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ESG 7대 뉴스
2024년은 ‘선거의 해’로 불리며 유럽의회 선거, 미국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세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격동 속 한국도 ESG 공시, 밸류업 지수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한 해 동안 주목받은 주요 ESG 이슈를 정리했다.
1. ESG 공시기준 초안은 공개됐지만…도입 시기는 ‘안갯속’
지난 4월 30일,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이하 KSSB)가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을 공개했다.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공시’ 초안에 따르면. 자산 2조 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는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를 비롯한 ESG 관련 위험과 기회를 공시해야 한다. 주요 공시 항목은 ▲지배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 및 목표 등으로 구성됐다.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은 발표하지 않았다. KSSB는 12월 23일 의결하려던 ESG 공시기준서 권고안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한국회계기준원은 더나은미래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금융당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며 “로드맵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권고안을 의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아 연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금융당국의 불확실한 일정이 기업들의 ESG 공시 준비에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 코리아 밸류업 지수 도입…첫발 내디뎠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9월 국내 주식시장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코리아 밸류업 지수(Korea Value-up Index)’를 도입했다.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이 지수는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하며, 기업의 주주 이익 보장 계획과 비재무적 요인 등이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9월에 공개된 지수에는 ▲정보기술(24개) ▲산업재(20개) ▲헬스케어(12개) 기업이 포함됐다.
밸류업 지수와 ESG의 방향성이 같은 만큼 자본시장의 주요 정책으로 주목받았지만, 핵심 공약이었던 세제 혜택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한국 증시가 올해도 글로벌 시장 대비 저조했으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 11월 2000억 원, 12월 3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SK텔레콤, KT, 현대모비스 등 5개 종목이 신규 편입됐으며, 내년 6월 지수 구성 종목을 다시 조정할 예정이다.
3. 기후·플라스틱 협상, 갈등 속 끝난 2024 글로벌 회의
11월 24일(현지 시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이하 COP29)은 연간 1조3000억 달러의 기후 재원 조성을 합의했으나, 선진국의 분담금 부족과 구체적 계획 부재로 논란이 일었다. 인도 협상단은 이를 두고 “기후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지원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한국은 회의장에서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선정한 ‘오늘의 화석상’ 1위로 선정됐다. 지난 6월 OECD 수출신용협약 개정 논의에서 화석연료 금융 지원 금지에 반대한 것이 주요 이유다.
부산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는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종료됐다. 플라스틱 생산 규제와 유해 화학물질 제한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싼 국가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조항을 협약 문서에 포함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한국 정부는 폐회식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에 기여하겠다”고 밝혔으나, 협상 과정에서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한국은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임에도 감축 의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며 국제사회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4. 글로벌 재생에너지는 도약, 한국은 부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이 5500GW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2년 대비 2.7배 많은 수치로, 2028년에는 전 세계 발전량의 42% 이상이 재생에너지로 충당될 것으로 예측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24년 세계 에너지 투자액은 사상 처음으로 3조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보이며, 이 중 2조 달러는 청정에너지 기술과 인프라에 투입될 전망이다. 중국은 2022년에만 5660억 달러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했고, 향후 6년간 전력망 확충에만 8000억 달러(약 1107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자국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체 발전량의 50%를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3년 기준 9.64%로, OECD 평균(33.49%)과 세계 평균(30.25%)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목표치인 21.6% 또한 영국(85%), 독일(75%), 미국(59%), 일본(38%) 등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OECD 37개국 중 최저다.
이 같은 저조한 성과는 기업들의 RE100 이행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RE100 기업 164곳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9%에 불과해, 글로벌 기준에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5. EU, 그린딜 가속화…새 집행부는 ‘규제 간소화’ 카드 만지작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그린딜 정책을 단계적으로 실행 중이다. 지난해 발효된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은 올해부터 본격 적용되었으며, 유럽 내 대기업과 상장 중소기업이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부 기업은 내년부터 2024년 재무연도부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 기업도 2028년부터 CSRD 공시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매출액의 최대 5% 벌금과 민사 책임, 유럽 내 공공조달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 중 EU에 자회사를 둔 기업은 이러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국내 주요 기업 중 약 30%는 EU에 자회사를 두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7월에는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이 발효되어, EU 내 영업 기업들에게 인권과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조사하고 시정할 책임을 부과했다. 위반 시 순 매출액의 5%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사도 요구를 충족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2027년부터는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대기업들도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2월 1일 임기를 시작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ESG 규제의 간소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CSRD와 CSDDD 등 기존 규제들이 완화될 가능성도 거론되며, 차기 집행위에서 재조정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6. 트럼프 재선, ESG 정책 변화 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미국의 ESG 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 전기차 보조금 철회, 화석연료 생산 확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만, 공화당이 집권한 일부 주에서 IRA 세제 혜택을 받아온 점을 감안하면, IRA의 완전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의 행정부 인사는 그의 반(反)ESG 기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화석연료 기업 리버티 에너지의 CEO 크리스 라이트를 에너지부 장관으로, 환경 규제 완화를 지지해온 리 젤딘을 환경보호청(EPA) 수장으로 지명했다. 또한, ESG에 대한 비판을 이어온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대통령 자문위원회 정보효율부(DOGE) 책임자로 내정했다. 머스크는 ESG를 “사기”라며 비판한 바 있으며, 금융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진보 성향이 강한 주에서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에 반발하며 ESG 강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주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유지했고, 캘리포니아는 저탄소 연료 기준을 강화하고 100억 달러 규모의 재생에너지 채권을 발행했다. 또한,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6개 주는 내년부터 신차의 35%를 무공해 차량으로만 판매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7. K-택소노미 녹색여신 관리지침 도입
지난 12월 12일, 금융위원회·환경부·금융감독원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이하 K-택소노미)를 기반으로 한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 지침은 금융기관이 대출 시 대출기업의 활동이 K-택소노미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녹색금융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택소노미의 6대 환경 목표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자원의 지속 가능성 ▲순환경제 전환 ▲오염 방지 ▲생물다양성 보전이다. 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하고 다른 목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녹색여신 관리지침은 기존 대기업 중심의 녹색금융 지원 체계를 넘어 중견·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했다. 환경 목표를 충족하는 친환경 활동 기업은 금리 인하와 같은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녹색경제 전환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보다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K-택소노미 기반으로 발행된 녹색채권은 5조 1662억 원에 달했다. 이 자금은 무공해 차량 및 충전소 구축에 약 2조 3000억 원, 폐배터리 재활용 등 순환경제 관련 사업에 3188억 원이 투입되었다. 정부는 이로 인해 연간 약 55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