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한국의 혼을 찾아서②] “궁중음식은 ‘맛과 멋’이 있는 우리의 식문화”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무형문화재회관서 궁중음식 전시… ‘조선왕조의궤’ 속 잔치 장면 재현
궁중잔치 음식·식문화 알리고 의궤 가치도 알릴 수 있을 것

봄 햇살이 내려앉은 오후. 창덕궁 서편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골목 끝에 있는 (사)궁중음식연구원 안마당 장독대에는 된장·고추장이 익어가고 있었다. 연구원은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한복려씨가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었던 고(故) 한희순 상궁과 한 상궁에게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어머니 고(故) 황혜성 선생에 이은 3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다. 아담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한옥 건물인 궁중음식연구원 안채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고운 한복을 입고 기자를 맞았다.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맛’뿐 아니라‘멋’을 알리기 위해 궁중 잔치문화를 재현하는 전시를 연다. 트위터로 궁중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 이사장은“옛것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 역시 무형문화재의 몫”이라고 했다.
한복려 이사장은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맛’뿐 아니라‘멋’을 알리기 위해 궁중 잔치문화를 재현하는 전시를 연다. 트위터로 궁중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한 이사장은“옛것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 역시 무형문화재의 몫”이라고 했다.

한 이사장은 궁중음식의 가치를 단순히 ‘맛있는 먹거리’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식문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한다’는 말 대신 ‘음식한다’고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요리’가 일본식 단어이기도 하지만, 음식을 단순히 ‘조리법’과 같은 기능적 측면으로만 이해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면서 몇 가지 궁중음식이 유행하고 한식세계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레시피(조리법)만 익힌다고 음식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거든요. 궁중음식에는 충효 사상을 바탕으로 음식을 궁에 ‘올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궁중음식을 ‘내리는’, ‘올림과 내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음식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봐야 ‘문화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궁중음식을 ‘맛’뿐 아니라 ‘멋’으로 이해해야 세계인들에게도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궁중음식의 ‘멋’을 알리고 싶은 한복려 이사장은 오는 29~30일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회관에서 궁중음식 ‘전시’를 연다. 단순히 음식을 해서 맛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궁중잔치문화를 재현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궤’에 기록된 정해년(1887년)의 ‘조대비 만경전 팔순잔치’를 당시 모습 그대로 보여줄 예정이다. 한 이사장은 “궁중잔치를 재현하면 당시 음식과 식문화를 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조선왕조의궤의 가치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요무형문화재가 기획하고 재현하는 전시라 ‘뻔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영화감독, 음악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뒤죽박죽 당’ 사람들과 교류했다. 뒤죽박죽 당은 한 이사장이 추석 즈음 ‘박죽’을 쑤었다는 소식을 트위터(@hanbokryo)에 전하자 “먹고 싶다”고 소식을 전해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음식 공부도 하는 모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당수를 맡은 한 이사장은 “음악가는 음악으로, 사진가는 사진으로 담백한 맛, 고소한 맛 등을 표현해보라”는 숙제를 내면서 이번 전시의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켜 나갔다. 인간문화재도 최신 소통방식인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사실에 놀란 기자에게 한 이사장은 “옛것들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가치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무형문화재의 몫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엌을 들락거리면서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궁중음식을 공부했고, 전국을 돌면서 향토음식을 발굴하기도 했던 한복려 이사장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7년. 그러나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 일평생 궁중음식만 하며 순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신랑이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사망했고 두 아들 중 작은아들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궁중음식을 한창 연마하던 때에는 “어머니가 무형문화재라고 해서 그 딸이 꼭 뒤를 이을 전수자가 될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딸이 꼭 전수자가 될 필요도 없지만 딸이라고 해서 그 능력과 노력을 폄훼당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10년 이상을 일본 등 외국을 돌아다니며 음식 공부를 했다. 한복려 이사장은 그 시간이 있었기에 큰 시야를 가지고 무형문화재로서 우리 음식의 소중함을 더 잘 설명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때 경험 덕분에 음식에 대한 안목을 키웠습니다. 서양 코스음식의 수프 대신 먹는 우리의 타락죽 같은 경우 서양처럼 크림을 넣지 않고 쌀만으로도 달달한 맛을 낼 수가 있고, 메인음식의 스테이크 대신 먹는 너비아니는 그 양념이 발효식이라 더 건강에 좋습니다.”

몇 세기 전을 오늘에 되살리는 중요무형문화재로서 한복려 이사장은 무형문화재 제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는 물건을 만드는 몇몇 무형문화재는 생계가 곤란한데 그 가치를 살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총(말꼬리)을 다루는 무형문화재가 있는데 갓이나 망건을 쓰지 않으니 판로가 없고, 전통방식으로 밥상을 만드는 소반장도 생계가 막연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전통방식으로 떡을 만들고 음식을 내려면 말총으로 만든 체와 전통 소반을 써야 하지요. 갓을 패션쇼에 쓰고, 말총체를 디자인소품으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현대의 상황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문화재들이 연계해 전통을 재현하고 서로의 가치를 살려줄 수 있는 큰 마당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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