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만톤은 허수”…대기업 쿡스토브 온실가스 감축 실적, 평균 18배 과장

플랜1.5, “최대 68.9배까지 부풀려져”
韓, 유럽 실패 답습 안 돼…전면 재검토해야

국내 대기업들이 ESG 경영 일환으로 추진해온 쿡스토브 온실가스 감축 사업이 실제보다 평균 18.3배 과대 계상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뢰성 검증도 없이 이 실적을 국가 감축 목표(NDC)에 반영하고 있다”며 국제적 기준에 어긋나는 ‘그린워싱’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제기후단체 플랜1.5는 미국 UC버클리 연구팀, 유럽 싱크탱크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와 함께 2025년까지 국내 기업들이 투자한 쿡스토브 사업 21건(310개 프로젝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감축실적 974만톤 중 94%인 920만톤 이상이 ‘실효성 없는 배출권’이라고 21일 밝혔다.

◇ 쿡스토브 사업, 진짜 온실가스 감축 사업 맞나

쿡스토브 사업은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재래식 조리기구를 고효율 장비로 교체해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케냐에 2만 대를 보급하며 대표적 ESG 성과로 소개해왔고, SK·한전·남동발전, 삼표시멘트 등 국내 대기업들도 환경단체인 기후변화센터와 함께 미얀마에서 쿡스토브 보급 사업을 진행했다. 환경부 상쇄등록부 자료에 따르면, 해외 감축사업 중 95%인 516건이 쿡스토브 사업이며, 등록된 감축량의 80%에 달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저효율 조리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하는 쿡스토브 사업을 해외 온실가스 감축 활동으로 적극 활용해왔다. /삼성전자 뉴스룸

그러나 쿡스토브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됐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국제 환경과학 저널인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리티’ 2024년 1월호에 실린 논문은 해당 사업의 평균 감축 효과가 실제보다 9.2배 부풀려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후정책 시민단체 플랜1.5는 논문의 저자인 UC버클리 바바라 하야 교수팀, 유럽 탄소시장 감시단체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와 공동으로 한국 기업이 투자한 쿡스토브 사업에 대해 정밀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분석은 기업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공식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분석 대상은 한국 기업이 참여한 21개 해외 사업 내 310개 프로젝트 활동이다. 조사 결과, 감축 실적은 실제보다 최소 5.6배, 최대 68.9배까지 과다 계상됐으며, 평균적으로 18.3배 부풀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케냐 사업은 9.6배, SK그룹과 한전이 참여한 미얀마 사업은 14.4배, 동서발전의 가나 사업은 16.1배 감축효과가 부풀려졌다.

한국 기업들이 쿡스토브 사업을 통해 발행한 전체 감축 실적은 974만톤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감축량은 약 53만톤에 불과, 920만톤 이상이 실질적 감축 효과가 없는 ‘불량 배출권’으로 분류됐다.

국내에 유입된 쿡스토브 기반 감축실적은 약 9800만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9300만톤 이상이 허수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를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의 평균 배출권 가격(1만9131원/톤)으로 환산하면, 약 1780억 원 규모의 ‘가짜 실적’이 시장에 유통된 셈이다.

쿡스토브 실적이 과대 계상되는 이유에 대해 플랜1.5는 ▲ 인위적인 벌채로 인한 바이오매스 사용 비중을 부풀려서 보고하는 점 ▲ 새로운 고효율 기기를 보급했음에도 여전히 기존 저효율 기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점 ▲ 고효율 및 새로운 기기 사용률 과다 추정 ▲ 1인당 음식량 부풀림 등을 꼽았다.

실제로 올해 3월, 탄소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출범한 ‘자발적 탄소시장 청렴위원회(ICVCM)’는 쿡스토브의 두 가지 주요 감축 방법론에 대해 승인 불가 판정을 내렸다. 유럽연합(EU)도 유사 문제를 이유로 2021년부터 EU 배출권거래제(EU ETS)에서 해외 감축 실적을 전면 배제하고 있다.

◇ “환경부, 검증되지 않은 실적을 NDC 달성 수단으로 활용”

플랜1.5는 환경부가 검증되지 않은 쿡스토브 실적을 2030년 국가 감축목표(NDC)에 포함하려는 계획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국제감축 분야에서 총 3750만톤 감축 목표를 세웠으며, 이 중 1340만톤이 쿡스토브 실적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환경부 제공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과대표장된 쿡스토브 사업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환경부

더 큰 우려는 앞으로다. 환경부는 2026~2030년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간부터 해외 배출권 사용 한도를 현행 5%에서 10%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플랜1.5는 “제도 허점을 악용한 기업의 ‘그린워싱’을 제도적으로 방조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벤야 펙스 카본마켓워치 정책전문가는 “EU는 과거 해외 감축 실적으로 30억 유로 규모의 과도한 이익이 발생했던 실패를 겪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해외 감축을 차단했다”며 “한국이 EU가 저질렀던 실수를 답습해 불량 배출권을 계속 수입한다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한수연 플랜1.5 정책활동가는 “지금이라도 환경부는 기존 실적의 신뢰성 평가와 재인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며 “확실한 감축 효과가 담보되지 않은 사업은 NDC에서도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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