짓는 사람으로 나무를 다듬고 집을 설계하는 것부터 공사의 완성까지 책임지는 건축가다. 전통건축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은 신응수 대목장, 전흥수 대목장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당대가 지정한 대목장 세 명 중 한 명이다.

평생 목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때를 물었더니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게 어딨어. 먹고 살기 위해서, 배가 고파서 목수일을 배웠고. 하다 보니까 끼가 조금 있어서 남보다 좀 앞섰고. 분수를 지키다 보니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게 된 거지. 사람으로서 못 겪을 일 없이 다 겪었지만 목수일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최기영 대목장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곱 살 때 부모를 잃은 최기영 대목장은 소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돈을 벌기 위해 떠돌이 극단도 쫓아다니고 버스 조수 노릇도 했다. 그러다 열일곱 되던 해 청년 최기영은 무작정 당대의 도편수 김덕희, 김중희 선생을 찾아가 목수일을 배웠다.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이다. 남보다 배움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남이 한 시간 움직일 때 다섯 시간, 열 시간 더 공부하고 일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자지도 않았다. 그래야 굶지 않고, 똑똑한 사람들, 배운 사람들에게 속지 않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우고 일하다 보니 목수의 길에 들어선 지 40년 만에 국가가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가 됐다. 최기영 대목장은 “문화재가 되니 일을 할 때 보고 또 보고, 깎고 또 깎게 된다”며 “문화재 값을 해야 하니 더 정교해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껄껄 웃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다스려 천 년을 갈 수 있는 집을 짓는 이는 그 속과 겉이 나무를 닮아 있었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과 무형문화재에 대한 그의 고민은 나이를 따라 깊어가는 것 같았다. “대목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종목 중에서도 활성화된 종목이지만, 그렇지 못한 종목들도 많아.” 최기영 대목장은 한국 문화재 관리의 허점을 지적했다. 무형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기영 대목장은 “옛 기술을 보존하고 있고 척 보면 옛 기법을 알 수 있는 지금의 무형문화재들이 살아있을 때 하나라도 더 많은 기술을 전파하고 후대에 남겨야 한다”며 최근의 안타까운 경험을 전했다. “건축만 해도 중국의 송나라는 당시의 ‘하앙식’ 건축기법을 책으로 남겨 후대에 전해지게 했는데, 우리는 이런 기록이 부족해. 그래서 이번 백제문화단지 복원 때 중국 자료를 참고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 안타까운 일이지.” 하앙식 건축기법은 목재끼리만 얽어 처마의 하중을 떠받치는 기법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백제로, 그리고 일본으로 전파된 기법이다.

그래서인지 최기영 목장은 후학 양성에 열심이다. 지금도 경주 월정교 복원과 영주 부석사 공사, 밀양 다포집 사찰 건축에 참여하면서 제자들도 양성하고 있다. 자신의 대를 이을 1명의 전수조교와 20명 남짓한 제자들과 함께다. 목수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고, 의대를 졸업한 아들도 10년째 아버지의 일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협회’의 이사장을 맡아 “무형문화재들이 자신의 장기로 현대 사람들과 소통할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하고 명예를 준 것에 대한 보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도 품고 있다.

한옥이 보여주는 한국의 미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기영 대목장은 한옥에 쓰이는 재료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한옥에 쓰이는 한국 소나무, 흙, 돌, 기와, 창호지 모두 자연에서 왔지. 자르고 깎아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어. 기와도 숨을 쉬고, 잘린 소나무도 살아서 ‘송진’이라는 피가 계속 흐른단 말이여. 한옥에 있으면 살아 있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돼. 이건 대목장이 하는 말이니께 새겨들어.”

남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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