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가치연구원 ‘2026 가치와 성장 포럼’ 개최
SPC 모델·가치 기반 성장 전략 제시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사회문제 해결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소득 격차와 양극화 등 사회적 비용이 경제 성장의 제약 요인이 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가치를 경제 시스템에 결합한 ‘가치 기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2026 가치와 성장 포럼’을 개최했다. ‘저성장 돌파구, 솔루션의 변화’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사회문제 해결이 어떻게 실질적인 경제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정책 전문가, 기업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는 개회사에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문제를 만들 때의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며 “이를 성장에 투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성장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고, 그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가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나중에 해결할 비용으로만 생각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 성장 멈춘 한국 경제, 사회적 가치 ‘성장 해법’으로
포럼에서는 먼저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 제시됐다.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1인당 GDP가 연평균 6%씩 성장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잠재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했다”며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가 이어지면 20~30년 뒤 잠재성장률이 0% 또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질적 성장의 둔화가 양적 성장까지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2024년 기준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가운데 33위로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같은 해 자산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니계수가 0.01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1인당 GDP가 약 4.5%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원장은 고성장 과정에서 외면돼 온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경제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극화는 지역 불균형과 인구 소멸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정부의 재정 부담도 키운다”며 “재정 팽창과 같은 단기 처방은 기초 체력이 떨어진 사람이 에너지 드링크만 마시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이해관계 조정과 사회적 합의, 중장기 효과를 고려한 지속 가능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제시된 개념이 경제 구조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사회적 번영’이다.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번영에는 공동체의 자유로운 소통과 약자 포용, 극단적 주장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문화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번영은 결국 사회적 신뢰를 강화하고, 신뢰는 거래 비용을 낮춘다”며 “포용적 사회는 인적 자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결국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인다”고 내다봤다.
◇ 사회성과에 보상…SPC 모델의 실험과 가능성
가치 기반 성장을 실제 경제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회성과인센티브(SPC·Social Progress Credit) 모델이 언급됐다.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실장은 SPC에 대해 ‘사회문제 해결 활동에서 발생한 성과를 측정해 경제적 가치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상 방식은 현금뿐 아니라 세액공제, 라이선스, 증권, 채권, 금리 인하 등 시장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정 실장은 “SPC는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사회문제를 더 해결할수록 성과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 행동의 동기를 바꾼다”며 “성과에 대한 보상이 축적되면 다음 활동의 자원이 돼 기업이 더 큰 사회적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과가 실제로 만들어졌을 때만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재정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짚었다.
SK그룹은 사회적가치연구원을 통해 국내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SPC 실험을 진행해 그 유효성을 확인했다. 지난 10년 동안 468개 기업이 참여해 총 5364억 원 규모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으며, 이에 비례해 약 769억 원의 현금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현금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사회적 성과를 약 3배 더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실장은 “SPC 참여는 금융기관에 재무적 안정성과 장기적 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긍정적 신호로 작용해 외부 자본 조달에도 도움이 된다”며 “참여 기업에게 사회적 가치는 비용이 아니라 성장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기구에서도 성과 기반 보상 모델을 활용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니세프가 추진하는 ‘기가 프로젝트’가 있다. 이 사업은 전 세계 학교에 인터넷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통신 사업자가 오지에 인프라를 구축하면 정부와 국제기구가 일정 기간 연결 상태를 유지한 성과에 따라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다. 위성 데이터를 통해 연결 상태와 속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며 사업자는 현금 보상뿐 아니라 통신 라이선스나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는다.
◇ 기업 현장에서 확인된 ‘가치 기반 성장 모델’
가치 기반 성장 모델이 실제 시장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은 기업 현장에서 확인됐다. 순환경제 벤처기업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재활용 참여 시민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AI 기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의 사례를 공유했다. 그는 환경 문제 역시 적절한 사업 모델을 설계하면 시장 안에서 움직인다고 이야기했다. 김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하려면 비즈니스 모델과 임팩트가 처음부터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 기업 우주(WOOZOO)의 김정현 대표는 사업 모델을 철저히 시장과 투자 논리에 기반해 설계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과 대화할 때는 결국 사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이라는 시장의 언어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가 마련되면 사회문제 해결과 기업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널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때 제도와 정책이 이를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과정 역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함께 창출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다로 풀어보는 성장 전략: 정책가와 기업가의 솔루션 찾기’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 성장의 관계, 정부와 기업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