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번째 맞는 ‘어린이날’, 아직 웃지 못하는 아이들
한국 어린이날의 시작은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동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은 민족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독립정신을 심기 위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이듬해 열린 첫 기념행사에서 배포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는 당부가 담겼다.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호소였다.
이후 어린이날은 광복 이후 5월 5일로 변경됐고, 1975년부터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다. 어린이날을 기념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어린이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을까. 어린이날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오늘날 아동 인권의 현실을 데이터로 들여다봤다.

◇ 1991년
한국은 1991년 11월 20일, 유엔 아동권리협약(UNCRC)을 비준했다. 협약은 모든 아동이 성별, 재산,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며, 생존과 발달을 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사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동복지 관련 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61년의 ‘아동복리법’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방지와 보호 조항은 2000년에 이르러서야 법률에 포함됐다. 이후 2014년에는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됐고, 2021년 민법 개정을 통해 ‘부모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한국은 세계 62번째 체벌 금지 국가가 됐다.
◇ 2만5739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인정된 사례는 총 2만5739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재학대 사례는 15.7%였고, 유형별로는 정서학대가 1만1094건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다. 신체·정서 중복 학대는 24.6%였다.
그러나 실제로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법적 조치가 이뤄진 경우는 전체의 9.7%(2495건)에 그쳤다. 보호는 커녕 반복되는 학대에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아동학대는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건수는 34건, 숨진 아동은 44명이었다. 이 중 23명은 친부모에 의해 살해당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한 범죄로 숨진 아동은 66명, 살아남은 아동은 81명에 이른다. 전체 피해 아동의 73%는 9세 이하였고, 사건의 76%는 가정 안에서 벌어졌다.
◇ 22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주관적 행복’ 항목에서 79.5점을 기록해 조사 대상 22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은 99.9점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2021년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 만 10세 아동의 행복도는 35개국 중 31위에 머물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발표한 ‘2024 아동행복지수’에서도 아동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45.3점에 불과했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수는 더 낮아졌다.
정신건강 지표도 심각하다. 2024년 기준 중·고등학생의 자살 시도율은 2.8%에 달했으며, 2023년 초·중·고교생 자살 사망자는 21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202명)보다 12명 더 많은 수치다. 우울증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7~18세)도 급증하고 있다. 2023년 진료 인원은 5만3070명으로, 2018년(3만190명) 대비 75.8% 증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