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금)

[D.MZ 칼럼] ‘안 될 것 같은 일’을 지속하는 힘은?

김현숙 서울YWCA 간사
김현숙 서울YWCA 간사

모 홍보대행사 재직 시절, 주변 동료들은 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다투며 일했다. 특히 어느 기업 오너의 부정기사라도 나는 날이면 컵라면도 반납하고 연신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출퇴근 때마다 다짐했고 결심했다. 이렇게 살지 않기로. 사장님이 아닌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매출 목표가 아닌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비영리 단체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비영리에 엄청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로 입사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세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곳 시스템에 많은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돈 얘기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늘 재정 걱정에 시달렸고, 대의를 내세우며 당장의 물질적 이득을 내칠 때는 우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무려 100년도 더 전에 기독 여성들이 의기투합하며 만들어졌다. ‘여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이 공존한다. 이 때문인지 가끔 이유 없는 질타와 욕을 먹기도 하는데, ‘제로웨이스트’나 ‘기후위기대응’ 캠페인을 할 때면 이유 없이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하기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가 눈떠서 생활하며 아무 의식 없이 지나쳐 온 모든 시스템, 법적 규제, 사회적 합의 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며 많은 선배들이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고 싸워 결과를 이뤄왔다. 그렇다 보니 50여 년 넘게 우리 단체를 지켜봐 온 선배들과 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와 생각의 간극을 좁히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예전처럼 영향력이 크지 않은지, 왜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할 수 없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할 때마다 답답함만 쌓일 뿐이다.

한때 ‘우리 같은 단체가 무수히 많이 생겨나면 세상에 그저 평화가 오지 않을까’ 하며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더 열심히 갈라치기 하거나, 소외시키거나, 아픔을 여전히 묻어두고 있는 곳이 많다. 아무리 ‘정의’와 ‘평화’를 외쳐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력감도 종종 든다. 세상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인간이 되고자 야심 차게 비영리 단체로 커리어 전환을 했건만, 지금 와서 뒤를 바라보면 이러저러한 세상의 벽, 조직의 벽, 그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그저 떠내려온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원대한 소망 대신 내가 머무는 이곳을 조금 더 행복한 일터로 만들고 싶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욕구가 생겼다. 소중한 동료들이 더 이상 떠나지 않도록, 해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더 이상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이곳에 반짝이는 눈으로 희망을 잔뜩 품고 온 후배들에게 좋은 미래를 보여주는 선배가 돼보려고 한다. 외부의 거센 파도도 힘을 내어 함께 막고, 내부 조직의 곪은 부분도 과감하게 고치자 제안할 것이다.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함께 하는 우리 동료들이니까.

어느 날 실무자 대상 북콘서트에서 초청 강사로 만난 시사인 장일호 기자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우리는 ‘없는 일이 되는 것’을 되지 않게, 세상에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늘 직접 싸울 수 없다면 이런 시민단체들을 꼭 후원해달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렇게 깨어 있는 사람이라니, 눈물 나게 고마웠다. 평소에도 부끄러워서 이런 말 당당히 못하는 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감히 부탁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일이 일어나고 ‘먹고사니즘’에 다들 너무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주변의 작고 작은 시민단체를 돌아봐 주시길, 그리고 오늘도 겨우 힘내어 대신 싸우고 있는 시민단체 사람들을 격려하고 응원해 주시라고 말이다.

김현숙 서울YWCA 간사

D.MZ(뎀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소셜섹터의 MZ 활동가들이 활동을 둘러싼 고민과 걱정으로부터 무장해제하고, 또래 활동가들과 일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MZ 활동가들이 보내온 기고문을 ‘D.MZ 칼럼’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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