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집의 아침 향기와 맛을 책임지는 커피는 강원도 속초의 칠성조선소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갈아내린 뒤 아내에게 진상하듯 올리며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이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일들은 오늘날 복잡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근래 소풍벤처스가 가장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영역도 농수축산업과 식품 분야다. 이 분야는 생산, 운송, 유통, 소비, 그리고 폐기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고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의 가치 사슬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 세계 인구 70억 명이 하루 3끼를 먹고 있으니 이보다 큰 산업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도 농식품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농식품 시장은 2019년 대비 2배 정도 성장하며, 온라인 거래 품목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순 있어도,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식품 분야는 소풍벤처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임팩트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다. 지난 5년간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온 시장이자, 약 90%에 달하는 임팩트투자자들이 향후 5년간 농식품분야 투자를 늘리거나 유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되는 식품의 3분의 1이 폐기되고 있고, 전체 온실가스의 약 3분의 1이 농업분야에서 배출되고 있다. 해양 플라스틱의 절반은 어업에 사용된 그물과 같은 기구들이다. 지구의 한쪽은 엄청난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에,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은 여전히 기아의 위협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소풍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세부항목 중 최소 50개 이상의 지표들이 농식품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일자리, 건강, 바이오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히면, 거의 대부분의 항목이 농식품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식탁이 바뀌는 것보다 큰 임팩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아침 내린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 전, 올해 초 강원도 양구의 한 사과 농원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구의 해안면 분지, 일명 펀치볼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가 전국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의 도시 대구에 남은 사과 농가는 소수이며, 10년 이내에 현재 국내 사과 최대 주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로 바뀔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측 역시 현실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기후 변화와 함께 농작물들의 생육 환경 역시 춤추고 있다.
앞으로 계속 농수축산식품 분야에 투자해나갈 예정이지만 이 분야를 안다고 이야기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농업과 식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이 아닐까 한다. 다만 농식품 분야에서 임팩트를 만드는 것이 개인과 사회, 나아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는 사명을 갖는 창업자와 투자자가 더 늘어나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