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화장품 용기는 재활용이 안 된다는 게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애초에 재활용이 어려운 ‘복합 재질 플라스틱(OTHER)’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고, 간혹 재활용이 가능한 단일 재질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제작된 용기가 있어도 안쪽에 남아있는 끈적한 내용물 때문에 재활용이 쉽지 않았다.
친환경 화장품 용기를 개발하는 소셜벤처 ‘이너보틀’의 오세일(44) 대표는 이런 문제에 주목했다.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내용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술의 핵심은 용기 안에 자리 잡은 실리콘 파우치입니다. 처음엔 부푼 풍선 형태로 화장품 용액을 담고 있다가, 펌프질을 하면 특유의 탄성으로 쪼그라들면서 용액을 모으는 역할을 하죠. 덕분에 외부 용기에는 용액이 전혀 묻지 않아요. 나오지 않는 용액을 남김없이 쓰려고 손 아프게 펌프질을 반복할 필요도, 다 쓴 화장품 용기를 재활용하겠다고 일일이 분리해 씻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난 8일 경기 성남에 있는 이너보틀 사무실에서 오세일 대표를 인터뷰했다. 본격적인 제품 출시를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는 3월 국내 화장품 브랜드 세 곳 제품에 이너보틀의 실리콘 파우치를 장착해 출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국 브랜드와도 계약을 맺어 5월부터는 해외에서도 이너보틀 제품을 장착한 화장품을 만날 수 있다. 화장품 회사의 플라스틱 용기 규격에 맞춰 실리콘 파우치를 납품하는 식이다. “영국 화장품 회사에 실리콘 파우치 약 100만개를 납품하기로 했습니다. 매출액은 약 25억원이에요. 첫 주문 물량이 그 정도인데 하반기에는 더 많이 납품하게 될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 대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자는 마음에서 이너보틀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샴푸나 화장품 등 펌프형 제품들을 쓰다 보면 양이 꽤 남아있는데도 점점 잘 안 나오기 시작하잖아요. 다 쓰지도 못한 화장품 용기를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재활용 실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재활용되는 화장품 용기는 전 세계적으로 약 4%에 불과했고, 국내는 제로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용액이 남아있어도 세척이 어려운 용기 구조가 원인이었다. 오 대표는 10년간 변리사 일을 했던 경험을 활용해 펌프형 용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특허들을 출원하기 시작했다. 2018년 이너보틀을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등록한 관련 특허만 총 18건에 달한다.
“이너보틀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저희를 단순한 화장품 용기 제조 회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저희의 가장 큰 미션은 ‘자원 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겁니다. 소비자들이 사용한 화장품 공병을 회수해 재사용, 재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거죠. 특허 관련 내용이라 자세히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올 하반기에 공병 회수 플랫폼을 만들 생각입니다.”
내용기뿐 아니라 외용기 제작에도 나설 계획이다. “저희 제품은 실리콘 파우치가 안에 있기 때문에 외부 용기의 재질이나 모양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 그간 화장품 업계에서 내용물 변질 우려 때문에 재활용 안 되는 복합 재질 플라스틱으로 만든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걸 바꿀 수 있다는 얘기죠. 3~4월 중에 100% 종이로 만들어진 외용기를 자체적으로 출시할 예정입니다.”
오 대표는 “친환경 용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화장품 기업과 소비자 모두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만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용기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재활용은 가능한지 따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패키지(용기)는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입니다. 화장품 용기뿐 아니라 케첩·시럽·참기름 등의 식품과 비타민·해열제 등 의약품 용기로 사업을 확장해 자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성남=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