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상황·사회적 고립이 원인
문제 지속되면 발달·성장에 악영향
‘감사 지적’ 불이익에 지원 쉽지 않아
병원·아동센터 등 이용할 수 있어야
#1. 올해 일곱 살인 미등록 아동 A군. 부모나 친구를 깨물고, 때리고, 물건을 던지는 폭력 성향을 보여 얼마 전부터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심리전문가는 A군의 이상행동 원인이 성장 환경에 있다고 봤다. 미등록 이주민인 부모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A군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A군은 혼자 집에 남기 일쑤였고, 훈육은 대부분 거친 체벌로 이뤄졌다. 가끔 ‘죽고 싶다’는 말도 한다.
#2. 또 다른 미등록 아동 B양은 감정 표현을 극도로 꺼린다. 올해 여섯 살인 B양은 상담 교사가 불러도 반응이 없거나, ‘좋다’는 식의 반응만 반복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요구 사항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친구나 선생님 등 타인과 관계 맺기도 거부한다. 부모와의 애착도 형성되지 못했다. B양 역시 부모의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어려운 경제적 상황 탓에 제대로 된 돌봄은 이뤄지지 못했다.
미등록 이주 가정의 돌봄 공백이 아동의 심리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아동의 정서적 안정에는 쾌적한 거주 환경,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 적절한 사회 활동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고립까지 겪는 미등록 아동들은 폭력성, 우울감, 사회성 부족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올해로 5년째 미등록 이주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 활동을 해온 송정은 아트온어스 대표는 “미등록 아동은 보통의 취약 계층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데 이는 이들이 겪는 고립과 차별이 극심하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발달이나 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의 돌봄 공백과 사회적 고립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일반 아동의 경우 지역아동센터 등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미등록 아동은 갈 곳이 없다. 지역아동센터는 국고 보조금에 재원의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어서,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이주 아동을 받아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영미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원장은 “선의로 ‘정원 외’ 방식을 통해 미등록 아동을 받아주는 곳도 있지만, 해당 아동에게 들어간 급식비·활동비 등은 감사 과정에서 지적 대상이 된다”며 “감사에서 지적 사항이 개선되지 않으면 예산 삭감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정원 외 아동을 지원한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 감사가 나오는 날이면 미등록 아동에게 ‘오늘은 센터에 오지 말라’고 하거나 ‘숨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러한 과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센터 근처에 오는 것조차 꺼리기도 한다”고 했다.
미등록 아동이 겪는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청소년기가 되면 자신이 불안정한 신분이라는 걸 깨닫고 이는 곧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이주배경아동청소년 기본권보호 네트워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미등록 이주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진정을 냈다. 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미등록 청소년 C양의 편지에는 “진학, 건강보험, 취업 등 남들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설이 남양주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팀장은 “미등록 아동 대부분이 10대 중반이 되면서 자기가 다른 친구들과 다르고, 한국에서 미래가 없을 거란 사실에 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미등록 아동에 대한 심리 지원 확대와 함께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김설이 팀장은 “아동들은 지속적인 돌봄과 심리적 처치를 받으면 일반 아동들처럼 밝아진다”면서 “미등록 아동이라도 학교, 지역아동센터, 병원 등 기본권과 관련된 시설은 이용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