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NPO 파트너십 심층분석] (1) 아모레퍼시픽·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10주년 맞은 여성 가장 창업 지원 사업
초기 성과 부진해도 긴 호흡으로 진행해
CEO부터 개인 기부… 직원 참여로 이어져
점포 200개·창업주 평균 소득 2.5배 돌파
성공한 사회공헌 현장에는 ‘파트너십’이 있다. 기업은 NPO의 현장 전문성을 존중하고, NPO는 기업의 자원과 역량을 활용한다. 쌍방향 소통으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함께 보완해간다. 지난해 더나은미래의 ‘기업 사회공헌-NPO 파트너십 조사’에서도 “기업과 NPO 간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높은 사업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더나은미래는 기업과 NPO 간의 끈끈한 파트너십으로 사회공헌의 질적 성숙도, 진정성, 전문성, 임팩트(Impact)를 이룬 사례를 찾아 심층 분석하는 ‘기업-NPO 사회공헌 파트너십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첫회는 12년째 지속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의 ‘희망가게’ 이야기다. 편집자 주
“지원금도 적고, 속도도 너무 느린 것 아닙니까?” “창업 전문가의 지원을 늘려볼까요?” “여성 가장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2004년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이 저소득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돕는 마이크로크레딧(소규모 사업 지원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지원, ‘희망가게’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다. ‘희망가게’는 한부모 여성 가장이 창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최대 4000만원(임차보증금 2000만원, 창업대출금 2000만원)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사업이다. 임차보증금은 7년간 무이자로, 창업대출금은 7년간 연이율 2%로 상환해야 한다. 창업 성공을 위한 입지 선정, 컨설팅, 심리 지원도 한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사무국장은 “기업 입장에선 여성 한 명당 거액이 지원되는데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답답했을 것”이라며 “사업 초기 3년간 ‘희망가게’를 오픈한 한부모 여성 가장의 숫자도 평균 2~5명에 불과해, 창업 실패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0년 뒤 희망가게는 200호점을 돌파했고, 창업주들의 평균 소득도 창업 전후 98만원에서 253만원으로 약 2.5배나 증가했다. 한부모 가족의 월 평균 소득이 172만원(2013년 기준)인 것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소상공인 평균 소득(약 170만원)보다도 많다. 희망가게 창업주의 대출 상환율도 평균 82%가 넘는다. ‘대박집’도 많이 배출됐다. 월 매출 3000만원인 목포 장어집, 인사동 맛집 ‘전등찌개’, 월 800만원을 버는 대전의 닭발집도 희망가게로 시작됐다. 2년 전 구슬 공예 가게 ‘한스톤갤러리’를 오픈한 한명숙(38·강원도 원주)씨는 “이혼 후 빚을 내서 생활비를 마련해 왔는데, 이젠 매출이 늘어 두 자녀도 공부시키고, 최근엔 소상공인을 교육하는 협동조합도 만들었다”며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아모레퍼시픽이 희망가게에 쏟은 금액만 약 63억원에 달한다. 주변에서 실패할 거라며 만류하던 사업을 10년 만에 성공 모델로 만들어낸 비결이 무엇일까.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들은 모두 “파트너 덕분”이라며 서로 공을 돌렸다.
◇CEO가 중심에 있다
“희망가게가 오픈하면 회장님 혼자 몰래 방문하셔요. 희망가게 창업주들을 불러서 맛있는 밥도 사주시고요.”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들은 희망가게 사업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을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애정으로 꼽았다. 2003년 6월 30일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가족이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했다. 가족은 서 회장의 유산 중 52억원 상당의 주식을 한부모 여성 가장을 위해 기부했다. 서 회장의 어머니가 실질적인 여성 가장으로 동백기름을 팔아 집안을 이끌어온 것처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나눔사업에 써달라는 것. 매년 평균 20개의 희망가게가 문을 열고 있지만, 아름다운세상기금은 마르지 않는다. 당시 기부된 주식이 몇 배로 뛴 데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가족이 남몰래 기부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 실제로 희망가게 10주년 때 아모레퍼시픽 임직원들이 3000만원을 기부하자 아모레퍼시픽이 3000만원을, 서 회장이 사재 3000만원을 매칭 기부하기도 했다. 송혜진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팀장은 “아름다운재단에서 다른 모금 캠페인을 벌일 때도 서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1억원 상당을 기부했다”면서 “최근 아모레퍼시픽 임직원들의 개인 기부도 부쩍 늘었는데, CEO의 관심이 직원들에게 퍼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NPO의 지속 가능성까지 배려한다
사업이 시작되자마자 아름다운재단 내부에는 희망가게 전담팀이 꾸려졌다. 사업비·운영비·인건비 모두 아름다운세상기금에서 지급된다. 이렇게 지원되는 금액만 매년 6억원에 달한다. 김선화 아모레퍼시픽 CSV팀 과장은 “희망가게 사업은 한 명이 20개의 희망가게를 전담해 때마다 방문·전화·컨설팅하는 등 엄청난 노력과 애정이 필요하다”면서 “운영비·인건비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NPO가 사업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1월에는 희망가게 담당자 9명 모두 마이크로크레딧 기관들을 벤치마킹하러 해외 연수를 떠난다. 역시 아모레퍼시픽이 지원한다. 송혜진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팀장은 “5월에 아모레퍼시픽의 한 상무님이 ‘희망가게팀의 개인 교육비를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파트너인 NPO에 사업비만 지급하고, 이를 운영비·인건비로 사용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모습과는 대조된다.
◇당장의 성과보다 20년 후 비전을 함께 고민해
“정부 지원금으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하는 기관들은 1년에 1000개, 많게는 1만 개까지 사업체를 오픈해요. 성과를 내야 하거든요. 아모레퍼시픽은 1년에 희망가게를 고작 2개 오픈할 때도, 36개 업체가 폐점했을 때도 함께 고민하며 기다려줬습니다. 만약 그때 다른 사업으로 전환했다면 지금의 성과는 낼 수 없었겠죠.”(정경훈 아름다운재단 사무국장)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은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임직원 자원봉사 행사가 있을 땐 인근의 희망가게 음식점을 이용한다든가, 직원 대상 기부 캠페인을 실시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사인 아모스프로페셔널(헤어살롱 전문 브랜드)은 매년 희망가게 미용실 5곳에 300만원 상당의 헤어 제품을 기부하고, 미용 교육을 진행한다. 법무·회계팀 직원들은 한부모 여성 가장의 부동산 임차 문제부터 이혼 소송 등 전반에 걸쳐 조언을 해주고, 디자인팀은 희망가게 인테리어와 간판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직원 복지로 제공되는 심리치료도 희망가게 창업주에게 제공한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송혜진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팀장은 “희망가게 창업주들의 매출을 매달 공유해달라고 해서 처음엔 ‘간섭’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모레퍼시픽이 매달 점포별 지표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줬다”면서 “그때부터 창업주별 성과 관리뿐 아니라 향후 수익 예측까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김선화 아모레퍼시픽 CSV팀 과장은 ‘소통’을 강조했다. “저는 실무자 미팅이 있을 때 재단 쪽으로 직접 찾아뵙는 걸 원칙으로 잡았어요. 행사 당일 불시에 찾아가기보단 최소 일주일 전에 참석 의사를 밝히고요. 파트너십의 기본은 작은 것부터 서로 배려하는 데 있습니다.”
※‘기업-NPO 사회공헌 파트너십 시리즈’에 소개하고 싶은 파트너십 사례를 더나은미래에 소개해주세요. 내부 검토를 거쳐 기자가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①최소 5년 이상 파트너십 유지 ②사회적 임팩트 ③진정성 ④전문성 등 4가지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문의: 더나은미래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betterfuture2010), 이메일(csmedia@chosun.com)
정유진 기자
문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