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비영리단체의 아이디어와 도전정신 교육·복지·문화 ‘구멍’ 찾아 메운다

 

기 소르망 파리정치학교 교수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 기부 문화 분석 책 펴내
“한국 비영리 단체 다음 단계 도약하려면 투명성·책무성 높여야
비영리 영역의 기부금 어디 쓰이는지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역할”

주선영 촬영_기소르망
더나은미래

“복지국가와 시장 만능주의. 그 사이 사각지대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 비영리 단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이야말로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문화비평가이자 세계적 석학인 기 소르망(Guy Sorman) 파리정치학교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미국의 기부 문화를 분석한 책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원제: Le coeur americain)’을 출간했다. 2012년 6월부터 1년간 미국의 기부 문화를 직접 취재하여 집필한 책이다. 출판기념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4일 저녁 프랑스 대사 관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지금까지 철학, 정치, 경제 부문에 관련 책들을 집필해왔는데, 돌연 미국 기부 문화에 관한 책을 쓴 것이 생소하다.

“책이 전 세계에서 출판됐는데, 하나같이 ‘놀랐다’는 반응이다(웃음). 과거에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큰 축이 국가와 시장이었다. 그런데 ‘국가냐, 시장이냐’ 하는 이분법적 논쟁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다.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의 한계도,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도 명확해졌다. 국가와 시장 사이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제3섹터’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리라고 봤다. 미국은 ‘제3섹터’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면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미국에선 ‘나눔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은 기부에 의해 운영되고,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관리된다. 맨해튼 센트럴파크공원을 비롯해 미국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이다. 미국인의 90%가 자원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어렸을 때부터 기부를 자연스럽게 교육받는다. 성공한 미국인들은 대부분 거액의 기부금을 낸다. 반면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는 ‘당연히’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고, 기부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옳고 그른 건 아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작았고, 시민이 나서야 했다. 종교적 요인도 있다. 프랑스에선 세금을 많이 내니 국가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자연히 시민사회나 기부 문화가 커지지 않았다.”

-비영리 영역이 왜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나.

“비영리 단체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교육이나 복지, 문화예술 분야의 ‘구멍’을 찾아 메우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교육을 지원하는 티치포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나 할렘가 흑인 학생들을 위한 희망학교(Promise Academy),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회적기업 도우재단(Doe Foundation) 등이 대표적이다.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죽은 비영리 단체나 마찬가지다. 조지 소로스와 빌 게이츠는 둘 다 억만장자요, 기부계의 큰손이다. 조지 소로스를 만났을 때 ‘내가 실패하지 않으면 그건 내가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아서’라고 하더라. 조지 소로스가 지원하는 오픈 소사이어티 연구소(Open Society Institute)는 미국 내 인종 차별 문제나 흑인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는 사업 등 굉장히 혁신적인 사업을 지속한다. 반면 빌 게이츠는 자선가라기보다 정치인에 가까운 것 같다. 빌 게이츠에 대해 영국의 한 기자는 ‘박애 자본가(philathrocapitalist)’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세계은행(World Bank)이 몇십년간 해온 원조와 다를 게 없다. 빌게이츠재단은 혁신하지 않고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등 관료적이다. “

-한국에서는 최근 10년간 기부금 규모가 점차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제3섹터’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의 비영리 영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투명성, 책무성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도 60만개의 재단이 있지만 이를 감시하는 기관은 국세청(IRS) 단 한 곳이다. 정부는 언론과 납세자가, 기업은 주주들이 감시하지만 비영리 단체는 이렇다 할 감시 기관이 없다. 비영리 단체라고 해서 다 ‘선하다’고 볼 수도 없다. 유능한 비영리 단체도 있는가 하면, 부패한 기관들도 많다. 미국 적십자사는 최악의 사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가 컸을 때 4억5000만달러(약 4674억6000만원) 상당의 성금을 모금했지만 이를 제대로 배분하지 않았다. 2010년 아이티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돈이 어디로 들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관리해서 알려주는 체계가 갖춰져야 더 많은 사람이 기부할 것이다.”

-한국에는 지난 몇년간 여러 대기업이 앞다투어 자산을 출연해 ‘기업재단’을 설립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기업의 재단 설립이나 기부는 ‘홍보 마케팅’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월마트재단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재벌들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기부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그러나 ‘기부 동기’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더 장려해야 한다. 기업 기부금은 예술이나 교육, 병원 등의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국가는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 기부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 미국은 법인이 비영리 영역에 기부하면 100% 세금 감면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법인이 받는 세제 혜택은 기부금의 10%에 불과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내는 법정 기부금은 50%까지 세제 혜택이 가능하다고 하자, 그는 “국가가 단체를 지정해 세제 혜택을 더 주는 것은 자발적인 기부 문화를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기업 기부가 개인 차원의 기부나 봉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임직원들에게 한 달에 몇 시간의 봉사활동 시간을 보장해주거나 스스로 선택해서 기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기업 임직원들이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는 미국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가 좋은 예다.”

세상을바꾸는착한돈
-한국 내 나눔 문화를 확신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조세 혜택’을 늘려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되 자발적인 나눔 문화를 왜곡해선 안 된다. 한국 대학들은 비영리 영역에 필요한 지식·기능을 가르치는 관련 부서를 개설해야 한다. 미국 유수 대학 대부분은 ‘비영리 관련 학과’가 있고, ‘비영리학(Nonprofit Studies)’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 분야가 커지고 역할이 늘어날수록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할 것이다. 끝으로 언론은 ‘비영리 영역’의 올바른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주식회사나 정부와는 달리 자선 기관들은 감시하는 눈이 별로 없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예의주시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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