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SPC) 프로젝트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이하 SSIR) 매거진 2024년 가을호에 소개됐다. 한국의 사회혁신 사례가 SSIR 지면판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SIR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이 발간하는 글로벌 사회혁신 학술지다. 비영리, 임팩트 투자, 사회적 기업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연구와 현장의 경험을 다룬다. 창간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사회혁신 지식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시민, 기업 등 다양한 섹터의 이해관계자들이 상호 협력해 창출하는 임팩트)’, ‘빅벳 필란트로피(Big Bet Philanthropy·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돈을 내놓는 자선활동)’ 등의 개념이 최초로 소개됐다.
한국에서는 2018년 11월부터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혁신단 산하 SSIR Korea 센터가 한국어판을 제작하고 있다. SSIR 온라인 아티클에 소개된 한국의 주요 사회혁신 사례로는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의 ‘굿잡5060 프로젝트’, 조직 성장에 맞춰 이사회 구조를 바꾼 사단법인 점프의 ‘거버넌스 혁신’ 등이 있다. 다만, 지면에 소개된 사례로는 이번 SK 사회성과인센티브 프로젝트가 최초다. SSIR 지면판은 1년에 4번 발간되며, 케이스 스터디는 각 호당 1편만 실린다.
서현선 SSIR 코리아 편집장은 “미국에서는 SSIR을 활용해 교육하거나 사회혁신 실험을 설계할 정도로 소셜섹터에서 폭넓은 신뢰를 받고 있는 학술지”라며 “한국의 역동적인 사회혁신 생태계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SSIR에 소개된 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는 사회혁신 사례를 심층 탐구하는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섹션에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한국의 실험(Korea’s experiment with Pay-for-Success)’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해당 아티클을 저술한 신현상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미권에서는 이미 사회혁신 생태계가 발달해 ‘성과기반 보상’이 낯선 개념이나 제도가 아니다”며 “다만 사회성과인센티브의 경우 세계 최초로 민간 기업이 주도한 사례라 새로운 시사점을 던진다”고 말했다.
◇ 합리적 보상은 더 큰 ‘사회적 가치’로 돌아올 것
사회성과인센티브는 사회적 기업이 해결한 사회문제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이에 비례해 SK가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프로젝트다. 2013년 다보스포럼(WEF)에서 최태원 SK 회장이 제안해 2015년부터 실행됐다. 지금까지 SK는 448개 사회적 기업에 711억원을 지원했으며, 기업은 5000억원에 달하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낸 것으로 분석됐다.
SSIR 아티클에서는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실험(experiment)’으로 조명했다. SK의 최태원 회장 역시 이를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데이터를 쌓고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중요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최초로 공공이 아닌 민간기업이 사회성과 보상 프로그램을 주도한 실험답게 초기에는 진통도 있었다. 아티클에서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운영하는 사회적가치연구원(CSES) 사무국은 사회적 기업에 측정의 필요성과 측정 방법의 타당성을 1년 반 동안 설득했다고 회고한다.
SK는 사회성과를 ‘시장의 공통언어’인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이를 근거로 의사결정과 투자를 한다면 자원이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낸다. 합리적인 보상은 사회적 기업이 보다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동기가 되고, 이는 더 많은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SK의 시도 이후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부터 사회적 가치 자가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공공에서도 사회성과 측정에 대한 시도가 늘고 있다.
실제로 사회성과인센티브에 참여한 기업의 87%가 “더 많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아티클에서는 사회성과인센티브를 기술 개발에 사용한 재활용 서비스 기업 ‘수퍼빈’을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조명했다. 수퍼빈은 70만 달러(한화 약 9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아 AI 기술에 투자했다. 기술 개발에 힘입어 2022년까지 3000만 달러(한화 약 400억원)의 추가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다.
임팩트 투자사 또한 사회적 성과를 측정하는 것을 반긴다. 투자 심사 시 고려할 정보가 생겨, 투자사와 기업 사이 정보 비대칭성이 줄기 때문이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사회성과인센티브에 참여한 기업은 사회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계량화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된다면 투자 의사 결정에 있어 투명성과 책임성, 효율성이 크게 높아진다”고 말했다.
◇ SK의 실험이 남긴 교훈과 과제
아티클에서는 사회성과 측정 방법에 대한 과제도 짚었다. ‘장애인 고용 수’와 같이 정량적으로 바로 드러나는 성과도 있지만,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처럼 계산하기 어려운 성과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사회적 기업이 보상받기 쉬운 사업에만 집중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CSES) 책임연구원은 “모든 종류의 성과가 측정 공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며 “보다 다양한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기 위해 연구원에서도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성과인센티브의 또 다른 도전은 ‘초기 사회적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잠재력이 높아도 아직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아티클에서 초기 기업의 경우, 약속된 성과를 달성하면 보상을 주는 인센티브 구조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기관과 연계하는 것도 해결책이다.
성과를 측정하면서 쌓인 정보는 사회적 기업 연구의 기반이 된다. 김상준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아티클에서 “사회성과인센티브 이후 축적된 현장 데이터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찰과 검증, 이론화 등의 실증 연구가 활발해졌다”며 “학계와 사회혁신 현장 간의 활발한 교류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회성과인센티브 데이터를 활용한 논문만 66편에 달한다.
사회성과인센티브의 실험은 또 어떤 영역에서 도움이 될까. 신현상 교수는 “임팩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겐 사회성과인센티브는 더욱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며 “이번에 SSIR에 소개된 아티클은 사회성과인센티브가 발전한 배경부터 결실, 과제까지 설명하고 있는 만큼 정책 입안자나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존슨 SSIR 부편집장은 더나은미래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도 사회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며 기존의 문제해결 방식을 넘어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는 비영리나 공공 뿐 아니라 민간 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사회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주도한 ‘성과기반보상’ 실험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