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세계적인 ‘식량 대란’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곡물 가격이 치솟자, 다른 생산국들도 수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도 이로 인한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 방송의 12일(현지 시각)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이후 농산물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밀·보리·옥수수 등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다. 특히 밀의 경우 전 세계 수출량의 약 30%를 생산해 유럽과 중동, 아시아 등으로 수출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에서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항구 접근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서 전 세계 곡물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밀 선물 가격은 1년 전에 비하면 72% 올랐다.<관련 기사 러, 우크라 공습에 밀 가격 폭등… “기아 위기 아동 늘어난다”> 4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세계 식품가격지수가 6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비료 수급도 원활하지 않다. 러시아는 주요 비료 수출국이지만, 각국 기업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거래를 꺼리는 상황이다. 비료를 생산할 때 필요한 천연가스 가격까지 오르면서 비료를 생산하는 데도 차질이 생겼다. 조안나 멘델슨 포만 미국 대학 교수는 “비료 없이는 거대한 규모의 밀, 보리, 콩밭을 일굴 수 없다”며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의 농부들은 비료 부족 사태를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료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스베인 토레 홀세처 대표도 “식량 위기가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거대한 위기가 오느냐의 문제”라고 CNN 인터뷰에서 말했다.
식량 부족 사태가 가시화되자 각국은 자국의 식량 안보를 지키기 위해 수출을 막고 있다. 아랍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집트는 밀, 밀가루, 콩 등의 수출을 금지했다. 팜유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 제한을 강화했다. 팜유는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화장품, 초콜릿 등의 원료로도 활용된다. 헝가리 농무부도 모든 곡물 수출을 즉각 중단하기로 했고, 터키 정부는 곡물 수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몰도바 정부는 이달부터 밀, 옥수수, 설탕 수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아르헨티나도 자국 내 밀 공급과 파스타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피해를 비켜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세계 7대 식량 수입국으로 2020년 기준 곡물 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밀 자급률은 0.5%, 옥수수는 0.7%로 매우 낮다. 유럽에서 수입한 밀은 일부분으로 대부분 사료나 과자 제조용 등으로 쓴다. 국수 등 주식으로 활용하는 대부분 밀은 호주나 미국에서 들여온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수입하는 밀의 양은 많지 않지만,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 그 여파가 국내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원유 가격까지 고공행진 하면서 운송비용도 올라 곡물 가격은 당분간 높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