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타카기 리사 (Takagi Lisa) 오브고 베이커 CEO
“굳이 ‘비건’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요. 목표는 그저 맛있고 즐거운 경험을 주는 것이죠.”
일본 식품 서비스 업계 최초로 비콥(B Corp)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 ‘오브고 베이커(OVGO Baker)’. 지난달 26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2025 사회적기업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한 타카기 리사 대표는 <더나은미래>와의 인터뷰에서 비건을 강요하지 않는 독특한 접근법을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동물을 위해 헌신하는 비건 철학은 존경스럽지만 타인에게 강요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대신 똑같이 맛있는데 비건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오브고 베이커가 추구하는 것은 비건과 논비건을 가르지 않고 같은 음식을 나누며 얻는 즐거움이다.

오브고 베이커의 슬로건은 ‘Doing Good Tastes so Good(착한 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 초콜릿칩 쿠키, 머핀 등 다양한 비건 디저트를 선보이며 알레르기나 식이 제한이 있는 사람도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대표 제품인 초콜릿칩 쿠키는 일반 제품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75% 줄였다.
그러나 ‘비건’이라는 단어를 포장지에 크게 내세우지는 않는다. 실제로 고객의 70~80%는 비건이 아니다. 리사 대표는 “맛과 즐거움이 먼저이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비건을 접하게 된다”며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경험이야말로 즐거움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 일본 식품업계 첫 ‘비콥’ 인증…가치소비 바람 타고 성장
리사 대표는 오브고 베이커의 철학이 가치소비에 관심을 두는 일본 Z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제품을 고르는지가 자기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Z세대가 주요 타깃”이라며 “이들은 맛과 재미를 즐기는 동시에 환경 가치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친구를 데려오고, 또 추천하면서 팬층을 쌓아왔다. 오브고 베이커는 현재 네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4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해 3만 9000명이 넘는다.
이 같은 팬덤은 대기업과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일본항공(JAL) 라운지에서 쿠키를 제공하며 고객에게 ‘맛과 함께 환경적 가치’를 경험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H&M 등 110개 기업과 도매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산리오 등 글로벌 IP와의 협업도 진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매출은 약 150만달러(한화 약 20억원)에 달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지역 농가와의 협력도 중시한다. 수송 거리를 줄이는 것이 탄소 배출 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기농 밀가루 재배는 일반 밀보다 수익성이 낮고 더 많은 땅이 필요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그 가치를 존중해 제값을 치른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농가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이나 레시피북을 통해 소비자에게도 소개한다.
오브고 베이커는 2022년 일본에서 16번째, 식품 서비스 업계 최초로 비콥 인증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서 비콥 인증 기업은 50개도 채 되지 않았다. 비콥 인증은 기업 활동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는 제도로, 높은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기준, 경영 투명성을 요구한다. 지배구조·직원·환경·지역사회·고객 등 다섯 개 영역에서 평가를 받는다. 평가 기준이 까다로워 인력과 자원이 한정된 스타트업에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리사 대표는 “우리는 단순히 ‘좋은 회사’라고 주장하는 데 그치고 싶지 않았다”며 “글로벌 기준으로 외부 검증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100개가 넘는 평가 항목에 답하면서 데이터 축적 시스템을 마련했고, 에너지 사용량과 배출가스 관리가 회사의 운영 체계 안에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에서도 식품 기업의 비콥 인증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수 있다”
오브고 베이커는 일자리 창출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는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채용 과정에서는 이력서를 보지 않는다. 대신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 “가치와 미션에 공감하는지”를 본다. 그 결과 경력 유무나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이들이 합류했다. 현재 정직원은 6명, 시간제 직원은 약 60명이며, 상당수가 팬이나 고객 출신이다.
오브고 베이커는 독자적인 인사 시스템 ‘Doing Good Program(좋은 일 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간·월간 목표를 세우고 실행 여부를 기록하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서로 응원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은 ‘즐겁게 하기, 시도하기, 협력하기, 나누기, 배려하기’라는 다섯 가지 가치를 늘 공유한다. 매년 리트릿을 열어 미션을 되새기고, 평가제도에도 ‘회사의 목적 이해 여부’를 반영한다. 동료에게 감사를 전하는 작은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도 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모여 일터를 더 즐겁게 만든다는 믿음에서다.
리사 대표는 “직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이유로 일하기 때문에 근속 기간과 만족도가 높다”며 “다른 꿈을 향해 회사를 떠날 때는 퇴사 대신 ‘졸업’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이어 “물론 매출과 이익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수 있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곧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고 밝혔다.
앞으로 오브고 베이커는 해외 시장으로의 확장과 함께 음료·의류 등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도 발을 넓힐 계획이다. 그러나 단순한 규모 확대가 목적은 아니다.
리사 대표는 “젊은 브랜드로서 ‘수익을 내면서도 직원과 환경을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구자가 되고 싶다”며 “오래된 기업보다 시행착오도 많지만,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야 생태계가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큰 변화를 의도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사회적기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오브고 베이커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세상은 무엇일까. 지난달 열린 ‘2025 사회적기업 국제포럼’ 무대에서 타카기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만드는 것,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오브고 베이커의 목표입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