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 보고서 “국내 주요 산업, 물 스트레스 ‘고위험’ 수준”
정부·기업 모두 장기 전략 시급
기후위기로 물 부족과 홍수, 수질 오염 등 ‘물 리스크(Water Risk)’가 현실화하면서 기업 운영과 재무 안정성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단기 대응을 넘어 장기 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 물경제위원회(GCEW)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물 수요가 공급을 40% 초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50년에는 이로 인해 세계 GDP가 8%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상청 시나리오에 따르면 21세기 후반 국내 강수량은 최대 17%까지 증가하고, 가뭄과 폭우가 더욱 극단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하 KoSIF)이 21일 공개한 ‘2024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응답 결과’에 따르면, 국내 103개 기업 중 65%가 “물 리스크가 사업 전략과 재무 계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들이 밝힌 단기 재무 피해는 총 21조9592억 원에 달한다.
특히 전력, 수도 등 유틸리티 산업은 물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크다. 냉각수 부족이나 상수도 처리 차질은 전력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냉각 등에서 막대한 물을 사용하는 IT 산업도 리스크에 취약하다. AI 산업 확대로 물 소비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국내 주요 산업단지가 위치한 서울·부산·광주·포항 등 대부분이 ‘높음(40~80%)’ 또는 ‘극심한 위험(80% 이상)’ 수준의 물 스트레스 지역에 해당한다. 산업별 물 스트레스 노출도는 통신(87.5%), 산업재(70.3%), IT(69.8%) 순으로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대응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 리스크에 노출된 기업 운영시설 수는 직전년도 대비 32% 증가한 241곳이었지만, 대응 비용은 오히려 11% 줄어든 2조8666억 원에 그쳤다. 남나현 KoSIF 선임연구원은 “이제는 단기 비용이 아닌,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DP가 2024년 발간한 보고서 ‘Navigating Troubled Waters’에 따르면, 물 정보 공개를 요청한 글로벌 투자자 수는 1년 새 122% 늘어난 1029명에 달했다. 물 리스크가 환경 문제가 아닌 ‘투자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대응에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한 물보다 더 많은 물을 정화해 자연에 돌려보내는 ‘워터 포지티브(Water Positive)’ 전략을 실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대기업이 물 사용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남 연구원은 “정부도 기업 차원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마련과 인프라 개선, 물 사용 정보 공개 의무화 등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CDP는 환경 정보 공개를 촉진하는 글로벌 비영리 플랫폼으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CDP의 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다. CDP의 공식 보고서는 오는 4월 공개될 예정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